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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Jun 30. 2024

바람 부는 일요일 아침


무거운 거실의 암막 커튼이 세찬 바람에 펄럭거린다. 급기야 창가 컴퓨터 책상 위의 연필꽂이가 쓰러지고, 바퀴 의자가 마룻바닥에서 슬라이딩을 하더니 꽤 먼 거리까지 굴러간다.


황탯국 간 보다가 "펄럭펄럭, 쿵, 드르륵" 소리에 놀라서 황급히 거실로 뛰어나왔다. 거실 큰 창을 십 센티 틈만 남겨두고 닫자마자 끈으로 커튼을 졸라매고, 팽개쳐진 연필꽂이를 세워서 드라이빗을 다시 꽂아두고, 멀찌감치 날아간 의자를 책상 앞으로 끌고 왔다.

다시 주방으로 급하게 뛰어가서 달걀 두 개를 풀어 황탯국에 투하하고 대충 휘휘 저어줬다. 일요일 아침 국으로 두부 황탯국이 완성되었다.


아마존에서 구입한 브레빌 물탱크 필터가 도착한 지도 사일이나 지났는데, 머신 앞에 놓아두고 차일피일 교체를 미루고만 있었다. 교체해야 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릴까 봐 새 필터를 머신 앞에 모셔둔 게 효과를 발휘한다. 머신에서 물탱크를 분리하고 필터와 필터 홀더를 분리한 후 물탱크를 깨끗이 세척해 줬다. 새 필터를 뜯어서 달 표시를 "7.8.9"로 조정하고 필터홀더에 끼워 물탱크에 장착하고 새 물을 탱크에 채워 머신에 끼워 넣었다.

새 필터와 신선한 물로 리브레 커피를 추출했다.


내방 커튼을 졸라매고 소파에 앉아 얼음 가득한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다. 강풍에 오래된 베란다 창문이 "덜커덩, 덜컹"거린다. 6.25에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신청 공고가 났다는데, 우리 단지는 세대수가 너무 많기도 하고 어르신들 가구도 많아서 우리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역세권 소형 단지들만이 들썩들썩하고 있으니, 이사를 가지 않은 한은 저 감성을 살짝살짝 건드려 주는 덜컹거림은 계속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좋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에 가는 대신 황탯국을 끓이고, "휘휘"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내 살깣을 스치는 바람결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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