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2주 전에 남편 삼 남매의 결정으로 갑작스럽게 시댁식구들과 이박삼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 연세가 네 분 다 팔십 대 후반이시니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말을 더하지 않았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며느리 둘은 제외되고, 삼 남매들만의 단톡방에서 13인이 묵을 숙소부터 식사 문제까지 수많은 톡들이 오고 갔고, 남편은 틈틈이 톡을 보여주며 진행 상황을 알려줬다.
여느 명절에도 아들들이 부엌에 들어오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시어머니 덕분에 아들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겼었다. 한 사오 년 전부터나 남편이 명절 설거지를 자처하고 나서서 그때부터 좀 편해지기 시작했었다.
남편이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삼 남매 단톡을 보여주는데, 특히나 손가락도 움찔하지 않는 시아주버니가 숙소에서 밥을 거의 해 먹자고 하신다. 내 눈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랑 형님이 함바집 밥해주는 아줌마도 아닌데, 13인의 식사를 이박삼일 동안 하라는 건가? 목적이 부모님과의 추억 만들기 여행인데, 추억은 친자식들과 손주들과만 만들고 며느리들은 가사도우미로 동행하라는 건가 싶었다.
남편에게 아침 식사는 해 먹을 수밖에 없겠지만, 나머지 끼니는 사 먹자고 하라고 했다. 남편은 “웬만하면 사 먹자”라고 톡을 올렸는데, 답톡들이 안 올라왔다. 그 이후로는 남편은 톡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쨌거나 음식은 쉽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추석 선물로 들어온 LA갈비와 양념장, 돼지고기 부위별 세트, 양념된 닭갈비를 갖고 가기로 했다.
우리 집은 음식 할 양념들을 싸 오라고 배정을 받았다기에 집에서 소분해서 쓰고 있는 것들 갖고 가면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남편 왈 시누가 '갖고 올 양념장 모아서 인증샷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라'고 했다고 한다.
좋은 마음으로 가족여행에 동행하기로 했던 건데, 자꾸 이런 일이 생기니 명절 연휴에 쓸쓸하게 지내실 친청 부모님 생각이 나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도 연로하시고, 언니도 외국에서 사니, 우리가 찾아뵈어야 하는데..
내년 추석에는 우리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자고 해야겠다. 나도 명절에 자식 노릇 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