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5일간의 터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곤히 자고 있다. 전시회 출장이라서 많이 걷고 오래 부스에 서 있었다고 한다. 좀 앉아있지 그랬냐고 물었더니 직원들 보기가 좀 그래서 왠만 하면 서 있으려고 했다고 한다.
밖에서는 배려의 아이콘 역할을 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나 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요즘 젊은 직원들을 데리고 일하기가 어렵기도 한 듯 보였다. 열흘 뒤에는 또 중국 출장이 잡혀있다.
겉보기에는 큰 키에 근육량이 많은 체형인데,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한 달에 두 번 출장은 힘에 부친 듯 보인다. 무릎 관절도 아프다고 하고, 출장 다니는 게 지겹다고 한다.
한편 나는 남편이 출장 가 있으면 자유를 느끼며 홀가분하다. 딱히 놀러 나가거나 하지 않아도 그렇다.
남편은 연애할 때는 나를 끔찍이도 위해줬었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까지 했겠지만.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나에게만 가부장적인 남편이 되어버렸다. 소파에 누워서 이거 갖다 달라, 저거 해줘라 요구하는 게 많다.
속아도 보통 속아서 결혼한 게 아니다.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의 일들도 몇 건 있었다.
며칠 전에 한 친구와 길을 걸으며 남편과의 사이가 요즘은 괜찮다는 말을 하니 그 친구는 ‘참 신기하다’라는 표현을 했다. 혼인이 파탄 나도 벌써 여러 번 났어야 했는데, 또 이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척하고 살고 있으니 그 친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나 보다.
그 친구의 말에 우리는 왜 같이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사랑과 의리’ 뭐 이런 이유라기보다는 그냥 ‘경제 공동체로서 같이 낳은 자식을 돌보는 부모로서 살고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다. 거기에 약간의 ‘연민’ 한 꼬집을 첨가하면 간이 딱 맞겠다. 또, 나는 혼자 살 때의 여러 가지 risk를 감내할 용기도 없다.
산다는 게 칼로 무 자르듯이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었다면 수십 년 부부로 산다는 것이 불가능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지금 아침밥을 새로 짓고, 미역국을 끓이고, 보리굴비를 해동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