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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지기 Oct 12. 2020

나는 왜 읽는가?

남을 위해 읽다 나를 위해 읽다.

책을 읽는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 선물해줘서, 옆에 놓여있으니까, 재미있어서, 시간 때우기 좋으니까, 있어 보여서,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TV나 유튜브에서 소개해줘서, 그냥, 기타 등등의 이유로 우리는 책을 읽는다. 


나는 원래 책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늘 옆에 두고 살지는 않았다. 아주 감명 깊게 읽은 책도 뒤돌아 서면 까먹기 일수고 누군가 그 책 어땠냐고 물으면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나는 책벌레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아니다. 책이라는 물건이 내 곁에 있으면 지적인 사람이 될 것 같았고 좀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허영심 가득한 생각 때문에 종종 서점에 들렀고 책을 샀다. 한 달 월급 100여만 원을 받아 꼬박꼬박 학자금 대출 이자와 고시원비를 내던 시절에도.


어린 시절, 부모님이 노란색 표지의 세계 문고 축약본을 사주신 적은 있지만 항상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때 사주신 책의 모양과 색깔, 질감, 제목(소공녀, 소공자, 이솝우화 등등)들은 기억이 나지만 역시나 내용은 잘 기억하질 못한다. 책이 재미있어서 읽고 또 읽었으면서도. 추억 속에 존재하는 자그마한 노란 책이 나를 계속 책 주변에 머물게 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여전한 허영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랬던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책을 곁에 두기로 결심한 계기는 아이가 태어난 2008년부터다. 아이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는 없었지만 뭔가 좋은 것, 아이가 따라 해도 좋을만한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책 곁에 두기로 이어졌다. 다만 이때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책을 곁에 두었다. 책 읽는 습관만큼은 유산으로 주고 싶었다. 

갓난아기 젖 물리고 기저귀 갈고 재우는 일 말고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신입 엄마는 아기를 잘 키우고 싶어서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잘' 키운다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른 채, 책을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마구 읽었다. 이토록 책이 달았던 적이 있었을까? 모르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게 이런 거로구나 하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때 먹은 책들은 의지할 곳 하나 없던 내게 유일한 충전소가 되었다. 


책은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 아이 키우기에 절대 답은 없었다. 답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아이 자체가 답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마다 책을 대하는 태도, 즐기는 방법은 다르다. 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이가 안 자고 방글거리고 있을 때는 빨강 깜장 그림이 있는 책을 보여주면서 혼자 이야기를 했고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라도 가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잡지책을 봤다. 책을 보여주면 아이가 좋아하니까 어딜 가도 늘 책을 들고 다녔다. 덕분에 가방은 배로 무거워졌다.


아이가 좀 더 자라서 걸어 다니고 뛰어다닐 때는 알록달록 그림책들을 집 안 여기저기에 뿌려놨다. 아이는 놀다가도 그림책을 집어 들고 집게손가락을 내밀며 옹알거렸다. 그러면 나는 책을 집어 들고 온갖 의성어와 의태어가 뒤섞인 책들을 내 맘대로 확장해서 읽어줬다. 그렇게 책으로 놀던 아이는 열세 살인 지금도 책으로 논다. 읽고, 그림 따라 그리고 책을 이용해 성을 쌓아 전쟁놀이를 하면서.


나는 딴짓을 하다가도 아이가 보일라치면 식탁, 소파, 바닥, 책상.. 어디에든 놓여있는 책을 집어 들고 읽는 ''을 했다. 늘 아이와 함께였기에 책도 늘 나와 함께였다. '척'을 하다 보니 재미있는 책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면 '척'하던 책을 붙들고 진짜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는 늘 손에 책을 들고 있었고 책은 집 안 어디에든 손만 뻗치면 닿는 곳에 놓여있게 됐다. 이렇게 만난 책들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돌아보면, 항상 나 자신보다 남(아이를 포함한 타인)을 위해 책을 곁에 두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나를 위한 게 아닌 남을 위해(그래, 잘 보이고 싶었다..) 했던 일이 결국엔 나를 위한 일이 됐는데 잘 됐다고 해도 될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했다. 책도 그랬고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 '나' 역시 예뻤다. 억지스러운 책 펼치기가 자연스러운 책 펼치기로 탈바꿈했다. 이런 노력이 결국은 나를 위한 일이 됐다니 생각할수록 놀랍다. 세상에 해도 되는 '척'이 있다면 '책 읽는 척' 아닐까? 잘난 척, 똑똑한 척, 있는 척 말고 '읽는 척'. 읽는 척이 잘난 척 똑똑한 척 있는 척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스스로를 보잘것없이 여겼다. 이런 내가 못마땅해서 책을 가까이 두고 뭔가 있어보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좋은 부모는 되어야겠는데 어찌할 줄 몰랐던 신입 부모는 책에게 의지했다. 그 책을 아이 곁에 둔 결과 아이 역시 책을 벗 삼아 지루할 틈 없이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소년이 되어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늘 남, 남, 남을 의식하며 살던 내가 이제는 남이 아닌 나를 의식하며 살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하며, 나를 돌보고 사랑할 줄 아는, 다양한 내 본성을 사랑하며 사는 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읽기 위해 발버둥 친 날들이 이어져 쓰는 날도 계속되고 있다. 나를 오래도록 바라봐 준 책에게, 삶을 살아가게 해 준 쓰기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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