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tlionheart Jul 01. 2024

기억 속의 나와 아빠


내가 이십 대 초반일 때는 지금보다 백 배는 더 예민했었다. 그때는 늘 신경이 뾰족 뾰족 날이 서 있었고, 신경성으로 밥도 잘 못 먹어서 지금보다는 이십 킬로가 덜 나가던 시절이었다. 예민한 기질로 위염약을 종종 먹기도 했었다.

이러한 기질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한테서 물려받은 것 같다. 당신이 예민하니 눈에 거슬리는 것도 많았고 짜증 나는 것도 많으셨던 것 같다.

내 기억에 젊으셨던 그 시절은 이미 아빠는 중년의 연세 셨을 것이다. 병약하기도 했던 나는 불같은 아빠의 성격에 기가 눌리기도 했었다.

반면 강한 성격의 언니는 이런 아빠에게도 자기 할 말 다하고 주로 유흥비와 쇼핑에 쓰는 돈도 당당하게 잘도 받아내곤 했었다. 언니가 말을 하면 희한하게 부모님 두 분 다 '그래.그래.' 이런 식으로 설득이 되곤 했었다. 그에 비해 나는 대학생 때도 다들 한 번씩은 한다는 '교재비 삥땅 치기'조차 한 번도 시도해 볼 생각을 못 했었다. 그런 불경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콩닥거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커서 어른이 되니 나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빡빡한 기준선을 갖게 되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그 생각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볶아쳤다. 이러니 일상을 살아가는데 불안도가 남들보다 높게 되었다. 지금에야 애 낳고, 지지고 볶고 살다 보니 나에게로 향했던 뾰족했던 창끝이 많이 무뎌지게 되었다.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며 문뜩 떠오른 기억은 주말 아침이 되면 아침잠이 많았던 나를 깨우기 위해 아빠만의 루틴이 있었다는 것이다. 잔잔한 클래식(주로 바흐 음악이었던 것 같다) 연주를 틀어놓고, 원두를 수동 그라인더로 갈아 필립스 커피 메이커로 커피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아빠는 내 방문을 열어 놓으신다. 그러면 나는 자다가 어느 순간 커피 향에 잠이 반짝하고 깨면서 음악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거실로 나가면 아빠는 커피잔을 나에게 건네주며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로 "커피 마셔라" 하셨었다. 엄하셨던 아빠의 다정함을 최대치로 보여주셨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오늘은 아빠의 그 원두커피가 향까지 진하게 올라오는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혼밥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