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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지기 Oct 08. 2020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쓰기'가 내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내게 자주 던졌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나를 구원하고 싶은 걸까? '정체'에 커서를 둔 채 계속 깜박이고만 있는 내 생활과 생각이 싫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며 살기로 했지만 내가 싫어지는 날도 무수히 많았다. 보통의 날들이 지겨워서 못 견딜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쓰기'가 말했다. 


"무엇이든 써 보세요. 하얀 바탕 위에 게으름도, 나태도, 삶의 권태와 무료함도 기록해 보세요. 그들을 이곳에서 살아가게 하세요. 저와 손 잡아요. 펜과 노트(혹은 노트북)만 있으면 돼요.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마음과 머리에 있는 것들을 빈 여백에 비워내세요. 쓰는 데는 말이 필요 없잖아요. 쓰기도 말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전에 했던 '말'들과는 다를 거예요. 하지만 쓰기 역시 신중해야 하고 '침묵'의 순간도 필요해요.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면, 계속 저를 만나다 보면 등짝이 뻐근하고 손가락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다리도 퉁퉁 부을 테고요. 각오는 하셔야 합니다."


도대체 쓰기는 언제부터 내 옆에 있었던 걸까? 나는 어떻게 '쓰기'가 걸어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쓰기'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익숙한 듯 낯선 존재가 걸어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자 내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쓰기 선생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진짜로 등짝이 뻐근하고 다리가 퉁퉁 부어왔다. 눈도 침침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낼 만큼 쓰기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줬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이토록 빛이 나고 진실했던 적이 있던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다. 이런 행복이라면 허리가 아프고 손가락이 아픈들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계속 쓰기 위해서는 몸을 관리해야 했다. 스트레칭을 해야 했고 뻐근한 몸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걸어야 했다. 


조지 오웰은 정치적 이유로 글을 쓴다고 했다. 나도 그처럼 큰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싶지만 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를뿐더러 다른 무엇보다 나를 구원하는 일이 급했다. 정체된 내 삶, 나를 만드는 시간들, 정체된 것으로도 모자라 후퇴해버릴 것만 같은 미래, 너무 빨리 다가와서 나를 괴롭히는 시간들,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는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을 알아내고 쏟아내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그곳에서 나를 꺼내야만 했다. 내게 주어진 보통의 시간들, 평범한 일상을 보듬어야만 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원망의 감정들은 손가락이 움직일수록 선명해졌다. 흰 바탕 위에 검은 글씨가 채워질 때마다 나는 나를 이해했다. 내 깊은 속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다. 불안의 원인과 원망은 타인에게 돌아갔다. 노트북 위의 커서가 뒤로 전진할 때마다 나는 알았다.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 문제임을.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해봤자 괴로운 것은 나라는 것을. 그렇게 쓰기는 내게 알려줬다. 내 인생은 내 것이었다. 여백에 한 줄 한 줄 분노와 회한의 감정이 채워진 만큼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반면 어깨와 눈은 피로감에 휩싸였다. 

 


그때, 쓰기는 또다시 말했다.


"저를 자주 찾아줘서 고마워요. 제가 한 가지 주의사항을 말씀드렸던가요? 무턱대고 저를 오래 붙잡고 계시다가는 만성피로를 달고 사실 거예요. 한 시간에 한 번씩 스트레칭을 하셔야 해요. 아무리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저와 놀다 보면 금방 피로해지거든요. 그런데 희망지기 님은 젊지도 건강하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꼭! 꼭! 스트레칭 잊지 마세요.


날이 좋을 땐 저를 내려놓고 햇살과 나무, 바람, 세상의 소리를 벗 삼아 걸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사방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자연에서 나눈 이야기, 세상과 나눈 이야기, 자신과 나눈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두시려거든 그다음에 저를 만나주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전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값지게 다가올 거예요. 자기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알아가는지는 물론 말할 것도 없지요. 매일 조금씩 저를 만나다 보면 매일 조금씩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당신 자신을 만나게 될 거랍니다."


아이 키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서글펐고 점점 싫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만 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 보내고 있었다. 이런 텅 빈 감정에 휩싸여 무너지려는 순간, 오랜 시간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붙들고 있던 '쓰기'라는 친구가 내게 다가온 것이다. 가느다란 끈이었지만 그 끈은 질겼다. 있는 듯 없는 듯 놓여있던 끈을 위기의 순간 나는 보았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못마땅하다. 내가, 내 삶이, 불안하고 두렵다. 그렇다고 더 이상 이렇게 흔들릴 수는 없다. 나는 나 자신을 토닥여주기로 했다. '쓰기'를 도구 삼아 내 내면에 있는 열정을 꺼내 보기로 했다.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게으름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나'이고,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돌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나를 위해서 쓰기를 지속하기로 했다.


그때, 쓰기가 다시 한번 말을 걸어왔다.


"고마워요. 가느다란 끈이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해왔어요. 끈이 가늘다고 해서 약한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저와 당신의 관계를 돌아봤을 때, 우리는 길고 가느다랗지만 튼튼한 사이라는 것을 알아요. 때로는 마음껏 나태하고 게을러져도 괜찮아요. 뭐 어때요? 인생이 이런 맛도 있고, 저런 맛도 있는 거지. 너무 쉽게 지치지 않도록 잘 쉬어가는 게 중요해요. 자신에게 그냥 뒹굴어도 괜찮은 시간이 있다고 일러줘요~ 그리고 마지막. 저는 당신 내면을 믿어요. 튼튼하고 견고한, 주변을 환하게 비춰줄 수 있는 당신 내면의 에너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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