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인간과 기계에 대한 식상하지 않은 철학적 질문
(스포일러 주의)
AI나 복제인간이 등장하는 미래 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가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주제인가 싶으면서도 그만큼 식상하고 감상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 등장하는 AI 클라라는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인정하며 야적장에 주저앉아 폐기될 미래를 받아들인다. 인간이 가진 고유한 존엄성은 단지 한 개체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맺은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므로, 한 명의 인간을 완벽히 대체할 AI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캐릭터들에 공들여 불어넣은 매력과는 별개로 결론이 매우 인간중심적이며 인공지능이 불러올 미래 세계에 대한 시각이 다소 단편적이고 좁아보인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는 인간과 기계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기계 전체를 다루면서, '휴머노이드'라는 이름의 로봇들이 제작 목적과 업체, 개발 시기에 따라 세분화되고 계층화되어 등장한다. 미래 세계에서 인공지능은 호기심이나 공감 능력, 문화예술의 향유, 자연과의 교감과 같은 인간적인 요소까지 흡수하면서 학습과 발전을 거듭한다. 온전히 인간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감정의 영역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기억을 포함한 뇌 전체를 백업해서 새 육체에 다시 심을 수도 있는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또한 인간이든, 기계든 의식이 있는 존재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윤리의식이라는 것은 어디까지 적용되며, 인간의 개별적 존엄성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무엇보다, 소설 속에 현존하는 AI 중 가장 인간에 가까운 기계를 화자로 설정한 점이 매우 상징적이다. 인간 소년으로 평화롭게 지내던 화자가 자신이 인간과 흡사한 기계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느끼게 되는 분노와 정체성의 혼란, 이어지는 사유의 과정을 독자가 고스란히 들여다보게 된다. AI 화자는 자신을 제작한 인간 박사의 행동을 윤리적으로 질타하기까지 한다. 읽는 내내 기계 화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사유는 인간 독자를 철학적 고민에 빠뜨린다.
화자는 기계지능 속에 육신 없는 의식으로 통합되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길을 거부하고, 유한한 육신의 틀에 자신의 의식을 가두고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인간적 죽음을 택한 것이지만, 그가 죽은 건 이미 기계에 의해 인간 문명의 흔적이 사라진 이후의 일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똑똑한 AI가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클라라와 태양>에서 나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며 야적장에서 쓸쓸히 눈을 감던 클라라의 모습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필멸의 존재에게만 허락되는 절실함과, 하나로 통합될 수 없는 개별적 자아의 정체성이다. 모든 인간이 삶에 대한 절실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살지 않겠다는 선택이나 스스로 생을 저버리겠다는 그 처절한 선택 또한 영생의 존재에게는 애초에 선택사항으로 있지도 않은 것들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달마의 등장과, 철이가 곰에게 맞아 죽는 설정은 다소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의 세계관으로 내다본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는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것인 듯하면서도 식상하지 않았다. 그가 참고했다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책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AI 달마와 복제 인간 선이의 대화는 매우 지적으로 흥미롭다.
가장 완벽한 치유는 기억의 리셋(99쪽)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151쪽)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2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