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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현 Sep 08. 2021

사원1의 지역 기획자 도전기

자아 실현 좀 하고 삽시다

 아침에 추척추척 비가 내리자 기분이 더러워졌다. 밑창이 닳아버린 운동화엔 물이 분수처럼 들이쳤다. 오늘도 박과장이 싸놓은 똥을 치울 생각에 얼굴의 모든 주름이 자글자글 구겨지는 것만 같았다. 아 회사 가기 싫다.

 박과장은 성격도 더러울 뿐만 아니라 머리도 없어서 쉽게 눈에 띄는 인간이었다. 경쟁 피티를 준비하다가 모르고 박과장 머리에 레이저 포인터를 쏘면 내 눈만 아팠다. 그만큼 머리가 반질반질한 빛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마음을 그렇게 쓰니 머리가 다 도망가지. 

"승현아 이거 좀 해봐"

나는 하핫 웃으며 박과장의 요구에 맞게 피피티를 만졌다. 만질수록 피피티는 더욱 구리게 변해갔다. 와 이런걸 나한테 시킨다고? 이런 생각이 들 때 쯤 박과장은 <모던하고 레트로한 느낌>의 피피티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박과장님 이건 그냥 촌스럽고 구린건데요. 눈을 가늘게 뜨며 오늘 한명의 클라이언트를 잃겠구만 생각했다. 대체 저긴 뭐가 든걸까 빛나는 박과장의 머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저 박대가리.


뭐 어쨌든 나는 밥만 벌어먹고 살면 되니까. 박대가리가 어떻든 상관 없었다. 다만 슬픈 건 이렇게 하루의 8시간씩 꼬박꼬박 다른 사람의 일만 해주고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게 슬픈거지. 그래서 나는 가끔 모니터를 보며 눈물을 흘려•••.

 어쨌든 굶어 죽을 순 없었다. 또 긍정적이게 생각해본다면 집이 가난해서 악착같이 여러 일을 할 수 있었기에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장사도 해보고 그 놈의 집구석 떠나고 싶어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살다가 안정적인 직장에서 근무하려니 좀이 쑤셨다. 새로운 동네에 정 붙이고 산지 4년이 넘어가는데 이 놈의 회사 때문에 내가 가장 많이 가본 핫플레이스는 진상들이 넘치는 GS25였다. 그래도 최고의 삼각김밥 VIP 고객은 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뭔가 꾸준히 한 것 같잖아. 어쨌든 그래서 박과장의 눈을 피해 인터넷을 뒤적이던 중 꽤나 재밌는 걸 발견했다. 바로 동네 기획자 되기!

 뭐 사실 직장을 다니기 전에는 예술한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꽤나 창작에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역 기획자라니, 생소하면서도 재밌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흘러 넘쳤지만 그래도 해보는 게 어디야. 생각했던 내용들을 종이 위에 쏟아내자 금방 지원서가 채워졌다. 와 이건 정말 괜찮다.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지원서에 주욱주욱 밑줄을 쳤다. 흠... '그러니까 이건 박과장이 쓴 기획서보다 낫다' 정도 였다.


뭐 어쨌든 동네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부지런히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친구들 중에는 동네에 인스타 핫플이 생겼다며 가자고 조르는 놈들은 많았는데 내가 게을러서 말이지. 이번 기회에 좀 동네도 탐색하고 좋아하는 장소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이메일을 보냈다. 안되면 말지 뭐. 


그런데 합격 문자가 왔다. 서류 합격했습니다 축하드려요~


!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장롱에서 나프탈린 냄새가 풍기는 옥스포드 천으로 만든 셔츠를 꺼내 입었다. 정말 빳빳하고 어깨도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핏이 구렸다. 거의 핏이 박과장이야~ 그래도 온라인 면접이라 다행이었다. 근데 왜 그런진 몰라도 줌으로 내 얼굴을 보면 더 못생겼다. 어쩌겠어. 면접은 봐야지. 다행히 문화재단 분들은 살갑게 나를 맞아주셨고 나도 모르게 방실방실 웃으며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이것봐 나도 일 안할 때는 웃잖아! 혼자 욱하는 감정을 밀어넣고 면접을 끝냈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 토박이일텐데 나는 이 동네 떡볶이가 맛있다는 사실만 알았다. 구구구구남친의 집이 그 근처였고, 아주 어릴 때 원하지 않게 그 동네에 살았었다. 그리고 중요한건 나는 경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완전한 그 동네 주민도 아니면서 또 주민이기도 한 애매한 존재였달까. 작업실까지 걸어가면 매번 '안녕하세요 ㅇㅇ구입니다' 하는 간판과 함께 그 동네가 나왔다. 흑흑 나는 망했어 나는 집에서 잠이나 자면서 살테야~ 센치해진 기분을 달래며 면접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가 나오는 당일 박대가리를 상대하느라 나는 몸과 마음이 특히 눈이 지쳐 있었다. 대가리가 존나 빛나잖아 미친거아닐지. 12번 리젝 당한 보고서를 읽으며 나는 박과장 욕을 했다. 매번 퇴사 할때마다 머리를 심어보심이 어떨지, 이야기하는 나를 상상한다. 돈도 조금 주면서 나한테 3인분을 바라다니 역시 좋좋소다. 내 삶은 좋소 좋좋소에서 마무리 되겠구나. 모니터 앞에 앉아 미간을 찌푸릴때쯤 문자가 왔다. 


야 너 합격했으니 오삼ㅋ


!


그렇게 처음 지역 기획자로 문화재단 오티에 참석했다. 비가 왔는데 왜 슬프지 않은거지•••. 역시 나는 회사가 맞지 않나봐•••. 근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우산을 쓰고 달려가며 모든 문을 열었는데 아무 문도 열리지 않았다. 건물은 컸고 문은 많은데 아무 문도 열리지 않는다니...! 앞머리가 미역줄기처럼 젖어갔다. 이렇게 거지 꼴로 지각을 하면 짤리지 않을까 고민하며 전화가 왔다. 승현님 제가 나갈게요-! 

 너무 반가웠다. 사실 면접과 서류를 안내해주시던 분이라는 걸 한번에 알 수 있었다. 내적 친밀감이 오짐과 동시에 길을 여러번 물으며 건물 앞으로 갔다. 사실 나를 데리러 오신 분을 보며 감사하다는 말이 우수수 쏟아짐과 동시에 내가 꼴찌일까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꼴찌는 아니었다. 


지역 기획자 분은 나를 포함해 총 4분이셨다. 다들 같은 동네에 사셨고 내가 사는 동네에 살던 분도 계셨다. 나를 제외한 맨 처음 발표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천운영의 바늘을 생각했다. 아주 아늑한 숨소리가 살에 닿는 느낌으로 억겁의 시간이 그림을 만들어내는 느낌이었다. 나는 바늘의 고통을 생각하며 그 그림이 온몸에 새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와 바늘의 움직임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체 그 고통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맨 처음 바늘에 긁히던 순간을 생각하며 아득한 고통을 상상했다. 이건 사실 텍스트로만 남아 있는 고통이라 사실 그렇게 피가 흐르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그림만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두번째 발표를 들으며 나는 자꾸만 돈암시장에 갔다. 델리에서나 볼 수 있는 천막들 색색의 그림들 그리고 닭을 삶아내던 순간들을 머리 속에 그리며 그 구불구불한 길을 자꾸만 올랐다. 그곳에서의 나는 깨진 타일들을 밟으며 거미를 터트리고 놀았다. 요즘도 가끔 그곳을 지날때마다 환영과 동시에 피가 고여 썩어버린 향을 기억해낸다. 스물스물 올라오던 그 오래된 기억의 파편들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다음에는 꼭 델리에 가야지. 

 빠르게 시간이 지나 마지막 기획자님의 발표를 들으며 나는 빨간 다리를 생각했고 그곳에서의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아 나도 학생이었는데. 아무튼 개성 넘치는 기획자 분들이 계셨고, 재단 분들도 열정이 넘치셔서 뭔가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근데 원래 심장은 뛰는 거니까. 멘토 분도 계셔서 나의 허접한 결과물들도 이제는 좀 덜 허접해지려나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원1말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니 너무 멋진데? 스스로 생각하며 다음에는 조금 더 많이 준비해 가야겠다 생각했다. 사실 내가 제일 부족해보여서 부끄러웠다.


 나는 인간은 왜 저렇게 생겨먹었나 고민하는 사람이기에 아마 이런 고민을 가지고 또 다시 모임에 가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 모이게 된 이유와 가장 정붙이며 살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모아서 하나의 작품처럼 기획해 마무리해볼 예정이다. 이건 사실 동네를 위한다고 했지만 동네에 살고 있는 나를 위한 작품이기도 했다. 집구석이 작작 망했다면 나도 정 붙이고 살만한 동네가 진즉 있었을텐데,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1초정도 있었지만 집어치웠다. 어쨌든 살아야한다면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게 나았다. 아 뭘 만들까 어디부터 만들까 무엇이 맛있을까, 괜히 고민하며 오늘도 그 동네 작업실로 향한다. 그래도 이왕하는 김에 무엇인가 멋지게 만들어 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절실했던 기회인만큼 나도 그들이 납득할 수 있게 나만의 기획을 멋지게 해내고 싶다. 오랜만에 내것을 만든다는 사실에 심장이 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심장은 원래 뛰는거지만 그래도...! 


 동네 주민으로서 동네 주민들이 새로운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기획하는 작품으로부터 얻어가면 좋겠다.


1차 오티 컴플리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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