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 시간이 끝난 후 지아가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을 때 보리소리 북카페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기, 지아 씨. 노트 마지막에 지아 씨에게 쓴 할머니의 편지가 있더라고요.”
“아 네. 저도 봤어요.”
“그래서 그런데, 지아 씨가 할머니에게 편지를 하나 써주시면 어떨까요?”
“네? 제가요?”
“네. 할머니의 편지를 프롤로그, 그러니까 시집 맨 앞에 넣고요, 지아 씨의 편지를 에필로그. 시집 맨 마지막에 넣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더 의미도 있을 것 같고요.”
“아…. 네…. 제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할머니에게 답장을 쓴다고 생각하면서 한번 써보세요. 할머니가 지아 씨에게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의미였는지, 이 시집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써보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한번 해볼게요.”
“그럼 속도를 내야 하니까요, 이틀 안으로 가능하죠?”
“네? 네네. 알겠습니다.”
지아는 새로운 숙제가 생긴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할머니의 시집을 생각하며 그 부담을 설렘으로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아는 주연이 빌려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커서가 깜빡이는 속도에 맞춰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지아를 주연은 못 본 척했다. 글을 빨리 써달라는 재촉을 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압박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곳, 구진 군에 내려오기 전까지 주연은 크고 작은 출판사에서 일했다. 대학 전공은 경영학이었지만, 대학에서 배운 경영이론과 현실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걸 느낀 주연은 같은 과 친구들이 대기업 입사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볼 때 돌연 출판학교에 들어가 책 만드는 일을 배웠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된 책에서 나는 눅눅하고 쾌쾌한 냄새를 좋아한다던데, 주연은 새책에서 나는 따끈따끈한 냄새를 좋아했다. 고소한 종이 냄새 너머의 아련한 나무 냄새, 시큼한 잉크 냄새 너머의 육중한 기계냄새.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는 냄새를 맡으며 저자의 진심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순간을 만끽했다. 주연이 마음이 힘들 때마다 대형서점의 신간코너를 서성이며 책에 코를 박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후각을 만족시켜 준 책이 시각을 넘어 감성까지 충족시켜 주면 주연은 주저 없이 독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여전히 꿈과 현실의 격차는 존재했다. 크든 작든 출판사 역시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었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밤잠을 설치는 출판사 대표님들을 보면서 주연은 절대 대표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대표가 된 순간, 새책에 대한 설렘과 위로가 모두 사라질 게 뻔했다.
주연이 출판사를 그만두고 구진 군에 내려온 것은 엄마인 김작가의 영향이 지대했다. 아빠가 폐암 판정을 받은 후 수술과 항암치료로 5년 동안의 투병생활을 끝으로 돌아가신 뒤 엄마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마침 갱년기까지 겹쳐 더욱 힘들어했다. 그때 주연이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바로, 작은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시 공모전’ 안내문이다. 김작가 쓴 ‘당신, 지금 어디에’라는 시가 우수상을 타면서 김작가의 삶은 백팔십도 변하게 되었다. 집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던 사람이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시 교실’을 다니기 시작했고,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사람이 시교실에서 만난 사람들과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시를 여러 공모전에 보내더니, 3년 만에 덜컥 ‘한성 신문사’ 공모전에 입상을 한 것이었다. 물론 등단 조건으로 시집 100부를 구입해야 했다. 주연은 그런 엄마를 말리고 싶었다. 시집을 100권이나 사야 하는 게 무슨 당선이고, 등단인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김작가는 이렇게라도 가정주부가 아닌 시인으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가정주부로만 살다가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으니, 100권이 아니라 200권도 살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다.
주연이 출판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그때즘이었다. 대형 출판사는 아니지만, 매달 꾸준히 신간을 내고 있는 출판사로 이직을 했다. 연봉도, 근무여건도 더 좋았다. 게다가 재무제표도 꽤 괜찮았다. 주연은 이런 곳에서 책판매에 대한 압박 없이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출판사 경영은 대표님이 전적으로 맡고 있었고, 직원들은 담당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직을 하고 난 후, 그 출판사의 경영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출판 방식이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획출판의 방식이었지만, 책이 잘 팔리지 않으면 책의 저자들이 직접 200권씩 자비로 구입하는 방식이었다. 대형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 책을 만들기 위해 밀어 넣기를 하거나 사재기를 하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저자들에게 밀어 넣기를 하고 있는 출판사는 처음이었다. 저자가 직접 돈을 내고 출판하는 자비출판과는 형식이 조금 달랐지만, 엄연한 자비출판에 해당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님은 여전히 “우리는 작가들에게 계약금을 미리 주고 있고, 작가들 스스로 책을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연한 기획출간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연은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이용한 책장사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저자들이 구입하는 책 덕분에 출판사가 흑자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이건 마치 저자와 독자가 일치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책 작업을 했던 작가님 한 분이 출간 후 세 달이 지났을 때 메일을 보냈다.
“편집자님, 제가 처음으로 쓴 글을 편집자님께서 읽어주시고, 또 피드백 주셨을 때 정말 감사했어요. 내 글이 책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지요. 그런데 정작 책이 나오고 난 후 저는 너무 두려웠어요. 책을 내기 전에는 책이 잘 팔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은 저 같은 무명작가의 글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저 정말 노력했어요. sns에서 팔로워 늘려서 홍보하려고 매일매일 인스타그램 들어가서 피드를 만들었고요, 사람들 찾아다니며 댓글도 달았고요. 조금이라도 내 책을 알리려고 혼자서 도서관 찾아다니며 홍보도 했어요. 그런데 정작 저에게 남은 건 자괴감이었습니다. 지금 제 원룸엔 제 책 120권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박스를 뜯지도 못했어요. 서평단 모집해서 책을 직접 포장한 후 보내는 것도 돈이 너무 들어요. 책을 내서 돈을 벌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마이너스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이게 맞나 싶어요. 편집자님께는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전 다시는 책을 내고 싶지가 않네요.”
주연은 그 메일을 받은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더 이상 사람들의 희망을 팔아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고진군에 정착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주연은 망설임 없이 함께 귀촌하기로 결정했다.
50이 넘은 나이에 작은 신문사 공모전에서 시인으로 등단한 김 작가는 시골로 눈길을 돌렸다. 도시에는 날고 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 나이에 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시골은 달랐다. 나이 50이면 가장 젊은 사람 축에 속했다. 아무리 작은 신문사라 하더라도 공모전에 당선된 등단 시인의 명함은 선생님으로 환영받았다. 김 작가는 자신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살게 해 준 이 고장을 애정하게 되었다. 그건 때 묻지 않은 수려한 자연경관 덕분이기도 했다. 여러 도시를 여행해 봤지만, 이렇게 자연이 그대로 유지된 곳은 보지 못했었다.
“뭐, 여기는 전라남도에서도 거의 끝이잖소? 여수, 순천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디, 그 너머로 가믄 오고 가는 길이 원채 험하기도 하고 멀기도 하고 그라지요. 아 그랑께 옛날 조선시대에는 여그가 그 유배지였당께. 아마 여기 사는 사람들 위로 위로 올라가믄 조상님들이 죄다 한양서 죄짓고 내려온 양반들일 거시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니께 이 동네가."
마을 어르신의 설명을 들으니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만큼 도시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방색이 짙은 이 고장에 정착하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정을 붙이고 나니 내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김 작가는 첫 해에는 시 선생님으로, 그다음 해에는 동양화 선생님으로,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군청 작은 도서관 사서로 10년을 일했다. 그전에는 구진 군과 경기도를 오가며 살았지만, 60이 넘으니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김 작가는 구진 군에 정착하고 싶었다. 마침 딸 주연이 퇴사를 한다고 했을 때 함께 구진 군에 살아보는 건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마흔이 넘은 딸이 결혼도 하지 않고 일과 책에 파묻혀 사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 건넨 제안이었다. 그런데 딸이 덜컥 승낙을 해버린 것이었다. 책과 커피를 좋아하는 모녀의 니즈가 맞아떨어져 북카페를 차리기로 결정했지만, 장소에 대해서는 쉽게 일치하지 않았다. 이곳은 너무 시골이라서 손님이 전혀 없을 거라고 주연은 생각했고,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쌈짓돈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고, 그런 걸 무시하면 안 된다고 우긴 사람이 김 작가였다. 결국 여러 지역을 알아보다가 넓게 펼쳐진 청보리 밭에 반한 주연이 1년 전에 이곳에 있던 폐가를 매입했다. 그리고 북카페로 탈바꿈시켰다. 북카페를 차릴 때도 김 작가의 인맥이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지금도 김 작가의 수강생들과 지인들이 자주 카페를 애용해주고 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인맥으로 먹고사는 동네였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다. 옆 동네의 백반 식당 하나는 직원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돈 뒤 결국 폐업을 하기도 했다.
주연이 금자 씨의 시 노트를 본 후 직접 시집을 만들어 주기로 한 건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던 작가님들에 대한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새책 냄새를 맡아보고 싶기도 했다. 주연은 오랜만에 하는 책작업에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주연은 ‘마감의 힘'을 알고 있었다. 6일 동안 한 줄도 못 쓰다가도 마감 전 1시간을 남겨 놓고 휘리릭 써지는 게 글이었다. 적절하게 마감을 재촉해야 하지만, 너무 서두르면 글이 산으로 가는 경우를 종종 봤다.
주연은 다리 한쪽을 달달 떨며 노트북을 노려보고 있는 지아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곤 지아가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를 작은 잔에 내렸다. 카페 안으로 진한 커피 향이 넓게 퍼졌다.
“사장님, 커피 향 너무 좋아요. 죄송해요. 글이 너무 안 써져요. 제가 보고서 같은 건 많이 써봤는데요, 할머니께 편지를 쓰려고 하니까, 그리고 그게 책으로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생각이 하나도 안 나네요.”
주연이 에스프레소를 들고 지아 가까이로 다가오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들 그래요. 게다가 지아 씨는 한글로 쓰는 게 더 어렵잖아요. 그래도 오늘 안으로는 꼭 써서 주셔야 해요. 재촉 안 하려고 했는데…. 또 하고 말았네요. “
“어휴, 아니에요. 얼른 쓰겠습니다. 진우가 오기 전에 써야 해요. 헉, 벌써 점심때가 다 돼 가네요? 이런!”
지아는 다시 노트북으로 눈을 고정시키고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카페 안으로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운터에는 주연과 김 작가가 분주하게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지아는 시골의 작은 카페를 보면서 밀라노의 작은 바(bar)를 떠올렸다. 어느 곳에 가든지 길거리엔 바가 있다. 100미터에 하나씩 자리한 바 덕분에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바가 있어도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오래된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그 바 중에 하나는 바로, 엄마 동주의 일터이기도 했다. 나중에 엄마와 함께 이곳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꼭 마셔야겠다고 동주는 생각했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소하고 씁쓸한 커피의 맛은 같았다. 거기에 달달한 설탕을 넣고 티스푼으로 천천히 저어 설탕을 녹인 후 호로록 마시면, 피곤이 확 가셨다.
지아는 점심도 거른 채 여전히 노트북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우르르 몰려왔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동안 지아는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10년 전, 시교실에서 30분 만에 뚝딱 시를 써내던 할머니들과 홍이장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아! 얼마나 썼어?”
진우가 카페로 들어서며 말했다.
“어, 벌써 왔어?”
“벌써라니. 3시인데.”
“벌써 3시라고? 나 아직 다 못 썼는데… “
“뭐야, 박지아. 지금 빨리 마무리하세요. 그래야 편집 시작하지.”
“내가 한글 찾아보면서 쓰느라 좀 늦었어. 잠깐만…. 마지막 딱 하나만 쓰고.”
지아는 드디어 에필로그의 마침표를 찍었다.
“지아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문장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윤문을 할게요.”
“윤문이 뭐예요?”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 더 읽기 좋게 수정하는 거? 문장을 살짝 다듬는 거?”
“아! 네네. 감사합니다.”
“자, 그럼 편집 시작하겠습니다!!”
저녁 10시. 주연은 카페를 정리하고 바로 옆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소파에서 졸고 있던 김작가가 주연이 들어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제 오니? 고생했다. 어서 쉬어.”
“응, 엄마. 엄마도 쉬세요.”
주연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지아가 저장해 둔 파일을 열었다. 지아가 고심하며 써 내려간 시간에 비해 에필로그의 분량은 꽤 짧았다. 주연은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진심이란 화려한 수사어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주연은 지아의 짧은 에필로그에서 할머니를 향한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