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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춤 에테르 17화

by 모정연

출근 시간 지하철은 체조경기장 플로어구역 펜스를 잡기 위한 열망보다 밀도 높다. 체조경기장에서 인파를 뚫고 펜스 잡으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라도 볼 수 있는데, 이 지하철 압박감을 견디면 가까워지는 게 회사였다. 오늘 희재는 그런 생각할 겨를 없이 추자에게 전활 걸었다.

“어 여보세요 희재야 안 그래도 나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거든. 나 성공찬 우리 계열사 경력직 공채 추천인으로 올려보려고. 우리 회사 개발자 처우가 괜찮거든. 창업도 경력으로 쳐준다더라고. 근데 공찬이가 춤춤 만든 걸 창업이라고 할 수 있나?”


“응 근데 추자야. 있잖아.”


“성공찬 입사하면 추천인인 나한테 300만원 준대. 요새 개발자 모셔가기 전쟁이잖아. 이 돈 받으면 삼성동에 새로 생긴 뷔페 가자. 근데 공찬이 명색이 국문과 복수전공이니까 자소서는 잘 쓰겠지? 개발자는 자소서 안 중요한가?”


“추자야. 전화 내가 걸었는데. 나도 말 좀.”


“나같이 성깔 급한 인간이랑 말하려면 두괄식으로 빨리빨리 말하고 보랬지 내가.”


“너 열두시 삼십사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희재는 지옥철 속 누구도 못 듣게 독심술 하듯 말했다.


“뭐라고?”


“새벽 열두시 삼십사분.”


“뭐라는 거야?”



추자에게선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좌회전 준비 중인지 깜빡이 소리가 웨어러블 이어폰을 타고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김추자 너 1234, 브이앱 방송 제목 기억 안 나?”


“지금 누가 브이앱하냐? 누가 눈치 없이 아침 출근 시간에 해. 이것들은 정말 시간 개념이 없어요. 근데 요즘 우리가 브이앱 볼 애들이 있었나? 누구?”


“아니 됐고, 우리 전에 새벽마다 한참 같이 봤었잖아. 넌 정말 모든 기억이 다 주희찬 위주구나.”


“아침부터 재수 없이 또 그 이름은 왜 꺼내는데.”



한때 제일 사랑했던 사람 이름이 이런 취급을 당한다.


텐빌스라는 이름이 세상에 묵음 처리되어 지워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텐빌스는 주류 기획사의 주목받는 신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획사 창립자가 특이했다. 창립자는 연예계 잔뼈 굵은 밴드 출신의 김환이었다. 스물에 통기타 매고 밴드 보컬로 데뷔해 밴드와 노래 모두 알리는 데 성공했다. 모든 노래는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김환이 작사작곡했다. 밴드 멤버들은 김환이 발벗고 T대학을 돌아다니며 뽑았다고 했다. 서울의 명문 T대학생으로 구성된 네 사람은 밴드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밴드 멤버 넷 다 수려한 외모로 여심을 훔쳤고, 통통 튀는 멜로디는 90년대 젊은이들의 가슴에 청춘 신드롬 불 지르기 충분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김환밴드>는 투박한 이름처럼 동년배 청춘들의 패기와 꿈 젊음을 노래했다. 음악만 하고 싶은 멤버들과 달리 김환은 꿈이 많았다.



밴드 특성상 보컬리스트면서 프로듀싱까지 다 하는 김환이 젤 큰 주목을 받았다. 물론 그 시절 여심 불 지르는 뚜렷하고 굵은 김환 이목구비도 한 몫 했다. 김환만 단독 섭외되는 광고가 많아졌다. 넷 중에서 가장 하얗고 키가 컸던 김환은 이내 드라마 주인공으로까지 캐스팅됐다.



멤버들은 음악에만 집중하자고 했지만 더 좋은 음악을 만들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게 환의 지론이었다. 작사작곡에 노래까지 잘하던 김환은 청춘드라마 속 반항아 서브 남자주인공 역할마저도 잘 해냈다. 김환이 연기하는 동안 밴드는 활동 중지였다. 김환 혼자 맡은 팀 내 비중이 너무 컸다. 김환이 두 번째 드라마에 캐스팅됐을 때 밴드 멤버들은 모두 군대에 가버렸다. 그들이 군대에 간 뒤로 김환은 솔로로 앨범을 냈는데 안타깝게도 밴드 때보다 더 성공했다. 레코드판은 밴드 때보다 두 배 이상 더 팔렸다. 그 시절 김환은 손대는 족족 성공했다. 멤버들이 군대에서 돌아왔지만 김환은 밴드로 돌아가지 않았다. 의리에 금이 쩍쩍 가는데도 김환 혼자서만 계속 잘 나갔다.



그때쯤 가요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아이돌’과 ‘케이팝’이라는 새 장르가 연예계 뜨거운 감자로 대두됐다. 돈 되는 냄새를 빠르게 맡는 환은 본인의 이름을 딴 기획사를 차렸다. 기획사 ‘fandora’. 환의 ‘fan’을 딴 작명이었다. 판도라. 훗날 그 회사가 망했을 때 ‘판도라의 상자 열어서 나온 끔찍한 지뢰가 환이었네.’ 라는 문장의 흥행으로, ‘환도라의 상자’는 끔찍한 비리의 온상이 밝혀지는 21세기 신조어로 대한민국에 자리 잡게 된다.



fandora 대표 김환은 아이돌 연습생들을 모았다. 수십 년 전 스무살 적에 T대학 각 학과에서 젤 잘생긴 신입생들만 차출해 김환밴드로 모았던 실력을 발휘했다. 이미 국내에는 서너 개의 대형기획사가 존재했다. 김환보다 조금 더 먼저 태어나 연예계 한 획 그은 선배님들 되시겠다. 그 3대 기획사에서는 매월 거친 하드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신인그룹이 데뷔라도 한다면 아깝게 데뷔하지 못해 회사를 옮기는 이탈자 연습생들이 발생했다. 김환은 그 대형기획사에서 아쉽게 데뷔는 못했으나 하드 트레이닝은 잘 받은 연습생들을 쏙쏙 모았다. 데뷔 직전까지 갔으니 실력도 비주얼도 손색없었다. 그렇게 모은 멤버들로 5인조 보이그룹 ‘텐빌스’를 만들었다. 김환은 본인 이름을 걸고 모든 쇼에 나와 그룹을 홍보했다. 프로듀싱부터 의상 타이틀곡 선정 뮤비 감독 선정까지 전부 김환이 디렉팅했다. 그 오래전 김환밴드를 혼자 다 해먹었던 기지를 발휘해 김환의 아이들을 만들었다. 타이틀은 괜찮았다.



신생 기획사였지만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텐빌스를 보고 ‘fandora’의 두 번째 아이돌이 되기 위해 이제 격주 주말마다 열리는 공개 오디션에 괜찮은 아이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텐빌스가 데뷔한 그해 대형기획사에서 동시에 오랜 시간 공들인 글로벌 아이돌이 데뷔했기 때문에 연말 신인상은 탈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해 봄 발매한 2집 미니앨범과 여름에 연이어 발매한 정규 1집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텐빌스’라는 그룹의 이름은 서서히 알렸다. 더 이상 ‘김환’의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예능에 나갔고 음악방송에도 나갔다. 팬클럽 ‘안젤로’(사랑에 눈을 뜨며 선과 악을 노래한다는 텐빌스의 명칭과 걸맞게, 팬클럽은 ‘천사’를 뜻하는 명칭을 얻었다.)를 모집하고 성공리에 초회 팬미팅도 마쳤다.



마의 3년차에는 본격적으로 정규 2집을 발매하고 리패키지 앨범까지 발매해 가장 높은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간의 앨범 판매량) 기록을 세웠다. 팬덤도 안정적으로 모여갔고 나쁘지 않았다. 해외투어를 기획해서 유럽과 남미 일부 국가와 동남아까지 돌았다. 해외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니 시상식 본상 중 ‘보이그룹 퍼포먼스상’ 트로피를 연말에 거머쥘 수 있는 정도였다. 멤버들은 대상도 아니지만 3년차에 처음으로 받은 본상에 네명이 오열을 하며, ‘사랑하는 김환 프로듀서님 정말 감사합니다’ 외쳤다. 이때도 연오만 울지 않은 채 두 손을 모으고 마이크 앞에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모두가 부모님 가족들을 외칠 때에도 연오는 안젤로들 감사합니다, 묵묵히 외쳤다. 희재 눈에는 그 티끌보다 미묘한 차이가 잘도 보였다.



4년 차가 되고 본격적으로 1월부터 해외투어 일정이 시작됐다. 동시에 작년 연말부터 준비한 일본 앨범이 발매됐다. 아시아를 주 타겟으로 삼는 대형기획사에서 연습생 기간을 오래 거친 리더와 둘째 넷째는 각각 일본어 중국어에 능했다. 막내는 부유한 집에서 큰 덕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미국에서 나와 영어에 가장 능했다. 해외투어 중간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미니앨범 3집과 4집 두 장을 더 냈다. 이제 환이 멤버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작사 작곡에 두각을 드러내는 멤버들이 기획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타이틀곡으로 하긴 아쉬웠으므로 리더와 희찬이 작곡한 곡은 2번, 3번 트랙으로 실렸다. 막내는 3번 수록곡의 작사를 맡았다. 다만 그 무렵 대형 방송사를 통해 ‘전국민’이 투표로 뽑아 프로듀싱한 그룹이 데뷔했고, 그들은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케이팝의 판도가 바뀐다며 들썩였다. 그해 연말 텐빌스는 ‘올해의 남자그룹 퍼포먼스상’을 또다시 탔다. 대상 3종(올해의 가수, 앨범, 아티스트)은 전년도 수상한 선배 그룹이 역시나 이변 없이 탔다. 어디선가 분명 혜성도 나타나고 돌풍도 불고 신성이 나타나는데 그게 묘하게 텐빌스는 아니었다. 닿을 듯 말 듯 ‘정상의 자리’를 목전에 두고 텐빌스는 결정적 한 방을 꽂지 못했다. 그럼에도 텐빌스 멤버들은 열심히했다.



물론 그 해 연말 투어의 마지막 서울 핸드볼경기장 단독 콘서트에서 온 멤버들이 초심을 다지기도 했다.


희재와 추자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로 남은 시기이기도 했다. 열심히 하면 올라가는 일만 남았을 거라는 믿음. 그게 멤버들과 팬들을 그 자리에서 마이크 들고 굳게 다짐하던 텐빌스와 고개 끄덕이던 희재를 하나로 묶었었던 강한 유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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