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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Feb 29. 2024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담임선생님의 애환

어제 퇴근 후 저녁에 남동생네 가족과 근교에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아이들과 조카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과 캠프파이어까지 하고 어른들끼리 회포풀고 늦게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피곤한 상태로 눈을 떴는데 작년 담임을 맡았던 학생의 학부모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제 말을 무시하는 건가요?"

학부모님께서는 꽤 흥분한 상태인 듯 보였다. 이유는 반배정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홈페이지에는 올해 아이들의 반 배정 결과가 게시되었다. 학생들의 반 배정이 이루어지는 절차는 이러하다.

기본적으로는 반배정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아이들의 전년도 성적을 반영하여 반이 편성된다. 그 상태에서 학교폭력 사안이 있었거나, 사이가 좋지 않아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학생들이 붙지는 않았는지 담임들이 점검을 한다. 그리고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교우관계를 힘들어하는 는 아이들이 있으면 배려하는 차원에서 학급에 편히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만한 친구들과 붙여놓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남녀 비율도 맞아야 하고, 반별 성적분포도 고려해야 하고, 전년도에 같은 반이 너무 몰려도 안된다. 전년도 담임들이 회의하고 검토하고 의견을 내놓고 반영하는 과정이 기본 2~3시간은 걸린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의견을 전부 반영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특별한 사안이 아니면 기본 반 편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다.    


작년에 한 학부모님께서 자녀 문제로 자주 상담을 요청하셨다. 사실 학교에서는 명랑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집에서는  많이 예민하고 우울증세도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 년 동안 그 아이를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어머님께서는 내게 전화를 자주 하셔서 아이에 대해서 상담을 하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정성껏 상담을 해드렸다. 한 번은 아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를 언급하며 내년에 같은 반 안되게 신경을 써달라 부탁을 하셨고 아이가 함께 있으면 마음 편한 친구들도 언급하셨다.

반 배정을 할 당시에 이 부분을 고려해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와는 분리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덕분에 그 의견은 반영이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친한 친구와 붙는 것은 반영되지 않았다.


학부모님께서는 우리 아이가 많이 예민하고 우울증도 있는 거 알면서 본인이 언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친한 친구와는 같은 반에 배정을 하지 않았다면서 내 말을 뭘로 들은 거냐며 내 말을 무시한 거냐고 화를 내셨다.


일단 어머님께 세심하게 다 살피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리고 반 배정에 있어서 모든 상황이 반영되지 못함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이럴 거면 상담은 뭐 하려 한 거냐? 담임한테 이럴게 아니라 교장한테 말을 할걸!!"이라면서 계속해서 속상한 마음을 표출하셨다.


웬만하면 속상한 일을 오래 생각하지 않고 금세 잊는 오늘 아침 이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연히 여행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점심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에 하얘지는 기분이다. 나도 많이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래도 일 년 동안 나름 신경 많이 쓴다고 썼는데..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니까 예민한 내 아 반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되는 마음도 이해는 한다. 그래서 서운하고 속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린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 상대방은 물론 본인에게도 좋을 것이 전혀 없다.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상대에게 기분 나쁜 태도를 보였을 때 오히려 후회되고 속상한 마음이 더 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일이 잘 해결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섣불리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도 오늘 이 기분이 내 아이들에게 태도로 나갈까 봐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도 하고 새로운 친구 사귀는 법 배우도록 하는 것도 학교의 역할인데 학부모님들이 그 점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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