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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깐족 대마왕

by hotlionheart

목요일의 셔틀 기사는 오늘도 왕복 1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했다.



선생님 모드


수업하는 학교에서 빌런들 문제를 '해결 아닌 종결'을 시켰기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새 출석부를 프린트해 와야 하는데, 고학년 학생들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인쇄를 안 해온 걸 학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교무실 선생님의 PC를 빌려 출석부를 인쇄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낮고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 기분 탓인지 한숨 소리와 함께 주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저학년 수업은 더 열과 성의를 다해 진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단어게임을 하면서는 아이들도 나도 게임에 빠져든 나머지 종이 치고도 오분을 더 하게 되었다.

나는 잠시 활기를 되찾은 듯 보였지만 아이들이 나가고 난 뒤에 교실을 정리하면서 몸과 마음이 축축 쳐졌다.




목요일의 기사


교무실에 출석부를 반납한 후 주차장에 있는 차에 올라타서 지금 내 마음 상태를 대변해 줄 첼로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딸아이에게로 출발을 했다. 느린 템포의 음악이 평소보다 운전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고, 나를 더 차분하게 만들어줬다.



내 딸은 엄마 특정 깐족이라네


연세 지긋한 주인 내외분이 정성을 다해 지은 4층 짜리 건물 주차장에 도착했다. 짐 갖고 내려오라고 딸아이에게 카톡을 했더니, 자고 있다면서 엄마가 올라오라고 한다.


‘수술 후 한 번도 고분고분 내 말을 들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 올리며, 핸드폰과 차키, 롱패딩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가 자다 깬 목소리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서 선빵을 날린다.

딸 : ”왔어? “ ”설거지 좀 해. “

나 : (내가 너 하녀냐? 설거지 좀 해줘도 아니고..) 나도 좀 쉬자. 피곤하다. 빵 만든 거 있어? 점심도 못 먹어서 배고프다.

딸 : 거기 모카빵 만든 거 있잖아.

나 : 어디? (주변을 둘러보다가 식탁 모서리에 있는 모카빵 한 다발을 발견하고서, 좀 친절하게 거실로 나와서 알려주면 안 되니?)


달콤한 모카빵에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맛있을 것 같아서, 지난주에 사다 놓은 인스턴트커피를 싱크대 선반에서 꺼냈다. 가스레인지 옆에 먹다 남은 물이 조금 들어있는 생수병이 있었지만, 새 생수병을 꺼내 전기 주전자에 물을 붓고 있었다.

어느새 거실로 나온 딸아이가 따지듯이 묻는다.

딸 : 그 옆에 남은 생수 있는데, 왜 새 걸 뜯었어?

나 : 물이 조금밖에 안 남아 있잖아~ (언제 개봉한지도 모르는 생수 보다 나름 신선한 새 생수를 끓이고 싶었다고!)


전기 포트 안의 물과 함께 내 머리에서도 스팀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싱크대에서 손을 씻은 후 선반에서 파스타 접시로 쓰는 크고 예쁜 접시를 꺼내 모카빵을 담고, 인디핑크 머그잔을 꺼내 커피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상온의 물을 더해 마시기에 적당한 온도로 맞췄다.


커피 크림이 속에 들어있는 모카빵을 한 줌 뜯어 맛을 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다! '


화장실에서 나온 딸이 빵을 담은 파스타 접시를 보면서,

딸 : 작은 접시도 많은데, 왜 그 큰 접시를 꺼냈어?

나 : (열폭하면서) 쓰고 싶으니까 썼지~~~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부글부글 끓는 화를 누그러뜨리며, 빵을 우걱우걱 끝까지 다 먹었다. 화는 났지만, 빵은 맛있었다.


내 딸은 어려서부터 요리와 베이킹을 좋아했고, 또 재능이 있었다. 부엌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재료비가 많이 들어도 만들고 싶은 거는 다 만들게 해 주었다. 딸아이는 중학교 때 요리를 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가족들에게 그 요리를 먹여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로해 주었다.

이런 딸의 꿈을 키워주려고 일종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내가 동네 딸 친구 엄마들한테서 일단 마카롱 주문을 받아내고, 딸아이는 배워본 적도 없는 마카롱을 유튜브 레서피를 보면서 밤새 만들었다. 체력도 안 됐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니, 게다가 돈까지 벌 수 있다고 하니 없던 체력도 생겼던 것 같았다. 해 뜨는 걸 보면서 나와 함께 마카롱을 넣는 포장박스를 접어 포장까지 완료하고는 딸아이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고, 포장된 마카롱은 집집마다 내가 배달을 해 주었다.

엄마들의 극찬이 담긴 카톡 피드백을 딸에게 보여주고, 또 나도 보면서 희망에 가슴이 부풀었었다. 이후에는 딸아이에게 생일케잌으로 딸기 생크림 크레이프 케잌 주문도 들어오고, 다른 디져트도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들어왔다. 크레이프 케잌을 주문한 엄마는 시세보다 높은 값을 쳐줬고, 호텔 케잌 보다 맛있었다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딸아이가 소질이 있었기도 했지만, 아이와 나에게 힘을 모아 주려는 엄마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 덕분에 아이는 자기 진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나의 "해봐야 안다"는 의견을 더해서, 망설이는 아이를 설득해 디져트를 배워보게 했었다. 챔피언 타이틀을 가진 유명한 디져트 선생님을 소개받아 공방에서 디져트 코스를 배우게 했었다. 배우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선생님의 유의미한 칭찬과 진로 상담으로, 아이는 자신의 소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진로도 정할 수 있었다.

관련 학과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베이킹 수준이 업그레이드되고 있어서 등록금 내주는 재미가 있다.


*그 당시에 유튜브, 인터넷 레서피 보고 딸아이가 만들었던 디져트, 타르트, 케잌 등의 사진을 찾아봤다.

약간 찌그러진 마카롱과 예쁜 마카롱


마들렌


달다구리


쵸콜렛과 레몬 덮개?를 씌운 타르트


얇은 크레이프를 한장씩 구운 후 만든 딸기 생크림 크레이프 케잌



어느새 집으로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나 : 너 짐가방 챙겨. 내려가자.

딸 : 저 큰 가방은 엄마가 들어. 난 이거 (작은 가방) 들게.

나 : ... (그래. 나는 너를 낳은 순간부터 무수리가 되었지.)


같이 차에 타고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딸이 기름을 확 들이붓는다.

딸 : 모카빵 안 챙겼지?

나 : 그거는 너가 챙겨 왔어야지. 그것까지 내가 챙겨야 하니?

딸 : 응!


와~ 운전만 안 하고 있었으면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도대체 너한테 나는 뭐니?'

'너 뒤치닥꺼리하는 사람이니?'

‘학교, 병원 모시고 다니는 기사니?’


와다다다 퍼붓고 싶은 말들을 속으로 삭였다.


자기 주변 사람들 누구에게도 저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데, 유독 나한테만 이러는 이유가 뭔가 싶다.

어떤 때는 애가 아프다고 부모가 다 받아주면서 키워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아니면 누구한테 쌓인 거 풀면서 사나 싶기도 하고.

아이 컨디션이 좋으면 깐족대며 나를 긁어대고, 아이가 아프면 내가 밥도 못 먹고 안절부절못하니, 차라리 계속 나한테 깐족대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에휴~~~ 저 깐족 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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