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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슬비 May 21. 2020

질투

드라마를 보면 며느리를 질투하는 시어머니가 나오곤 한다. 아들을 위해서 며느리를 찾으면서 막상 며느리를 들이면 질투한다.  부분은 정말 이해가  되는 대목인데,  마음을 이해하게  계기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엄마가 결혼했다. 우리 엄마 성격에, 평생 혼자   없을  같고 누군가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엄마가 결혼한다고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엄마는 무조건 나만의 것이었고, 나에게만 애정을 쏟아야만 했다. 새아버지가 생긴 이후 나는 엄마를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엄마의 모든 관심은 분산되었다. 나는 그게 마음 아팠다.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임신하면 말을  듣기 시작한다. 임신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도, 심지어 부모가 임신 사실을 아직 몰라도 신기하게 말을  듣기 시작한다. 동생이 생기면 동생을 몰래 때리기도 한다. 자신을 향한 관심이 동생으로 분산되는  싫은 것이다. 나는  혈육도 아닌 사람이 나타나 엄마의 신경을 빼앗아 가는  힘들었다. 심지어 주위에서 1+1이라는 식의 농담을 하기 시작했고, 마치  존재가 엄마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인생을 위해 내가 사라져 줘야   같았다. 엄마도 여자라는 식의 말은 나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딸에게 엄마는 엄마다.  딸에게 엄마도 여자라는 말을 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엄마를 이해해줘야 한다는 뜻이겠지만, 어린 딸에게는 엄마의 품이 필요할  엄마를 이해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 생각해본다. 내가 만약 아들이었다면, 엄마를 두고 이렇게 질투했을까? 내가 딸이라서, 그리고  대상이 엄마라서 질투를   아닐까. 그리고 나와 엄마의 관계가 유달리도 특별해서 더욱 질투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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