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만에 겨우 약속을 잡아 친구들을 만났다.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이기에는 강남이 중간 지점이라 음악을 크게 틀고 약속 장소를 향해 달렸다. 경기도에서 강남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차로 가득한 도로를 운전하면서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친구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촌동에서 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바로 옆 구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눈 마주치자마자 둘이 인사도 없이 깔깔 웃으면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집주인 등장. 또 한 번 웃음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퍼져나간다.
우리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브런치 카페로 향하는 대로변을 걷고 있었다.
늦봄의 따뜻한 햇빛이 강남 한복판의 키 높은 건물 유리벽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면서 예쁘게 꾸미고 나온 친구들을 바라보니, 나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좋아졌는지 주얼리를 주렁주렁하고 있었다.
밝은 빛 아래서 얼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인 듯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녀들의 여전하지 않은 '중년의 쳐진 눈꼬리와 주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 얼굴을 매일 보니까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내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살은 쪘어도 늙어 보이는 건 싫은데..'
우리는 브런치 카페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평소에는 쓰지 않는 투박한 단어들을 쏟아냈다.
우리 셋은 아니, 열혈 직장인 친구를 포함해서, 넷은 평온한 삶을 살다가 결혼들을 하면서 그동안에는 몰랐던 온갖 매운맛을 보게 된 전우였다.
아! 하면 어! 하는 사이로 누구 한 명이 힘들었던 얘기를 하면, 친구를 힘들게 했던 대상은 공공의 적이 되어 우리의 쌍욕의 기운을 받아야 했었다.
이제는 화나는 얘기를 하면서도 흥분하지 않고 피식피식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런 게 연륜이라는 건가 싶었다.
해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와 어지러운 집을 치우고 나서, 식탁 의자에 앉아 친구들 모습을 떠올려 본다. 오늘 많이 웃었는데, 왜 가슴 한편이 저릿한 건지.. 금세 눈이 촉촉해진다.
세상을 겪어 냈으나, 때 타지 않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내 친구들아! 나와 함께 귀여운 할머니가 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