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업을 마치고 딸아이 집에 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허기가 져서 싱크대에서 손을 씻은 후 자취집 냉장고를 뒤진다. 의외로 잘 정리된 반찬통들을 들여다보며 속으로 '기특하네 ‘ 하면서, 아이가 해놓은 반찬을 골라 꺼내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방에서 나온 딸아이가 그런 나를 보고 "자취생 반찬을 털어먹는 엄마"라고 한다. 굴소스와 간장으로 볶은 오뎅볶음이 왜 이리 맛있는지 젓가락이 자꾸만 간다. 딸아이는 어떤 종류의 음식을 만들던지 항상 나보다 더 잘한다. 우리 할머니와 언니를 닮았나 보다. 나에게는 미각과 요리 유전자가 건너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다 먹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전기담요가 켜진 침대에 소처럼 누웠다. 누워서 보니 침대 바로 옆 큰 창문을 항상 완벽하게 가리고 있는 블라인드가 눈에 들어왔다. 상체를 비스듬히 어정쩡하게 일으켜 창문 블라인드를 살짝 들어 올려봤다. 하늘색 하늘에 움직이지 않는 흰 구름들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구름과 구름의 연결 부위가 떨어져 있는 듯도 보이고, 연결되어 있는 듯도 보여서 단수로 ‘구름’이라고 해야겠다.
상체를 조금 더 일으켜 앉아 고개를 창으로 바짝 대고 삐쭉 밖을 내다보니, 하늘과 구름을 배경 삼아 이름 모를 야트막한 산이 보인다. 주변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고, 배는 부르고, 잠은 올 듯 말 듯하고.. 심신이 안정이 된다. 여기 꼭 깊은 산속 펜션 같다.
거실 식탁에서는 딸아이가 부지런히 미역국에 밥 말아먹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그락거리는 상 치우는 소리가 난다.
딸아이는 곧바로 침대 옆으로 와서는 빨리 자기 자리를 빼달라고 한다. 나는 뜨뜻하게 덥혀놓은 전기담요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안될 줄 알면서도 싫다고 잠시 버텨본다. 하지만 곧 무한 반복되는 딸의 조르기 스킬 - "아 내 자리라고 내 자리. 빨리 일어나라고~" - 에 두 손을 들고 징징대며 식탁 의자로 옮겨 앉았다.
딸아이는 저녁 시간에 학교에서 동아리 모임이 있어서 집에서 쉬다가 다시 학교에 간다고 한다. 밤 열 시가 되어야 마친다고 하니 그때서야 우리는 집으로 출발을 할 수가 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에 설거지도 하고, 길 건너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잠도 좀 자보려고 한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으니, 내 등 뒤에 있는 작은 냉장고의 모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이렇게 쓰자마자 신기하게도 모터 소리가 딱 멈춘다.
다시 고요함 속으로 들어간다.
오늘이 목요일이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