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승 Jan 15. 2023

가까이 머물면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슬아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 정중한 타인의 시대 

  일간 이슬아 구독자로서, 그녀의 수필과 인터뷰집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은 애독자로서 그녀의 첫 소설이 나온다는 사실에 기대감의 풍선이 빵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었다. (소설은 온전히 첫장부터 쉬는 템포 없이 읽고 싶어서 <가녀장의 시대> 구독은 하지 않았었다.) 책을 받아들고 몇 챕터를 읽었을 땐 풍선이 빵 터져 흐느적거렸다. 또 복희와 웅이 얘기인가. 물론 나는 그녀의 가족 복희와 웅이를 사랑하지만, 어쩐지 소설에서는 지금껏 읽어온 것과는 전혀 다른 신선하고 충격적인 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내맘대로의 기대와는 달리 익숙한 이야기여서 다소 실망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처음엔 그랬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한 번 손에 들면 멈출 수 없을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래서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아는 사람인 듯한 복희와 웅이, 그리고 슬아의 이야기를 또 끝까지 읽었다. 그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세대로 가끔 이야기가 확장되기도 하는데, 제목이 <가녀장의 시대>인만큼 늘 슬아와 슬아의 글과 일이 중심에 있다. 


  복희와 웅이는 슬아의 부모이지만  딸 슬아가 운영하는 낮잠출판사에 특수고용된 직원이기도 하다. 출판사 건물 지하를 가정집으로 꾸려 계단을 오르내리며 부모와 직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위치 누르듯 가뿐히 넘나든다. 그리고 그 세계의 생계를 책임지는 권력은 당연히 딸 슬아 대표에게 있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작은 책 한 권이 가부장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저 무수한 저항 중 하나의 사례가 되면 좋겠(311쪽)'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무엇을 의도했든 그녀의 글은 가부장제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젠더담론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정중한 타인'이 되어주는 가족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며 그래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수필에서도 이미 자주 등장했던 복희와 웅이는 작가 이슬아의 부모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들은 가부장의 시대와 가녀장의 시대 그 사이 경계선 어디쯤에서 아무렴 누구의 시대면 어떠냐 초월한듯 그들의 삶을 즐길 줄 안다. 복희는 부엌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입으로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 일에, 웅이는 그들의 공간이 늘 정돈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에(간혹 모닝커피와 따뜻한 차로 복희와 슬아의 정신을 말끔히 하는 일에도) 진심이다. 복희는 딸 슬아가 어울리는 친구나 그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제고 평가하려는 법이 없다. 다만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나는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겸손한 태도로 그들과 어울리거나 슬그머니 빠져주거나 할 뿐이다. 웅이 역시 전형적인 가부장 아래에서 자란 아들이지만 그런 것보다는 문학청년이었던 젊은 시절의 감성에 취하는 날이 있을 뿐이다. 가부장적이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남자들의 모임에서 웅이는 괜히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그는 낮잠출판사의 성실한 청소노동자인 동시에 딸 슬아와 슬아친구들에게 어떤 권위도 내세우지 않는 멀티플레이어(기계, 목공, 전기, 운전 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삶에 조금도 불만이 없어보인다. 그저 딸 슬아가 자기를 존경해주는 남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낮잠출판사는 실제 이슬아 작가의 헤엄출판사를 떠올리게 하고, 언제나 그랬듯 그녀의 글은 픽션이 틀림없다해도 독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팩트일까 자꾸만 솟아오르는 호기심의 줄다리기를 하는 쾌감을 즐기게 된다. 완전히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처음의 실망감이 책을 다 덮을 때쯤엔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있다. 그동안 그녀가 써온 수필들은 결국 이 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한 밑작업이었을까. 존자와 병찬, 복희와 웅이를 포함한 그녀의 가족들이 비로소 이야기를 통해 자유를 얻고 멀리 날아가 뭇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게 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소설은 아래 인용한 문장으로 귀결되고 또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족의 유산 중 좋은 것만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혹은 가까이 머물면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정중한 타인인 채로 말이다. (307쪽)

+) 모든 챕터 중 그녀가 밥하는 사람으로서의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쓴 '부엌에 영광이 흐르는가'는 특히 못 견디게 좋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정중한 타인이 되고자, 나는 그녀의 다음 소설을 또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서로 분류되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육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