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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05. 2024

18. 소원

형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온 마을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게 모두 다른 나라에서 시집온 여자들 때문이며 더 이상 외국인을 마을에 들이면 안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안 그래도 부정적이던 동남아 이주민과 그들의 아이들에 대한 편견은 더욱 나빠졌다. 

“내 알아 봤다니께. 형배 딸내미 있잖어? 그 가시내가 맨날 싸가지없게 하고 다녔잖어. 가출도 맨날 하고 말이여. 아주 여자애가 그냥 싹수가 노랬다니까.”

“그 형배 마누라가 그랬다믄서? 거 술에다가 농약을 탔다고 하드만.” 

“오메오메 세상에나. 죽은 형배 불쌍해서 어쩌끄나.”

“하여튼간 저 외국인 여자들이 독하다니께. 그 자식들도 매 한 가지 아니여? 우리 동네에도 있는디 어쩌꺼나.”

 

근거 없는 소문은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참고인 조사차 경찰서에 들른 수아와 수아 엄마를 본사람들이 말을 더 보탰다. 자살로 결론이 났지만, 형배를 죽인 사람은 수아와 수아 엄마가 되어 있었다. 

금자 씨 역시 최초 목격자로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다. 며칠 전, 금자 씨의 집에서 형배가 행패를 부린 일과그 일로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난 일이 하나의 ‘살인 동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망추정시간에 금자 씨와 아이들이 함께 호리산에 있었다는 것과 밤 동안에 손녀 지아와 함께 있었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 일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금자 씨였다. 정노인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또 한 번의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형배의 죽음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느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강하고 단단했던 금자 씨가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집에만 머물렀다. 그런 금자 씨에게 위안이 되어준 건 다름 아닌 별이가 남기고 간 두 마리의 아기 강아지였다. 금자 씨와 지아는 강아지에게 달이와 우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알뜰살뜰 보살펴 주었다.  



“지아야~” 

며칠째 할머니와 집에 틀어박혀 있던 지아는 진우의 목소리에 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는 진우가 서 있었다.

“할머니는?”

“응, 방에 계셔. 왠일이야?”

“걱정돼서 왔지, 자 이거.”

진우가 반찬통이 든 가방을 내밀었다. 

“우리 엄마가 만든 건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할머니는 좀 어때? 괜찮으셔?”

“응, 괜찮으셔. 그냥 밖에 나가기 싫으시대. 방에서 강아지들이랑 함께 있어.”

“어디 아프신 건 아니지?”

“기운이 좀 없으신 것 같아. 충격도 좀 받으셨고.” 

“충격받으실만하지….”

“그러게…. 잠깐 들어올래?”

“어, 아니야. 여기 잠깐 앉을게.” 

진우가 데크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 

“저기…. 지난번에 우리 반딧불 함께 보기로 했잖아.”

“아, 그랬지. 지금도 있으려나?”

“지금 같이 볼까?”

“지금?”

“응”

지아와 진우는 벤치아 앉아 반딧불이가 보이던 담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안 보이네.”

“그러게. 며칠 만에 모두 사라졌나 봐.” 

진우와 지아는 보이지 않는 반딧불이를 눈으로 계속 찾으며 그대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총총한 별이 눈에 들어왔다. 

“반딧불이 대신 별을 봐야겠네.” 

“그러네. 오늘따라 더 별이 잘 보이는 것 같아.”

“내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랑 여름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 지역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작은 소도시였어. 저녁을 다 먹고 발코니에 앉아있던 아빠가 날 급하게 부르는 거야.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고. 그래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쳐다봤는데 내 눈엔 안 보이는 거야. 한참을 기다렸는데 안 떨어지는 거야. 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아빠가 그랬거든.” 

“그래서 소원은 빌었어?”

“아니, 결국 보지도 못했고, 소원도 못 빌었어.”

“소원이 뭐였는데?”

“음…. 8살 때 내 소원은…. 강아지를 갖게 해 달라는 거였지. 근데 소원을 못 빌어서 그런지 결국 강아지를 못 가졌어.” 

“소원 이루어졌네. 별이, 그리고 별이의 아기들.”

“아, 그러네?”

“우리, 다시 한번 소원 빌러 갈래?”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이틀 후 밤에 하늘에서 유성이 많이 떨어진대. 별똥별이라고 하는데, 그거 같이 보러 갈래?”

“어머 정말? 그래 좋아.”

“별이가 묻힌 그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이번엔 어떤 소원을 빌지 잘 생각해서 와.”

“알겠어.”

“나랑 같이 여기서 버스 타고 가면 될 거야. 막차가 8시 50분이니까 그때 올게. 아 그리고, 진주에게는 비밀이야. 진주까지 따라가면 골치 아프니까.”

“아, 응. 그래.”

“그럼 이틀 뒤에 봐.”

지아는 이번엔 어떤 소원을 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소원이 너무 많았다. 




“지아야, 할머니가 지금 깨어나셨어. 정우 삼촌이 지금 너 데리러 간다고 하니까 지금 준비해서 바로 와. 알겠지? 아빠도 좀 전에 비행기 탄다고 연락 왔었어.” 

“알겠어, 엄마.” 

지아는 동주의 연락을 받고 할머니를 만나러 갈 준비를 부리나케 하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초조하게 서성이는 지아를 달이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집에 없으니, 달이도 요 며칠 꽤나 시무룩해 보였다. 밥도 잘 먹지 않고, 왈왈 짖지도 않고, 마당 한켠에 앉아 대문만 쳐다보았다. 그런 달이를 보니 지아는 왈칵 눈물이 났다. 할머니와 달이 사이에 쌓였을 정이 어느 정도일지, 지아는 헤아릴 수 없었다. 별이를 잃었을 때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었는데, 주인을 잃은 달이는 얼마나 사무칠까? 사람과 동물은 생김새도, 언어도 다르지만 서로의 정이 오가는 교감의 질량은 똑같은 것 같았다. 지아는 달이 곁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달이는 끄응 소리를 내며 그런 지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달아, 할머니 깨어나셨대. 누나가 가서 할머니 만나고 우리 달이 잘 있다고 전해줄게. 너가 이렇게 밥 안 먹고 있는 걸 할머니가 알면 엄청 속상하실 거야. 그러니까 너도 밥 먹어야 해. 알겠지?” 

지아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달이는 머리를 지아의 무릎에 올리고 누웠다. 집 밖에서 차 소리가 들리자 하늘이가 다시 벌떡 일어나 왈왈 짖기 시작했다. 정우 삼촌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지아는 마스크를 쓴 후 중환자 보호자 면회실로 들어갔다. 거기엔 중환자실이 보이는 통유리가 있었다. 거기에 엄마, 동주가 있었다. 

“지아야, 할머니 특별면회 신청해 두었어. 할머니 뵈러 가자. 여기 가운이랑 입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였다. 지아는 엄마가 건네주는 가운을 입고 장갑을 낀 후 머리에 캡까지 쓴 후 면회실로 들어갔다. 

힘 없이 눈을 끔뻑거리는 금자 씨의 모습을 본 지아의 눈에서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지아를 보는 금자 씨의 입가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지아는 금자 씨의 손을 꼭 잡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금자 씨 역시 지아의 손을 잡았지만, 지아는 그 힘을 느낄 수가 없었다. 지아는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할머니…. 나 왔어.”

지아는 다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그 숨결을 느낄 뿐이었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지아는 할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노트 마지막에 쓰여있었던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지아야, 꿈을 놓지 마.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 가장 행복한 사람은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


“할머니, 나도 이제 꿈을 찾았어. 할머니가 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시를 썼던 것처럼, 나도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어. 할머니, 나 멋진 변호사가 될게. 그래서 할머니처럼, 힘든 사람들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이 될게. 그리고 할머니 시집이 곧 나올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줘. 할머니 시집 내가 꼭 가지고 올게. 할머니도 꿈을 이룬 거야.”

지아의 말을 들은 금자 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금자 씨의 입이 들썩 거렸다. 

“지아야, 할머니가 너한테 하실 말씀이 있나 봐. 할머니 입에 귀를 가까이 대봐.”

엄마의 말에 지아는 귀를 할머니 입으로 가져다 댔다.



“내 손녀…. 내 꿈….”

지아는 애쓰며 입술을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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