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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Feb 13. 2024

중년 부인들 모임    


우리 집에서 차로 두 시간 걸리는 지역에 우연치 않게 모여 살게 된 대학 친구들과 후배를 만나러 갔다.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잠깐 나온 후배와 함께 대전을 방문한 후 그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 있었다.


우리 여학생들 단톡방은 두 개가 있다. 우리 학번의 여학생 네 명(나머지 한 명은 미국에서 산다는 소식만 듣고 있다)과 바로 아래 학번의 여학생 중 네 명이 들어와 있는 1번 단톡방. 그리고 우리 학번 세명과 아래 학번의 “홍반장” 한 명으로 구성된 2번 단톡방. 2번 단톡방이 소위 "자칭" 이너 써클 멤버(inner circle member)이다. 2번 단톡방에서는 좀 더 '사실적시'에 의거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그 결과 더욱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단톡방에서만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던 차였다. 두 시간 남짓 운전을 하고 내려가는데, 유월 초여름의 햇볕이 차창을 통해 내리쬐었다. 에어컨을 적당히 강하게 틀어 놨는데도, 내리쬐는 햇빛에 내 왼팔이 뜨끈뜨끈 했다. 약속 시간 정각에 만나기로 한 장소인 롯데백화점에 도착했다. 평일 점심시간에 백화점에 와 본 지가 오래돼서 이렇게 차가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주차 자리를 찾는데 십분 정도가 소요됐다. 평소 정해진 시간에 늦는 걸 수치스럽게까지 여기는 나는 겨우 찾은 주차장 벽 바로 옆 자리에 "기가 막히게" 주차를 하고, 서둘러서 식당가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지어진 지 오래된 백화점 특유의 묵직한 느낌이 드는 식당가가 눈에 들어왔다. 약속한 밥집에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줌마인 듯 줌마 아닌’ 동기 두 명이서 "씩" 웃으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 모습을 보고서야 단톡방의 이름들이 내 환상 속의 인물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오랜동안 만나지 않고 톡으로만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이 때로는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 스키야키 점심특선을 주문하고, 조금 지나자 홍반장이 크게 팔을 휘저으며 식당으로 들어왔다.

식사를 하며 1차로 가벼운 근황 얘기를 나누고, 같은 층에 있는 카페로 이동하기 위해 밥집 계산대에 옹기종기 모여 섰다.


키 작은 내 옆에 바짝 붙어 선 J는 입학할 때부터 큰 키로 눈에 띄었었는데, 과 선배들이 키를 물어보면 그 당시 170cm의 키를 167cm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했었다. 그런데 예전에 만났을 때 졸업 후에 키가 몇 센티 더 컸다고 고백했었다.

J는 입학식 날부터 시작해서 대학 4년 내내 나와 커플처럼 붙어 다녔었다. 혹시 여러분이 "서수남 하청일" 코미디 팀을 알지 모르겠다. 우리 둘이 팔짱 끼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우리가 눈에 확 뜨인다고 떨어져 다니라고 말하곤 했었다.

오늘 이 친구는 신발을 덮는 린넨 트라우저를 입고 있었는데, 내가 바지단을 들어 올려 샌들 굽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 볼 정도로 여전한 다리 길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찌나 관리가 잘 되었는지 20대 때 보다 더 군살 없는 몸에 편안하고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커피와 말차 케이크를 주문하고, 우리는 눈에 잘 안 뜨이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J는 최근에 결혼 25주년을 기념으로 여행을 가는 대신 안방에 "시몬스 더블베드"를 들여놓아 남편과의 잠자리를 분리해서 편하게 자고 있다고 했다.


학부 졸업 후 전문직 양성 대학교에 재입학한 다른 친구 H는 아직도 주 5일 근무를 '9 to 6'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의 벤처 회사가 대박이 나서 백억 주식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몇 년 전에 들었었는데, 백억 부자 맞냐고 할 정도로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H는 수수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근황토크에서 자신은 "백억 거지"가 되었다고 하면서, 작년에만 세금을 십억 현찰로 내서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이 부부도 아이들이 다 커서 대학교 근처에 사니 빈 방이 생겨서, 서로 저 방 가서 자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


홍반장으로 불리는 후배 한 명은 소위 잘 나가는 과의 사모님인데,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명치끝이 무거워졌다.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벤트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홍반장의 "단짠단짠"이 아닌, "단짠짠짠" 하는 짠내 폴폴 나는 얘기들을 듣고 나니, 역시 쉬운 인생 하나 없구나 싶었다.

홍반장과 그녀의 남편이 교류하는 사람들이 백억 대 자산가들이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소상히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셋은 입을 떡 벌리고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 백화점 내 성심당에 들렸다. 각자 시그니쳐 빵들을 사고, 그녀들은 우리 애 갖다 주라고 맛있는 빵들을 포장해 주었다.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퇴근 시간 교통체증 전에 집으로 출발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머리에 딱딱 정리되는 생각이 있었다.

"갑 오브 갑"은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자기 노동으로 돈 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플러스 친정집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노동 가능한 연령으로 집계될 때, 열심히 일해야겠다!"라고 오늘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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