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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Dec 20. 2024

딸아이를 위한 선물..정리업체를 부르다


그 사람의 방을 보면 그의 정신 건강 상태가 보인다고 했던가..


딸아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 머릿속까지 실타래처럼 엉켜버리는 느낌이 들곤 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왼편 책상 위에 책더미와 수집하는 종이 마스킹 테이프, 아직도 덕질 중인 각종 뮤지컬 굿즈와 애니메이션 굿즈들이 쌓여 있었다.

책상 아래쪽에는 벗어놓은 옷더미들이 한 층씩 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고, 바닥에 펼쳐놓은 큰 타원형 테이블 위에는 먹는 약과 이제는 필요 없는 기한 지난 약봉지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심지어 뜯지도 않은 굿즈 택배들도 쌓여 있었다. 침대에는 '여기가 인형 뽑기 하는 곳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인형들이 한가득이었다.

붙박이 장롱에도 뜯지 않은 인형들이 가득했다.


여기에 자취하던 집의 짐까지 더해진다고 생각하니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리업체에 견적을 의뢰했다. 업체에서는 딸아이의 방과 자취집 짐들을 가구 문을 다 열고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이 짐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사람 세 명이 필요하고, 8시간을 정리해야 하며, 옷걸이와 바구니 등을 사용하게 되면 추가 요금이 붙는다고 했다. 견적은 추가요금을 제외하고 63만 원이 나왔다.


이삿짐센터 일꾼들에게 책상과 책꽂이를 사다리차로 내려 달라고 하기 위해서, 이사 전날 책상 위, 아래 짐들을 싹 정리해서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이것도 한 세 시간은 걸린 듯했다. 책상 밑에 쌓여 있는 옷들은 거실 소파 위에 임시로 쌓아놨다.


대망의 이삿날이 밝았다. 남편과 아이는 새벽에 자취집으로 출발을 해서 포장 이사 업체와 접선을 했다. 아침 아홉 시에 우리 집 베란다에 사다리차가 올라오고 이삿짐이 부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께 책상과 책꽂이를 거실로 내보내고, 붙박이 장 문 한쪽을 막고 있는 침대 헤드를 백팔십도 돌려 반대편 벽 쪽으로 붙여 달라고 했다. 옷서랍장도 일단은 거실로 빼고, 사단 책장도 창문 쪽으로 옮기자 자취집에서 쓰던 컴퓨터 책상이 들어갈 자리가 나왔다.


막 가구 배치를 끝냈을 때, 아홉 시 사십 분쯤에 정리업체에서 “구원의 삼총사”가 도착했다. 인사를 나누고 방을 보여드리면서, 벌써부터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커피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려드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라떼, 따뜻한 라떼를 순서대로 만들어 드렸다. 커피 향이 참 좋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다.


커피를 드시면서 정리 계획에 관해 얘기를 나누신 후에 우리 집은 전쟁터가 되었다.


먼저 딸아이의 모든 옷이 비닐 매트를 깐 침대 위에 꺼내졌고, 큰 짐과 자잘한 짐들이 거실에 쫙 펼쳐졌다.

옷 한 벌 한 벌이 딸의 컨펌을 받으며 버릴 것과 남길 것으로 나뉘어졌다. 버릴 옷들은 투명한 김장 비닐봉지 여러 장에 모아져서 의류 수거함으로 보내졌다. 두 분이서 가져온 옷걸이와 내가 미리 준비해 둔 옷걸이 백개를 이용해서 손이 안 보일 정도의 속도로 옷을 걸어 붙박이 장롱을 채워나갔다.

반 정도 옷이 걸렸을 때, 점심시간이 되었다. 원래 견적에는 점심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세 분의 수고하는 모습을 보니 식사를 안 시켜드릴 수가 없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에 요리를 한 가지 시켜드렸다.


나는 어질러진 집과 치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밥맛이 없어 점심을 못 먹었다.


식사 후에 다시 정리가 시작되었다. 옷더미가 다 정리되고 마지막으로 속옷과 양말을 접어 서랍 속에 넣는 모습을 보니, ‘정리’ 이것은 전문가의 영역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거실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짐들 차례였다. 먼저 물건을 종류별, 용도별로 구분 지어 놓은 뒤에, 또다시 물건 하나하나에 대해 딸아이의 컨펌을 받으며 버릴 것과 보관할 것, 사용할 것들로 나누었다. 버릴 것들은 칠십오 리터 쓰레기봉투와 이십 리터 쓰레기봉투, 재활용 봉투에 담아졌는데, 봉투 갯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귀신 나올 것 같았던 인형 꾸러미들도 인형 세 개만 남기고 버려졌다.

화장품도 많고, 사 모으는 예쁜 쓰레기도 많고, 먹는 약과 당뇨 소모품도 많아서 정리가 과연 될까 싶었는데..


정리가 다 된 후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서 나는 감격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구원의 삼총사’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 딸아이에게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네 새 인생을 열어주셨다”라고 하면서..


그분들은 남은 쓰레기봉투를 들고나가시면서, 물건이나 옷을 쓰고 나서 원래 있던 자리에 넣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딸아이에게 정리팁을 알려주셨다.


그렇게 정리가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딸아이 방은 여전히 깨끗한 상태다.


”정리“는 좀 더 건강한 정신으로 일상을 즐겁게 살아나가길 바라는 엄마와 아빠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의류매장에 온것 같은 옷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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