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거리: 1240.16km, 누적시간: 248시간 08분
표지사진: 수원시 하동 광교호수공원 ‘사랑해 ‘
나는 오늘 과천을 따라 오른쪽으로, 광교호수를 향해 걷습니다
분명 가을이 온 것 같은, 10월의 첫 하루이다. 이제 걷기 시작한 지 4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9월 6일에는 걷기 석 달만에 기어코 1000km를 달성했다. 그러니까 한 달에 300km 이상을 걸었고, 매일같이 10km 이상을 걸은 셈이다. 미친 듯이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더 할 수 있을까? 이제 미친 짓은 그만해도 될까? 오십만 가지 생각이 앞서다가 접어버렸다. 그냥 걷는 거지 뭐~
오래 걷다 보니 몸은 점점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더운 여름날에 땀을 흠뻑 빼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무게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주변 지인들의 시선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걱정하는 마음에 ‘미쳤다’고 하더니, 이제는 ‘참 대단하다’는 말씀들을 하신다. 그런 점이 ‘꽤나 좋았다’라고나 할까? 아무튼, 내 경우는 이제 충분히 걸어보고 남에게 조언해 줄 수 있을 정도는 되어가는 것 같다. 특히 오늘은 역대 최고의 거리를 도전한다.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지난번 서울에서 ’왼쪽‘ 양재를 따라 마포에서 광교까지 갔다면, 오늘은 ‘오른쪽’ 과천을 따라 광교를 걸어갈 예정이다.
‘어떤 곳을 왼쪽으로 갔으니,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가보자’라는 생각이 얼마나 신선한지, 스스로도 꽤나 좋았다. 특히 오른쪽으로 걷는 과천, 안양과 의왕은 전혀 도보로 걸어 본 적이 없는 동네라 그 새로움에 또 흥분이 되었다. 집을 나서 한강공원 마포대교 북단에서 ‘동작대교’를 향해 걷는데, 오전 태양이 벌겋게 마주하고 하늘은 새파라니 눈에 빛이 우왕좌왕한다. 그래도 성큼성큼 걷는 발걸음이 이보다 더 가벼울 순 없었다.
걷기를 통해 평생 경험해 보기 어려운 일 중 하나가, ‘한강다리를 도보로 건너는 일’ 일 것이다. 기껏해야 우리 동네에 인접한 한강다리 정도는 걸을 수 있겠으나, 서울에 있는 한강다리 스물두 개를 다 건널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중에서도 ‘동작대교’는 꽤나 한적하며 양쪽 위치가 ‘현충원’ 아니면 ‘동부이촌동’ 끝이기 때문에 더욱더 걸어갈 일이 별로 없는 다리 중 하나이다.
동작대교를 건너 이수를 넘어 사당으로 향했다. 오늘 꽤나 걸어야 하므로 중간에 도넛도 사 먹고, 카페인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사당을 지나 과천 ‘남태령’으로 빠지는 길은 ‘관악산’ 주변이라 한참 동안 고개를 넘어야 한다. 아무리 가을 중턱이라지만 그래도 한 낮 기온은 23도를 넘어섰고, 태양을 마주했으니 체감 온도는 25~27도에 육박했다. ‘그래, 땀이 날만도 하지.’
저 앞에 한 외국인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고개를 넘어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서울랜드’를 가는 듯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니 서로 눈인사를 한다. 평소보다 꽤나 진보적인 내 모습이었지만 1초도 안되어 눈을 피했다. 무엇이 창피한지 나는 얼른 앞서 걸어 과천길로 빠졌다.
과천 시내를 처음으로 걸어봤다. ‘과천’이라는 동네는 꽤나 살기 좋은 동네, 학군이 잘 형성된 동네, 그리고 당연히 어렸을 적 소풍 때면 자주 갔었던 서울랜드가 있는 동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걸어보니 꽤나 ‘조용하고, 맑고, 평안한 동네‘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와닿았다. 게다가 여기저기 공사를 통해 낡은 과천이 아닌, 새롭게 도약하는 과천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이 보였다.
과천을 가로질러 안양, 그리고 의왕으로 가는 길은 꽤나 고루하고 지루했다. 인도에 가로수가 듬성듬성 있어서 태양을 피할 길이 별로 없었다. 이제 겨우 20km를 걸었고, 아직 반도 채 오지 않았는데 벌써 발에서 잔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넓고 황량한 ‘과천대로’와 ‘흥안대로’(이런 도로 이름은 처음 듣기도 했고, 다시 들을 일도 없겠지만)를 계속해서 걸었다. 이제 안양을 지나 의왕으로 빠져나간다. 한참을 올라가는 저 고개 위에 식당 하나가 보였다. 아무래도 저기서 늦은 점심을 먹고 쉬어야만 할 것 같았다.
드디어 ‘수원’으로 진입했다.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같은 지역에 있다 보니 거리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앞으로도 족히 15km는 더 걸어가야 한다. 허걱... 태양도 비스듬히 각도를 꺾어 저물고 있는데, 아무래도 저녁에서야 도착할 것 같았다. 한 달 전 엄마를 따라 수원 결혼식장에 얼떨결에 따라와 걸었던 ‘수원화성’이 너무나 좋았었는데, 시간상 오늘은 그곳을 거쳐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수원 근처에 거주하는 직장 상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 여기 걸어서 수원에 왔는데, 집이 어디쯤이세요? 근처시면 커피라도^^”. 이내 답변이 왔다. 수원시 야구장(수원 KT위즈파크)에서도 차로 20분 이상 걸린덴다. 아무래도 커피 한잔은 어려울 듯싶었다. “네! 알겠습니다. 차주에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내가 오랜동안 그리고 오랫동안 걷는 것을 아는 직장 상사는, 마포에서 수원까지 걸어온 나를 또 한 번 대견하게 생각했다. 의아함을 떠나 이제 응원의 단계로 들어섰는데, 막상 동네까지 와서 커피 한잔 못 사준 것을 내내 아쉬워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나는 광교호수로 마지막 힘을 쏟아 걸었다.
한 달 만에 다시 ‘광교호수공원’에 걸어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해는 어느새 저기 서쪽으로 내려가 있었고, 지난번 보다 무려 10km를 더 걸었음에도 그렇게까지 피곤하지는 않았다. 날씨도 도왔고 또 과천, 의왕으로 통하는 새로운 길이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광교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아주 멋진 ‘러브’ 동상이 나온다. 포토존이라고 해서 사진을 찍으니 매우 근사한 도시와 호수가 엽서의 아름다운 배경처럼 보였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고 행복으로 가득해 보였다. 한국에 이런 도시가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 싶다. 다시 한번 절실히 ‘여기 살고 싶다’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시계를 보니 전체 거리가 50km를 넘어섰다. 나의 역사상 처음으로 50km를 넘게 걸은 날이다. 오늘같이 날씨가 좋고 크게 덥지만 않다면, 나는 편도가 아닌 집까지 왕복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것을 실천하고 만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