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받아 온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게 될 것 같다. 이런 머뭇거림의 순간에 떠오르는 물건이 있다면 바로 '책'이다. '책'이라는 물건이 좋은 선물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책' 안에 있는 것들은 내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이토록 많은 것을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때문에 책을 읽고 외면한다는 것은 그에게 너무도 미안한 일이 됐다. 책이 삶도록 해야 했다.
처음부터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 싸이월드가 유행했을 때는 간단하게 한두 줄 정도 느낀 점을 기록으로 남겼다. 독서노트를 장만해서 인상 깊은 구절들만 옮겨 적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내게 주어진 시간이 여유롭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너는 '놀고먹는 사람'이라는 불안과 부담. 사실 내가 놀고먹는 것은 아닌데. 아이는 자라서 내 손에서 차츰 떠나가고 있었지만 다시 일터로 나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얘 하지도 못했다. 내 손이 덜 필요하다고는 하나, 아직은 어린아이를 두고 내 인생, 내 일을 생각할 만큼 나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했다.
물론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게 자신을 덜 사랑하는 일은 아니지만 자꾸만 이런 생각이 떠올라 나는 괴로웠다. 그렇다고 이런 불안과 부담감으로 시간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책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읽은 것을 바탕으로 좀 더 길게 '책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책일기를 쓰면서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둘러싼 타인,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책'은 선물과 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이것 또한 시간 낭비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오래 해보지도 않고 그것이 낭비인지 축적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점점 쓰는 시간이 좋아졌다. 예약된 시간에 의사를 만나러 가는 것 마냥 컴퓨터 앞에 앉아 타다다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여기서, 의사를 만나러 간다고 표현한 것은 의도적인 표현이다. 글을 쓰면서 '치유'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키보드 소리마저 즐거웠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키보드는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네네. 쓰기를 하면 생각은 물론 귀마저 즐거워집니다요.
'쓰기'는 나를 보고 웃는다. 한 송이 꽃처럼
책을 읽고 글을 썼을 뿐인데 그곳에서 '나'를 만났다. 보잘것없는 나 자신. 그곳에는 자신감 없는 '나', 세상이 미운 '나', 능력 없고 형편없는 '나', 끈기 없는 '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 비판하고 비난하기 좋아하는 '나', 이런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를 만난 나는, 나를 미워하고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하는 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쓰기' 의사는 내게 말했다.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면, 더 나은 내가 되는 경험에 도전장을 내밀어도 좋겠다 싶었다.
'나'만 만난 게 아니라 '너'를 만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났다. 읽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쓰다 보니 내가 쓴 것을 하나라도 행동으로 옮기며 살고 싶어 졌다. 그 행동들이란 아주 사소한 것들인데 이 사소한 것들을 실천하며 사는 내가 이토록 대견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 정도 산책하기, 오전에 2시간 글쓰기, 화가 난 감정을 잘 표현하기 같은 정말 사소한 것들. 사소한 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들뜨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더 이상 쓸데없고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좀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찾아온다. 여러 이유로 책이 손에서 떠나 있는 시기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방황했다. 내 손도 마음도 영혼도. 하지만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글은 쓸 수 있으니까. 무엇이든 쓰기만 하면 되니까. 무엇이든 쓰면 글쓰기 근육이 더욱 탄탄해지니까, 나는 건강한 근육으로 무엇이든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주방일을 하면서도 쓸거리를 찾았다. 주부로서 하는 일들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으면 내가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하는 일에서 가치를 찾고자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나를 들여다봤고, 물건 정리를 하면서도 나를 돌아봤다. 집안 곳곳이 나 자신이었다.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할 때도, 빨래를 널고 걷을 때도, 장을 볼 때도, 곳곳에 내가 있었다. 어찌 쓸거리가 없을 수 있으랴. 쓰기는 나를 돌봤다.
하루 한 시간 걷기 뒤에는 '산책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속한 세상은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두 눈에 들어온 풍경은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정도로 눈부셨다. 평범한 거리, 평범한 소리, 평범한 모습, 이 모든 것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특별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옮기자 내가 사는 세상은 그만 특별해졌고 그곳에 발 딛고 있는 나 역시 특별한 사람이 됐다.
쓰기는 내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을 갖게 했다. 쓰기 선생님이 주신 특별한 눈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쓰는 것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물론 충분히 그럴 의사가 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며, 내가 사는 세상 역시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