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Is A Blind Guide
대체불가능한 고유함
여름철, 일을 마치고 후덥지근한 공기에 지친 저녁에 집에 돌아와 머리가 깨질듯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또는 운동하며 땀을 흘리고 갈증난 상태에서 들이키면 느껴지는 쉴새없이 몰아치는 탄산의 청량감과 맥주 특유의 고소한 풍미.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맥주의 그 시원함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탄산음료도 좋지만 맥주 특유의 향과 타격감은 다른 음료가 따라가기 어려운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맥주만이 충족시켜줄 수 있는, 그야말로 어른의 맛.
가끔 운동 후 술을 마시기 아깝거나 다음날 일정이 있어 부담스러운 날에는 무알콜 맥주를 찾곤 한다. 제로라고 쓰여있는 맥주는 알코올이 없거나 극소량 포함일 뿐 칼로리까지 제로인 것은 아니라 부쩍 늘어나는 뱃살의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맥주 특유의 맛과 맥주가 주는 순간을 대체하기 어려워서이다.
내가 위스키를 가끔 꺼내먹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도수 높은 버번위스키가 주는 강렬한 타격감, 혀가 얼얼할 정도로 치고 들어오는 알코올의 느낌과 그 뒤에 따라오는 바닐라향과 카라멜의 맛, 그리고 글랜캐런 잔 안에서 흘러내리는 레그를 통해 느끼는 시각적인 만족감과 입안에서의 바디감은 위스키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피트위스키는 또 어떤가.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체할 수 없는 스모키함과 강렬하게 느껴지는 어른의 향. 해산물이나 치즈를 올려두고 한 입씩 페어링하면 어우러지는 풍미는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다. 달달한 과일향이나 꿀향이 나는 셰리위스키를 한 잔 따라두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맛과 향을 느끼며 책을 읽는 순간 역시 나는 사랑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대체불가능한 고유한 순간들 말이다.
공연예술에는 대체제가 없다. 그리고 재즈에도
공연 예술이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순간들도 그렇다. 콘서트나 각종 공연을 종종 찾아다니는 편인데,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이 부담스러운 적은 있어도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공연마다 나의 취향에 의한 선호나 당일 공연의 편차에 의해 발생하는 아쉬움은 있을 수 있지만 공연예술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음원이 발달하고 영상기술이 발달해서 고품질의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어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것이 공연예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연의 현장감, 밴드연주의 풍성함, 같은 공간에서 관객들이 공유하는 집단적인 경험 같은 것들은 녹화된 화면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연예술은 관객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해서 호응이나 반응, 혹은 비매너 관객에 의해서도 그 날 공연의 질과 만족도가 달라진다. 그런데 <토마스 스트로넨의 내한공연 – Time Is A Blind Guide>를 보고 온 이 날은 관객의 숨소리와 옷깃이 부딪히는 소리, 간간히 보이는 스마트워치의 작은 불빛, 공간 안의 작은 움직임과 공기의 변화까지 전부 음악의 일부 같았다.
초반에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들을 자주 사용해서일까,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이 마치 재즈 같았다. 음악에서 불협화음이 있을까? 물론 있다, 그러나 콘텍스트와 맥락에 따라서 불협은 틀린 것이 아니라 텐션으로 이용된다. 그래서 음악에서 그것이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것이라면, 그리고 특히나 그 장르가 재즈라면 맥락이 있을 뿐 틀린 음은 없다.
재즈에는 그 긴장과 부딪힘이 이끌어내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카페에서 쉽게 흘러나오고, 책 읽거나 공부할 때 은은하게 틀어놓기 좋은 그런 재즈가 아니다. 쉴새없이 부딪히고 긴장하고 벗어나고 말하고 소리치고 부딪히는 재즈. 긴장과 불편 속에서 피어나는 집중력. 그리고 해결을 모색하는 그런 장르의 재즈를 말하는 것이다.
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재즈는 ‘시’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저만의 운율과 리듬감으로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순간들을 전달하기도 하고, 잘 사용되지 않는 형식이나 구조를 통해서 기존의 안이한 형식을 파괴하고 도전하기도 하는 그런 장르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허기가 몰려왔다. 충분한 낮잠을 잤음에도 약간의 졸음도 몰려왔다. 그만큼 내가 몸에 힘을 잔뜩 주고 긴장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낯선 음들로 시작했으나 그 긴장감이 이끌어가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마치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나는 그 음의 세계로 점차 빠져들어갔다.
토마스스트로넨과 ECM, 유러피안 재즈의 세계
ECM은 독일에서 탄생한 재즈와 클래식 음악 레이블로, 한국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고 있는 레이블이다. ECM은 미국의 정통 재즈 레이블과 달리 클래식, 현대 음악, 월드 뮤직 등의 특성을 해체하고 결합하며 독자적으로 표현하는 장르 해체적인 특성을 가지는 레이블로 메인스트림 재즈와는 확연히 다른 음악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ECM은 창립자인 맨프레드 아이허의 확고한 음악세계 아래 공간감을 강조하는 독보적인 사운드와 즉흥성을 중심으로, 감상자가 개입하여 함께 해석하고 참여하는 음악들을 세상에 보여왔으며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라는 CODA(캐나다의 음악잡지)의 평가는 ECM의 모토가 되어 감상자들에게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선사해왔다.
이번 공연에는 ECM의 음반 커버를 작업했던 사진작가 안웅철의 사진을 공연에서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곡에 맞게 보여주는 사진을 통해 음들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키고, 반대로 추상화시키기도 했다. 파도에서 새와 하늘, 숲, 그리고 빛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미지가 부여하는 시각적 효과는 공연에 느슨하고도 강렬하게 녹아들었다.
노르웨이의 숲을 거닐다 마주한 ECM의 정수, 토마스 스트로넨 “Time Is A Blind Guide” 첫 내한공연은 2월 2일(금) 세종시 재즈인랩에서, 2월 3일(토) 수원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2월 4일(일) 서울 JCC 아트센터에서 공연됐다.
이번 공연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드러며 겸 작곡가인 토마스 스트로넨과 함께 , 아유미 타나카(피아노), 하콘 아쎄(바이올린), 레오 스벤슨 샌더(첼로), 올레 모르텐 바간(베이스) 5인으로 이루어져, ECM 고유의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음악을 한국에 들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