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Jan 24. 2023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을

취향이 필요한 당신에게


카페에서 고민하다 고른 신메뉴 음료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나는 비싸게 지불한 돈이 아까워 우선 바닥까지 비워냈다. 이럴 때면, 평소에 먹던 라테나 먹을 걸 괜히 안 먹던 걸 주문했나 싶다. 내 입맛과 비위보다 더 비싼 음료를 앞에 두고 생각했다. ‘오늘 라테 대신 사려고 했던 것은 음료였을까? 새로운 시도와 취향이었을까?’ 취향을 쌓기 위한 기회비용이라 생각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우리는 낯섦이 주는 실망감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의 불쾌감이 클 때, 우리의 추측이 우리의 시도와 경험을 대신한다. 나는 여우의 신 포도처럼 추측이 가로막은 취향의 기회가 안타깝다. 추측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은 결국 모르는 것으로 끝난다.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가다가 높은 가지에 매달린 포도를 보았다.
여우는 포도가 먹고 싶지만, 너무 높아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여우는 포도를 먹지 못하고 생각했다.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이솝 우화 <여우와 신 포도>


나도 안다. 피자빵 대신 결제한 피자가, 라테 대신 주문한 신메뉴가, 대여 대신 구입한 책이 사치가 되기도 한다는 걸. 언뜻 보면 양털 점퍼 같은 뽀글이 점퍼가, 진짜 로즈골드를 대신한 로즈골드 도금이 취향은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경계를 말해주기도 한다는 걸.

취향을 쌓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당신과 내가 취향을 쌓기 위해 조금씩 낯섦을 시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하지만 그 취향이 돈으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일반인은 최고급 명품 시계를 보고도 잘 모를 수 있다는 인터넷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시계를 차는 사람은 모두에게 시계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시계의 가치를 아는 본인과 몇몇 소수에게만 인정받는 거라고 했다. 모두가 단숨에 알아챌 수 있는 순금 체인 목걸이와 명품 로고가 적나라하게 박힌 가방은 어쩌면 당신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소비와 과시가 목적인 구매 대신, 위로와 취향이 담긴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당신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건, 휴식처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좋아하는 것이 적은 사람들, 취향이 적은 사람들은 휴식처가 부족하다. 좁은 취향은 우리를 이불 속으로, 게임 속으로, 유튜브 알고리즘 속으로 몰아넣는다. 취향이 부족해 다다른 휴식처에는 안식이 없다. 당신의 취향이 없는 곳에는 당신을 위한 큰 기쁨이 없다.

지쳐있는 날,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장소를 산책하면서 당신을 잘 돌봐줬으면 좋겠다. 제일 저렴한 아메리카노 대신 매력적인 신메뉴를 고르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사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취향이 있는 곳에서 당신이 휴식과 위로를 느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까짓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싶게 삶이 비루하고 속악하고 치사하게 느껴질 때가 부지기수로 많다.
이 나이까지 견디어 온 그런 고비 고비를 생각하면 먹은 나이가 한없이 누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삶은 누추하기도 하지만 오묘하기도 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을,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

박완서 <노란집 중에서>


누추하고 비루한 일상에서, 아주 하찮은 것에서의 큰 기쁨이 당신과 나의 하루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순간이 많도록 당신은 좋아하는 것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많이 시도하고 경험해 당신만의 취향을 쌓아 올리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버리고 싶은 날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에서, 좋아하는 산책길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서,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기 참 잘했다는 순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기다려도 기쁨이 찾아오지 않는 날에는 우리가 먼저 버선발로 마중 나가자.

작가의 이전글 화장실에서 숨죽여 우는 사람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