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나의 그 카페에서 드립커피를 주문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나서, 요즘 읽고 있는 Stolen focus(도둑맞은 집중력)을 폈으나, 저자 Johann hari(요한 하리)가 쓴 것처럼 나의 집중력을 흩트려 뜨리는 유튜브에 접속해 버린다.
그나마 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ted talk를 열면서, '영어강사인데 리스닝 연습을 해야지.'라는 핑계로 제목을 쫙 스캔한다. 그나마 약간 관심이 생기는 영상을 플레이시켜 봤지만, 확 꽂히는 게 없기에 머릿속은 금방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다.
요즘 초등학교 외부 강사 모집 공고가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내년에는 한 군데 더 나가보려는 계획이기에 ted를 닫고,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눈이 빠지게 내가 사는 지역과 학생 수가 많은 타 지역 학교들을 검색했다.
한 군데는 아쉽게도 어제 자로 이미 모집이 마감되었고, 많은 경우 기존의 강사가 재계약을 하는지 영어 과목 공고가 없었다. 공고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까 하면서 경기도 교육청 싸이트에 접속하여 구인 섹션으로 들어가니 앞쪽에 떡 하니 한 군데 학교에서 공고문을 띄워놨다.
하나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다. 내일은 이력서와 제안서 작업을 하면 되겠구나.
이때 학교 수업 출발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카페 건물 주차장은 기계식 타워 주차 시스템이다. 여느 때처럼 관리인 아저씨(사실은 할아버지에 더 가깝다)에게 주차증을 드리고, 셀프출차를 하려고 계기판에 내 차 번호를 눌렀다. 주차장 셧터가 내려오다가 바닥에서 30센티 떨어진 높이에서 갑자기 멈추더니 계기판에서 "띠. 띠. 띠." 하는 소리가 난다.
관리인 아저씨가 와서 계기판을 살펴보는데 부저 소리가 계속 난다. 셧터 밑을 살펴보니 왼쪽에 염화칼슘 포대를 쌓아놓은 뒤쪽으로 빨간색 소화기가 셧터에 끼어있었다. 아저씨가 “아휴. 내 정신 좀 봐 이걸 왜 여기다 놨지?” 하시면서, 끼어있는 소화기를 빼내고, 다시 계기판을 조작해 봤지만 셧터는 묵묵부답이었다. 염화칼슘 포대를 받아서 정리하시면서 별생각 없이 소화기를 뒤쪽으로 이동시켰다고 하셨다.
차에 있는 다른 가방에 교재, 수업 강의 노트, 마이크까지 다 있기도 하고, 잘못하면 수업에 지각할 것 같았다. 다급해진 나는 업체에 전화 좀 해보시라고 아저씨를 재촉했다. 아저씨는 업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나보다는 덜 급했는지 전화를 끊고서, “오는데 한참 걸린데~” 이러시고 만다. 나는 계기판에 적혀있는 1522-**** 번호로 전화를 걸어 지금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정확하게 언제 수리하러 올 수 있는 거냐고 묻자, 수리 기사님은 수원에서 이제 출발하신다고 한다.
“할 수 없다. 아저씨, 저 택시 타고 갈게요. 이따 다시 와서 차 찾아갈게요.” 했더니, 아저씨가 급하게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시며, 당신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택시비를 받아 가라고 하신다. 나는 찰나의 망설임 뒤에 ”갔다 와서 생각해 보고 받던지 할게요 “ 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나의 "빨리 좀 가 달라."는 말 한마디에, 택시 기사님의 운전 솜씨는 기사님 성함이 ‘빗사이로 막가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평상시 내가 운전했을 때 걸리던 시간을 삼십 프로나 단축하셨다.
덕분에 지각은 면할 수 있었다.
주차 관리인 아저씨에게 돈을 받아야 할지 말지 아직 결정을 못해서 택시 요금 영수증을 챙겼다.
수업에 온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마이크가 없어서 선생님 목이 아플 수 있으니 오늘은 조용히 잘해보자."라고 설득해 보았지만, 결국에 내 목은 아프게 되었다.
다시 택시를 잡아 타고 카페 앞으로 왔다.
학교 갈 때는 7,500원이 나왔는데, 다시 카페로 올 때는 8,800원이 나왔다.
7,500원 더하기 8,800원은 16,300원.
아. 택시비를 안 받기엔 금액이 생각보다 크다.
아저씨가 아까 내민 만원만 받을까?
아니야. 나 아까 늦을까 봐 발 동동 굴리고, 마이크랑 교재 없어서 힘들었잖아. 심지어 핸드폰 밧데리도 차에서 충전을 못해서 조마조마했잖아...
그래. 깔끔하게 15,000원 받으면, 나도 보상이 되고 아저씨도 마음이 편할 거야.
이렇게 논리로 무장을 하고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관리인 아저씨가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약간 겸연쩍어하면서 나는 두 장의 택시 영수증을 보여 드리며, "택시비가 이렇게 나왔는데요, 만오천 원만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아저씨는 나 때문에 고생했다며 흔쾌히 지갑에서 만오천 원을 꺼내주신다.
나도 아저씨께 오늘 고생하셨다고 하면서, 셀프 출차를 했다.
이제 나의 목적지는 60km 떨어진 딸아이 숙소다.
목요일의 모든 미션을 마치고 내 방 소파에 이제서야 앉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오늘의 에피소드들은 '나 글 쓰라고 엘프(elf)가 장난을 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또 주차 관리인 아저씨께 택시비 안 받아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로 내년에는 돈도 좀 더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저씨께 맛난 거 뭐 작은 거라도 갖다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