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요일 저녁은 카페 아르바이트 첫날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금요일 자정을 넘은 새벽이다.
나의 20대를 뒤돌아 볼 때, 제일 후회가 되는 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대학생 때 그 흔한 과외 아르바이트조차 한 번 안 해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연애를 많이 못해본 것이었다.
연애는 지금의 남편과 팔 년을 만나니 부모님도 어찌하지 못해 두 손 두 발 들고서 결혼을 허락하게 되었었다.
6년간 학교를 다니면서는 아빠가 용돈을 풍족하게 주셨고, 때때로 필요한 거 사라고 상품권도 주시니 딱히 아르바이트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편이다.
지금에 와서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연애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은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서 언젠가 학교에서 나이 많다고 그만 나오시라고 하게 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들어 하고 있었다. 커피 공부도 많이 하고 자격증도 여러 개 따놨으니, 언젠가는 내 소유의 작은 상가에서 카페를 해보겠다는 야무진 꿈도 있기에, 카페 아르바이트는 필수 코스라고 생각했다.
2-3년 동안에 카페 알바 자리를 구하려는 나의 노력은 박수받아 마땅할 정도였다.
평소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음에도, 알바 자리 앞에서는 작아지기만 하던 나였다.
그렇게도 안 구해지던 카페 알바 자리였다. 그런데, 그저께 익히 알고 있는 동네 카페에서 알바를 구한다는 글을 알바몬에서 보게 되었다. 공고를 보자마자 온라인 지원을 하고, 지원 확인 문자를 보내자 오분도 안되어서 카페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면접을 보자고.
스케줄 표를 보면서 이틀 뒤로 약속을 잡으려다가 그 사이에 젊은 경쟁자들이 나타날까 봐 그날 저녁 일곱 시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저녁때 카페에 가서 사장님 얼굴도 보고 카페도 구경하면서, 이것저것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인공고는 주 5일 일할 사람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 스케쥴이 화, 목에 있어서 주 3일 저녁시간만 가능하다고 했는데도, 사장님은 금요일인 모레부터 당장 나와 달라고 했다. 당장 나와달라는 이 말에 나는 신이 났었다.
그날 밤에 자다 깨서 센치해져서 가을노래 찾아 듣고 혼자 생쇼를 했었다.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이유는 온몸이 아파서 끙끙대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잠결에 아픈 게 더 힘들게 느껴져서 그냥 일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금요일인 어제 아침부터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알바 가기 두 시간 전부터는 안절부절하다가, 유튜브에서 <초보 알바 필수팁>, <초보 알바 포스기 사용법> 등을 검색해서 봤다.
그리고는 한 이십 분 먼저 카페에 갔다.
사장님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작은 카페인데 웬 메뉴가 이렇게 많은지, 각각의 레서피를 설명해 주는데 머리로 쫓아가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코팅된 레서피 매뉴얼이 있어서 집에 가서 외우려고 사진을 찍어놨다.
그리고는 포스기 사용법을 알려줬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런데 저녁 타임에 네 팀의 손님을 받으면서 포스기 화면을 손으로 누르는데, 내 손가락의 터치를 기계가 안 먹는 거다. 옆에서 사장님 왈, 손톱이 너무 짧아서 화면 인식이 안 되는 거라고 하면서, 볼펜 뒤끝으로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안 돼서 결국엔 주문을 한 건도 처리 못하고 사장님이 하게 되었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얼굴이 붉어지고 체온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환절기라 그런지 주문은 커피 외에 대추차, 생강차 등도 있었다. 평소 집에 있는 에스프레쏘 머신으로 매일 커피를 만들기에 커피 음료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procedure가 막 얽혀버렸다.
여기 메뉴얼에 따르면 카푸치노를 만들 때, 에스프레쏘 위에 시나몬 파우더를 먼저 뿌려주고, 그다음에 우유거품을 올리고 나서 나머지 스팀 친 우유를 잔에 부으라고 했다. 그런데, 기존의 일반적인 카푸치노 만드는 순서가 자동으로 나와버려서, 스팀 친 우유를 에스프레쏘에 부은 후 우유거품을 올리고 나서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려다가 여기 순서와 다르다는 게 생각났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사장님의 눈총을 받으며 얼른 우유 거품 위에라도 시나몬 파우더를 뿌려줬다. 이게 틀린 게 아닌데 여기서는 틀린 거라고 하니 좀 답답했다.
대추생강차 주문은 당연히 대추청과 생강청을 혼합해야 함에도 각 청의 병을 꺼내 들고 머리가 정지되어 버렸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동선도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비좁은 바 안에서 사장님과 서로 동선이 꼬이기 일쑤였다.
잠시 손님이 없는 틈에 사장님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예전에 사장님이 카페 컨썰팅을 받은 사십 대 중반의 남자 바리스타가 있는데, 그 사람이 아직 미혼이라면서 소개해줄 여자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갑자기 알바 첫날에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가 하면서, 사장님 본인도 싱글인데 나중에 자기한테도 여자 소개시켜 달라고 하려는 '지능적인 징검다리 계획'인가 싶었다. 그래서 현실을 머리에 "뽝" 각인시켜 주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시간 하고 돈 있으세요?"
순딩 순딩하게 생긴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사장님은 놀라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곧 정신을 차린 사장님이 "아니, 사십 대 중반인데 그런 게 중요하냐?"라고 되묻길래, "나이는 사십 대여도 살고 있는 현재 시대는 그런 시대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후 남은 시간은 어색한 공기만 흐르게 되었다.
등 돌리고 벽 보면서 설거지하는 시간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카페 문 닫을 시간이 다가와서 사장님이 마감 프로세스를 설명해 줬다. 먼저 홀 테이블과 의자를 정열 하고, 당일 팔다 남은 스콘과 쿠키들을 포장해서 냉장고에 넣고, 에스프레쏘 머신과 그라인더를 청소한 후 마무리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쇼케이스 전원을 꺼주고, 나가면서 문을 잠그기 전에 전원박스를 열어 메인 전원을 꺼주면 된다고 했다.
까다로운 과정은 머신 청소였는데, 에스프레쏘 머신의 샤워스크린 나사까지 분리해서 닦아줘야 하니 삼십 분 정도는 족히 소요됐다. 음식물 쓰레기 등 분리수거까지 마감 과정은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이미 내 허리와 발목은 과부하가 걸리고, 피곤이 쌓여 두 눈이 뒤로 쑥 들어가 버린 상태가 되었다.
사장님과 함께 문을 잠그고 카페 밖으로 나오면서 “아, 카페 사장 아무나 하는 거 아니네요.” 했더니, “아직 배울 거 많은데 벌써 그러면 어떡하냐고.” 하셨다.
집에 왔더니 소파에 누워 있던 남편이 수고했다면서 반겨주는데, 이 시츄에이션은 또 뭐지? 싶었다. 게다가 백만 년 만에 나 사과 먹고 싶다고 잘라달라고 하니까 순순히 주방으로 가서 사과를 썰어온다. 밤에 일 하고 왔다고 대우가 달라졌다.
내 방 소파에 기대어 앉아 사과를 씹어 먹으며 ‘와~ 몸으로 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거구나.’ 생각하면서, 작년에 우리 딸이 우동집과 양고기집에서 일 년을 일한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카페 하나 운영하는데 몇 사람의 품이 이렇게 힘들게 들어가야 하는 거구나!' 하면서, 왜 기존 창업자들이 카페 창업을 말리는지 이제서야 몸으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화장도 안 지우고 잠을 자고 있었다. 일어나서 살살 걸어보니 허리와 무릎, 발목이 아까보다 더 아프다.
고작 네 시간 일하고 나서 골병이 들었다. 최저 시급으로 계산하면 38,520원, 여기서 또 소득세 뗀다고 생각하면..
삼만 원이 보통 돈이 아니구나 싶으면서, ‘그동안에 몸은 참 편하게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2박 3일 동안 몸이 아팠다. 병든 닭처럼 토요일, 일요일에 계속 잠에 빠져들고 어제는 일요일에 문 여는 병원에 가서 수액도 맞고 왔다.
레서피도 외워야 되는데 미루기(procrastination) 증상으로 오늘 오후가 돼서야 밑줄 치며 대충 봤다. 보통 미루기 증상은 완벽주의자가 완벽하게 일을 못 해낼까 봐 걱정이 될 때 나타난다고 하는데, 오늘 나의 미적거림은 알바가 너무 가기가 싫어서였다.
네 시간 일하는 동안에 느껴질 체력저하와 그 후에 올 통증을 생각하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하고 싶지 않은", "unwilling to do" 여서 표정부터 굳어지고, 한숨이 푹푹 나왔다.
면접 볼 때 사장님이 관상쟁이처럼 날 보면서 “올 겨울을 못 넘길 것 같다(시한부 선고였나?)"라고 했었는데, 딱 봐도 일 못하게 생겼었나 보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일하러 가는 게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일주일을 채우고 말하는 게 나은가, 아니면 오늘 가서 못하겠다고 말하는 게 나은가'에 대해 나름 고민을 했다. 카페에 가면서도 계속 갈등을 했다.
차를 카페 뒤쪽에 주차하는데, 담배 피우러 나온 사장님과 눈이 딱 마주친 순간 오늘 그만둔다고 말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관상가로 판명이 난 사장님한테 주말 동안 아파서 잠만 자고, 링거도 맞고, 지금도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허허" 웃으시면서 "어떻게 그만하시겠냐?"라고 물으시길래, 냅다 "네. 몸이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사장님 왈, 딱 봐도 힘든 일 안 해본 것 같아서 오래 못 할 줄 알았다고 하신다.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인 오늘은 레몬청을 담그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고맙게도 사장님이 그 많은 레몬을 미리 베이킹소다로 닦아서 건조시켜 놓으셨다. 나는 열심히 칼질을 하며 레몬을 슬라이스 냈다. 그리고 레몬:설탕=1:1로 섞어 밀폐용기에 넣었다.
오늘은 사장님이 피곤에 쩔은 얼굴로 막내딸 전화를 받고서,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8시에 퇴근을 해버렸다. 카페는 10시까지 열어놔야 하는데, 갑자기 손님이 몰려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나 혼자 있을 때는 두 명으로 구성된 한 팀 손님만 오셨다. 주문한 메뉴도 간단하게 레몬꿀차, 자몽꿀차, 마들렌이었다. 손톱등으로 포스기를 누르니 오늘은 화면이 터치를 인식해 주었다.
레몬청 병과 자몽청 병을 쇼케이스에서 꺼냈다. 그런데 자몽청 병뚜껑이 안 열린다! 유난히 악력이 약해서 집에서도 남편이 잠근 텀블러 뚜껑을 못 열곤 했었는데..
재빨리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자몽청 병을 껴안고서 있는 힘껏 뚜껑을 돌려 봤지만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나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며 식은땀까지 흘리며 열어보려 했지만 병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그 순간 진심 울고 싶었다. 이성의 끈을 잡고서 병을 잘 살펴보니, 담근 자몽청이 아니라 시중에서 산 청인걸 발견하게 되었다. 쇼케이스를 뒤져서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자몽청 병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힘껏 병뚜껑을 돌렸다. 아, 다행히 뚜껑이 열렸다! 살았다!
안도감을 느끼며 레몬꿀차와 자몽 꿀차를 잽싸게 만들어, 손님에게 우아하고 친절하게 서빙해 드렸다.
이후 마감 프로세쓰에 따라 머신 청소를 하고, 행주를 삶고,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가게 메인 전원 버튼을 껐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자정이 넘은 지금 이 시간에 달콤하고 끈적한 재즈 음악을 틀어놓았다.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수요일에 카페에 안 나간다는 생각만으로 얼굴이 환해졌었다. 밥맛이 떨어져서 하루종일 먹은 게 없었는데, 갑자기 식욕이 돌아서 한밤중에 밥도 한 그릇 먹었다.
그런데 왜.. 이리도 마음이 헛헛한 것인가..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이 복잡하다.
오전에 코스트코에 가서 할로윈 데이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나눠줄 구디백 재료들을 사 왔었다.
책장 한 층에 쌓여있는 캔디와 초콜릿 봉지들을 바라보며, 내일은 구디백이나 만들고, 연말에 강사 모집공고가 나오는 학교들에 이력서를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분간 본업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