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 이야기
정형외과를 좀 아는 사람들 이면 내가 두 아이를 하나는 전공의 시절, 하나는 봉직의 (월급쟁이 의사) 시절에 출산했다고 하면 의례 물어보는 것이, 방사선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냐는 것이다. 정형외과 수술의 상당수는 C-arm이라고 하는 기기를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진행된다. 내 배에 직접 엑스레이를 찍는 것은 아니더라도 산란되는 방사선이 수술장에 있는 사람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통 두꺼운 씨암복이라고 하는 방사선 차폐복을 입고 수술이 진행되게 된다. 하지만 이 차페 복도 노출되는 방사선량을 줄여주는 것이지 완벽하게 차단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 시절에는 오히려 한 번에 수술장에 여러 개 열리고, 내가 집도하는 입장이 아닌지라 씨암을 사용하지 않는 수술방을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에는 나도 방사선 문제에 대해서 크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밤에 당직을 서고, 새벽에 일어나고 이런 문제들이 더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스스로 집도의가 되니 이제는 임신 중의 방사선에 노출이 걱정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해서 소위 말해서 힘들게 찾아보았다.
당시 정리하였던 내용에 최신 지식을 조금 더하여, 임신을 계획 중인, 혹은 임신 중이신 분들을 위한 글을 쓰고자 한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적은 양의 방사선은 (소위 말하는 폐 사진을 500장 찍은 정도다. 의학적인 적다의 기준이 생각보다는 넉넉하다.) 태아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1) 2-18주 사이가 특히 위험하다.
이 시기에 방사선은 특히 두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가능한 방사선을 피하는 것이 좋다. 임산부 본인이 CT촬영이 필요할 때 가능하면 이 시기를 넘기는 것이 좋다. (응급의 경우는 다르다.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문제가 되는 방사선량은 CT 한 번보다도 많다. 거기다 임산부라고 이야기하면 최대한 찍는 범위를 줄이거나 선량을 줄여서 촬영하게 되니 응급인 경우에 검사를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엄마가 아픈 게 아이에게 더 안 좋을 수 있다.) 이외에도 가족 중에서 핵의학 검사나 PET 검사 등을 시행하게 되면, 시행한 환자에게서 소량이지만 꾸준히 방사선이 나오게 됨으로 임신 중에는 검사 후 하루 정도는 같이 생활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으니 혹시라도 해외 비행을 직업으로 삼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시기에는 국내 비행이나 지상 근무를 하시는 것을 권한다.
태아는 성인보다 방사선에 민감한데, 유달리 민감한 시기가 이 시기이다. 임신 2주째는 오히려 일반적으로 임신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임으로 이 시기에 본인도 모르게 CT 촬영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고 임신 극 초기에 노출된 방사선으로 임신 기간 내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시기는 all-or-none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방사선에 노출은 유산을 일으킬 수 있으나, (all) 일단 이 방사선 노출에서 살아남은 아이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none) 따라서 엄마가 임신임을 인지하기 전에 방사선에 노출이 되었더라도 현재 임신이 잘 유지되고 있으면, 노출되었던 방사능이 지속적으로 몸에 남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으로 출생 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이 시기는 유산이 되었어도 그냥 생리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시기이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2) 엑스레이 한 장 찍는 정도로는 일상생활에서도 노출이 될 수 있는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발리를 왕복으로 갔다 오면 단순 흉부 방사선 사진 한 장을 찍을 때 사용하는 정도의 방사선이다. 사실 요즘 태교여행 정도는 다 가는 것을 생각하면 꼭 필요해서 촬영한 엑스레이 한 두장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산부인과 교수님이 임신 중에 나에게 해주셨던 이야기이다. 엄마가 그걸로 스트레스받는 게 애한테 훨씬 안 좋겠다고.)
3) 26주가 지나면 방사선에 대한 민감도는 갖 태어난 신생아와 큰 차이가 없다.
임신 말기에 여러 문제로 인하여 단순 방사선 촬영을 하는 것에 너무 겁먹지 말자. 기본적으로 직접적으로 배를 찍는 것이 아닌 이상, 산란되어 오는 방사선은 그 선량이 줄어들고 엄마의 자궁과 배를 거쳐야 태아에게 방사선이 들어간다. 방사선 차폐복을 입고 찍는 무릎이나 손목의 엑스레이로 인해 노출되는 방사선량은 태교 여행 한번 보다 덜하다.
일반적으로 위험이 되는 수순의 방사선은 폐 사진을 500개 정도 찍었을 때로 본다.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CT2회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정도의 방사선을 태아가 직접, 즉 배에 맞았을 때를 이야기한다.) 이 경우에는 평생에 있어서 암에 걸릴 확률이 약 2% 이내로 증가한다고 본다.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은 40-50% 정도이다.)
그렇다고 임신 중에 방사능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하게 지내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방사선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대 원칙에 ALARA가 있다.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합리적이고 도달 가능한 수준으로 가능한 적게 방사선에 노출
일단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고, 못 피하는 상황에서 못 피했다고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임신 기간 내내 방사선에 노출이 걱정되어 씨암복을 3개씩 중복하여 걸쳐 입고, 수술을 진행하였다. (이 정도면 대략 5-10킬로 정도의 모래주머니를 온몸에 달고 일하는 정도이다.) 수술이 하나 끝나고 나면 수술복을 짜면 물이 나오고 땀이 하얗게 소금처럼 엉겨 붙었다. 나름 이렇게 조심한다고 조심하였음에도, 우리 집 공식 돌아이인 아들이 머리에 수건을 둘러 쓰고 자기가 엘사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내가 임신 중에 노출되었던 방사선 때문에 두뇌 발달에 이상이 생겼나란 생각을 가끔은 한다. 그러면 남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완벽히 정상이야. 쟨, 그냥 널 닮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