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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칠년간의 독백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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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hotlionheart Feb 12. 2024

혼자만의 방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가끔 남편이 주말 아침에 볶음밥을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특히 아이 밥 위에는 달걀을 풀어 지져서 만든 “하트 모양”을 얹어주고, 그 위에 케쳡으로 눈코입을 만들어 꾸며줬었다.

그 이후로는 남편의 볶음밥을 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즈음에 친정 부모님과 합가를 하면서, 모든 가사노동은 나의 책임과 의무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아쉽기도 했었고, 아이 학교 문제 등으로 부모님의 경제적인 혜택을 받으며 합가를 했기에, 내 머릿속은 온통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합가 한 이후로 나는 아침상만 세 번씩 차려내야 했었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남편 새벽밥을 차리고 나면, 그다음으로 출근하는 아빠의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아침식사로 수퍼푸드로 알려진 귀리, 아마란스, 퀴노아 등의 곡물들을 불려서 갈아 만들어야 하는 “귀리죽”을 원하셔서 이틀에 한 번 꼴로 죽을 만들어 드려야 했다. 그다음으로는 학교 가는 딸아이를 위한 아침 밥상을 차려냈다.

매일 산처럼 쌓여있는 설거지와 다섯 식구가 어질러놓은 집 정리를 하고 나면 오전 시간이 다 지니가 있었다. 얼마 안 있어서 손목이 고장이 나서 식기세척기를 들이게 되면서 그나마 일손이 줄게 된 게 다행이었다.

주말이 되면 외식도 배달음식도 싫어하시는 부모님 덕에, 그야말로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을 차리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나면 또 저녁을 차려야 됐었다. 나에게는 이게 보통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매 끼니마다 한 두 가지씩은 새로운 메뉴를 상에 올려야 되니, 주말에는 오후 다섯 시부터 부담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누구처럼 손이 빨라서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해본 음식도 할 때마다 레시피를 한 번씩은 숙지하고 시작하는 나였기에 대가족 살림살이가 나에게는 버겁기만 했었다.

십 년 가까운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면서 엄마와의 사이도 많이 틀어지고, 온 가족이 분열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작년 여름에 내가 용단을 내려 분가를 결정하였고, 부모님이 먼저 사시던 집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이 집을 팔아서 부모님께 빌린 돈도 갚고 우리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부동산 경기 하강과 더불어 고금리로 인해 아예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게 되어, 어영부영 이 집에 눌러앉아 살고 있다.

엄마, 아빠의 짐이 빠지고 난 빈 방들은 가구가 있던 자리가 벽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홀로 남은 티비 케이블 선이 더 방을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매수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방을 잘 꾸며놓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나는 도배업체를 불러 도배를 시켰다.

혼자 있고 싶을 때 나만의 아늑한 공간이 필요했기에, 엄마가 쓰던 안방을 내방으로 만들기로 혼자 속으로 결정했다.

방 컨셉은 '여행지에서 편하게 묵을 수 있는 최소한의 가구로만 구성된 미니멀한 부띠끄 호텔방'으로 잡았다.

눈이 빠져라 인터넷을 검색해서 방에 놓을 가구들을 쉴 새 없이 주문하기 시작했다.

일인용 고무나무 침대와 작은 서랍이 달린 사이드 테이블, 커피잔이나 소품들을 놓을 키 낮은 라탄 테이블, 일인용 패브릭 소파와 고무나무 스툴, 흰색 철제와 밝은 원목으로 구성된 책상과 작은 다용도 선반, 밝은 원목 의자, 집에서 입는 옷들을 걸어놓을 작은 원목 행거,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한 흰색 조립식 키 낮은 책장이 순서대로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밝은 회색 카페트와 인디핑크 한 방울이 더해진 베이지색 암막 커튼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