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려서 무기력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인가 긴장감도 사라지고 나에게 “루틴” 이란 게 있었나 할 정도로 머리가 멍해졌다. 무기력의 바탕에는 가장 경계해야 할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깔려있다.
루틴 이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 '이게 다 배부른 소리지'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양 의무를 책임져 주고 있는 남편이 있으니, 한가롭게 삶의 방향 운운하면서 이런 거나 끄적이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남편이나 동거남, 재혼남에게 살해를 당하는 여성들의 뉴스가 종종 들려온다. 계획적인 살인일 때도 있고, 홧김에 욱해서 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다.
이런 흉흉한 사건 사고를 듣다 보면, 어차피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게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자다가 옆에서 내 목은 따지 않겠지.’라는 근본 없는 믿음 속에서, 주워들은 케이스들을 기반으로 시스템 안에 머무르는 게 안전할 거라는 굳은 생각을 갖고 있다.
가끔 나의 안위가 걱정되는 사촌 남동생이 전화를 한다. 부부 관계나 남성의 심리를 물어볼 정도로 친하고 편한 남자가 주변에 없기에, 이종 사촌인 이 동생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답을 얻기도 한다. 또, 요즘 세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듣고서 놀라기도 하면서 위로도 받는다.
나의 근래 이야기들을 쭉 들은 사촌 동생은 "누나는 아직도 매형 좋아하나 보네."라고 하면서, “이 나이쯤의 부부는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조언을 덧붙인다.
갖은 풍파를 겪었음에도 나는 아직도 남편에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 이런 내가 시류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 혼자만의 판타지 세계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이게 다 평생을 남편 하나만 남자로 알고 살아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을 때 되면 나만 억울할 것 같다.
갑자기 쏟아지는 여름비 소리가 한 방향으로만 치닫는 내 생각을 환기시킨다.
한낮의 폭염으로 달궈진 밤공기를 식혀주는 빗소리가 시원하고 개운하다. 오늘은 사그락거리는 오리털 이불을 덮고 자야겠다.
얼마 전부터 무료 이혼법률 상담 스팸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열어 보지도 않고 당연히 삭제했었고, 스팸 메일로 지정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놔뒀었다.
이 시간에 메일함을 열어 봤더니 또 무료 상담 스팸 메일이 와 있다. 호기심에 한 번 메일을 열어봤다.
“상대방의 잘못과 실수의 무게가 여러분의 삶을 짓누를 수 없습니다.
만약, 결심하셨다면 당당히 한 걸음을 내딛으세요.”
‘당당히 한 걸음을 내딛으라..'
한 걸음 내딛기도 무수한 내적 갈등이 있겠지만, 그 후 두 걸음, 세 걸음 내딛기는 더 어려운 게 경제력 없는 이혼녀의 삶이다.
그리고, 상담료는 얼마 안 한다. 수임료가 비싼 거지.
첫 번째 결혼 보다 두 번째, 세 번째 결혼은 더 깨지기 쉽고, 재혼, 삼혼의 경우에는 나이가 육칠십 세가 넘어가게 되면, 소위 ‘핏줄이 땡긴다’고 하여 새 배우자를 배제하고, 각자의 자식들에게 재산 증여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다시 한번 법률혼이 깨지기도 한다고 한다.
하여 뼈를 깎는 인내로 첫 번째 결혼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을 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사람마다 나이대나 처한 상황이 각양각색일 테니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게 뭔지는 몰라도 첫 남자였던 남편 외에 다른 사람과 살을 맞대고 산다는 건 상상이 안 간다. 혼자 살면 살았지. 그리고 애는 어쩐단 말인가. 성인의 나이가 됐어도 자식은 언제나 보호해야 할 대상이고, 만약에 부모에게 각자의 새로운 배우자가 생긴다면 이혼으로 홀로 된 자식은 어디 가서 마음을 의지할 수 있을까. 그 헛헛함은 누구에게서도 채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이런 스팸 메일 좀 보내지 마라. 필요하면 "내돈내산"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