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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May 22. 2023

가상현실 세계관?

루크레티우스 -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유대교 랍비들은 토라와 미드라시를 통해 신의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한 적이 있다. 토라를 부정하는 자, 그리고 에피쿠로스(Ἐπίκουρος) 철학을 따르는 자들이다. 일부 학자들은 1세기 유대인들 사이에 '에피쿠로스'라는 말 자체가 '이교도'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 '헬레니즘 시대 철학'에 대한 내용이 한 두 페이지 정돈데, 에피쿠로스 철학을 한 문단도 채 안 되는 분량 안에 전부 설명하고 있다. 핵심은 이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쾌락주의자'들의 사상이고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쾌락의 상태인 '아타락시아'에 도달하는 것. 이것만 알고 있어도 내신 문제를 푸는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언뜻 보면 정말 마이너 한 철학은 사실 현대, 특히 21세기 지식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세계관이다. 본인 스스로 에피쿠로스 학파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현대 지식인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논제를 보면 에피쿠로스의 사상과 동일한 맥락의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많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Lucretius 99? ~ 55? BC)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 / "On the Nature of Things")이다. 이 서사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가장 잘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1차 자료이다. 모든 철학은 자연학에서 출발해 윤리와 정의 등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Δημόκριτος)의 자연학, 즉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됐다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다.


물론, 현대 양자역학을 통해 에피쿠로스, 그리고 루크레티우스의 원자에 대한 주장들은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지 오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전히 그리스, 로마 신들의 그림자 속에 살아가고 있던 시대에 한 명의 지식인이 원자론(Atomism) 하나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 그리고 사회현상, 심지어 인류의 역사까지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과 이와 같은 소재로 가장 위대하고 보존 가치가 높은 역사만 다룬 서사시라는 장르로 묘사했다는 걸 보면 '사물에 본성에 관하여'(이하 '사물의 본성')은 참으로 흥미롭고 놀라운 작품이다.

corporibus caecis igitus natura gerit res
자연은 눈먼 입자들로 하여금 역사한다.
(Luc. I. 328)

'사물의 본성'의 1483년 사본

21세기에서 루크레티우스는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고대 과학 문헌 중 가장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Φυσικὴ ἀκρόασις)에는 다소 몰상식해 보이는 주장들도 진리로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계속 '자연학'을 찾아서 공부하는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내세우는 결론보다는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공부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고, 그 문헌 자체가 우리의 사고방식, 과학사에 기여한 바 때문이다.


루크레티우스가 훗날 철학과 과학, 특히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과 현대 과학주의에 미친 영향력은 브런치 글 하나로 절댈 담을 수 없다. '사물의 본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받은 사상으로는 데카르트와 뉴턴의 기계적 세계관, 미국의 건국과 정교분리, 심지어 다윈보다 자연선택을 먼저 주장하고, 프로이트보다 무의식의 개념을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CS 루이스를 처음에 무신론자로 만든 책이기도 하다. 더 놀라운 건 현대 무신론주의는 물론이고 근대 기독교 세계관에서도 루크레티우스의 흔적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Epicureanism 

루크레티우스의 시는 멤미우스(Mmemius)에게 에피쿠로스 철학을 통해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전수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루크레티우스가 활동하고 있을 때 예수가 태어나기 한참 전이지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쓴 서신서와 묘하게 비슷하다.


아타락시아(ἀταραξὶα)를 이루는 게 철학의 목적인데, 많은 이들은 이를 '쾌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루크레티우스가 전하는 쾌락은 육체적 즐거움을 극대화시킨 상태가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최상의 행복이다. 그렇다면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시인은 이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주장하는데,


'사물의 본성'의 철학은 원자에서 출발하고 원자에서 끝난다. 원자는 희랍어로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요소"((ἀτομος/'atomos')를 의미한다. 라틴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에 '물질' 또는 '입자' 정도로 해석이 가능한 corpus('corpora prima')라는 단어를 쓴다(실제로 루크레티우스는 희랍어에 비해 라틴어는 어휘가 너무 빈약해 한탄한다). 모든 물체와 생명은 원자와 공허(inane, 영어로 "void")로만 구성되어 있고 시인은 화산,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계급사회의 출현, 꿈, 심지어 신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신의 글을 이야기한다.

Quin etiam passim nostris in versibus ipsis multa elementa vides multis communia verbis
더군다나 필자의 시를 보더라도 같은 글자로 구성된 단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Luc. II.688-689).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Religio

앞서 에피쿠로스 학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원자론을 통해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루크레티우스는 애초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해서 탐구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당연시 여겼다. 정확한 신들의 습성에 대한 의견은 다양했지만, 거의 대부분 그리스인들은 인간은 육신과 영(ψυχη /'이성'을 뜻하는 Animus, '영혼'을 뜻하는 Anima를 혼용함)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에서 영은 육신이 죽은 뒤에도 영원히 지속되어 사후세계에서 심판을 받는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바로 이 사후 심판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인간은 현세에서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의 이피게네아(출처: 위키백과)


이 불안으로 인해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많이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트로이 전쟁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아가멤논 왕이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군이 에게 해를 안전히 건너 트로이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자신의 딸인 이피게네아(Iphigenia, Ἰφιγένεια)를 제물로 바친다. 그는 인간을 이와 같은 어리석음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선포한다.


tantum religio potuit suadere malorum
미신은 (인간이) 이토록 큰 악행을 저지르도록 현혹한다.(Luc. I. 101)  


루크레티우스는 인간의 영혼 역시 육신과 마찬가지로 원자와 공허로 구성된 물리적 물체라고 주장한다. 모든 물체는 언젠가 분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은 사후세계로 넘어갈 일이 없다. 마치 손이 잘려나가면 그 손은 독립적으로 물건을 만지거나 촉감을 느낄 수 없듯이 육신과 떨어진 이성/영혼은 결코 사고를 하거나 감정을 가질 수 없다.

quoniam quassatis undique vasis diffluere umorem et laticem discedere cernis... crede animam quoque diffundi ultoque perire ocius et citius dissolvi corpora prima
그릇을 격하게 흔들면 안에 담긴 액체가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걸 인지할 수 있듯이...  영혼 역시 보다 빠르게 흩어지며 보다 속히 태초의 입자들로 분해되노라(Luc. III.434-437).


죽음은 어쩌면 태어나기 이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동일할 수도 있다.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은 만물("cosmos", κοσμος)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주장했다("Intelligent Design"). 하지만 루크레티우스는 자연은 결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시인이 돌을 주워서 그것을 도끼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 돌이 도끼로 사용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거처럼 말이다. 다만, 수많은 원자들이 모든 경우의 수와 조합을 시도하다 보니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창조론자들과 물리학자들의 토론을 보는 것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nil ideo quoniam quoniam natumst in corpore ut uti possemus, sed quod natumst id procreat usum
우리 몸으로부터 난 어떠한 것도 우리가 사용하도록 난 것이 없는 반면, (세상에) 난 것이 그 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노라(Luc. IV 834-835)  


루크레티우스는 철학자 중 최초로 "악의 문제"를 신들의 섭리를 반대했다. 그는 '사물의 본성' 제6권에서 제우스의 번개를 예로 든다. 만약에 제우스(Juppiter)가 악인들을 벌하기 위해 번개를 내리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번개는 신이 계획한 곳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면, 어째서 무고한 사람들도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인가? 벤자민 프랭클린이 연으로 번개가 사실 전기로 이루어졌다는 걸 증명하기 수 백 년 전에 이미 번제를 자연현상이라고 설명한 셈이다.


Matrix 세계관 

얼마 전에 메트릭스 영화가 새로 개봉했었다(Matrix: Resurrections). 후반부에 새로운 메트릭스를 설계한 "분석가"(the Analyst / 닐 패트릭 해리스 연기자)와 네오(키아누 리브스)에게 메트릭스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컴퓨터 코드를 구성하는 수많은 "1"과 "0"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너무나도 진짜 같은 가상현실에 감탄하는 그의 대사를 들으면 입자와 공허로만 만들어진 세상을 묘사하는 루크레티우스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루크레티우서가 '사고'가 이루어지는 원리를 설명할 때, 미각, 후각과 같은 감각과 함께 설명한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끊임없이 진동을 한다고 믿었다. 이 진동으로 인해 꽃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꽃과 유사한 모양의 미세한 막을 흘린다고 주장한다. 이 막을 라틴어로 Simulacra라고 한다. 이 Simulacra가 눈에 닿으면 그게 시각,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되고, 코에 닿으면 냄새, 피부에 닿으면 촉각 등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Simulacra가 인간의 이성(Animus)에 닿는다면? 인간의 Simlacra와 말의 Simulacra가 우연히, 동시에 이성에 도달하면서 우리는 켄타우르스를 상상하게 된다. 잠자고 있을 때 Simulacra가 들어오면 그게 바로 꿈이다(Luc. IV).

enim mens est et mire mobilis ipsa
그렇기에 이성은 이토록 움직여지기 쉽노라(Luc. IV 748)

 

메트릭스에 가장 큰 영감이 된 책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신뢰할 수 없다는 포스트 모더니즘 책 "Simulacres et Simulation"(시뮬라시웅 / 장 보드리야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 그의 아이디어도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영감을 얻고 있는 듯하다. 네오와 같은 메트릭스의 인간들은 기계들과 인간을 억압하는 가상현실로부터 인간의 탈출을 돕는 설정인데, 이는 진리("Gnosis"/γνοσις; 영화에서는 메트릭스 코드를 볼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를 통해 물리적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영감을 두고 있다.


루크레티우스를 비롯한 에피쿠로스 학파는 인간은 오로지 감각과 경험만을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지주의자들은 오로지 관념과 이상만 의미 있다고 주장했는데, 1세기 중후반 로마군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불태운 이후, 수많은 유대인들이 영지주의로 개종하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 야훼가 유대인들을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고, 이 전쟁이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종말론적, 최후의 선과 악의 결전이라고 믿었지만, 야훼로 통하는 통로인 성전이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Legacy 

'사물의 본성', 그리고 이 책이 전하는 에피쿠로스 철학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몇 줄 안 되는 소개에 어울리지 않게 현대 과학, 사상, 그리고 문학과 대중문화에도 미친 파급효과가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하나의 블로그 게시글로 다 소개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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