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마당 한쪽에 있는 벤치에 앉아 반딧불이를 보러 오겠다는 진우를 기다리며 별들을 바라보았다. 별은 하늘에도, 할머니 집의 담벼락에도, 그리고 지아의 품에도 있었다. 모든 별들이 한꺼번에 지아의 마음으로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지아야, 안 잘 거야?”
금자 씨가 창문을 열고 하품을 하며 지아에게 물었다.
“할머니 먼저 자. 진우가 온다고 했어. 반딧불이 보러.”
“그래. 한 달 전부터 반딧불이가 왔었는디 우리 지아가 몰랐구만. 8월이 되믄 사라질 것인게 지금 많이 봐둬야지. 나는 먼저 잘란다. 모기 조심하고. 하~암”
금자 씨가 하품을 하며 창문을 닫자 지아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철커덩하며 대문이 흔들렸다. 이내 누군가가 발로 대문을 차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야~이 문 열어~”
지아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잔디로 덥힌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향했다. 그 뒤를 별이가 부른 배로 뒤뚱거리며 따라갔다.
“누, 누구세요?”
“야, 문 빨리 안 열어? 어이, 어매. 저 왔구먼요. 형철이 왔어라. 문 좀 열어 보소.”
지아가 잠겨있던 대문의 걸쇠를 여니 수아 아빠, 형철이 술냄새를 풍기며 서있었다.
“야이씨, 비켜~”
그가 지아를 밀치며 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게 다 어매 때문이라고요, 이게 다 어매 때문이라고~ 이리 나와, 니 죽고 나 죽을라니까. 이리 나와~"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잠을 자려고 누워있었던 금자 씨가 밖으로 나오자 형철은 더욱 소리를 질렀다.
“이니 형철이 아니여? 이 밤에 웬일이여?”
"웬 일? 웬일이냐고? 남에 가정 아주 작살내놓고 웬일이냐고? 이게 다 어매 때문이라고요~"
남자가 비틀거리며 금자 씨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아니, 형철이 또 술 마신 거여? 술 끊는다고 안 했는가? 응? 어째 그래싸. 술만 마시믄 아주 개차반이 돼가지고. 내일 술 깨믄 또 후회할 일을 왜 맨날 하고 그래 싸. 술 깨고 내일 다시 오소. 응?”
"아니 어매가 남의 집안일에 참견을 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믄 뭐란 말이요? 예? 어매 딸이나 간수 잘하란 말이요. 손녀나 잘 볼 것이지 뭐 한다고 남에 가정사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섞느냐 말이요. 오늘 다 같이 죽읍시다.”
그가 조끼 안쪽에서 칼을 꺼내며 금자 씨를 향해 걸어갔다.
“할머니!”
너무 놀란 지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런 형철 앞으로 별이가 버티고 서서 으르렁거렸다.
"에이씨, 이 개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형철이 별이를 향해 있는 힘껏 발을 찼지만, 별이가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몸을 피하며 계속 으르렁거렸다.
“이 개새끼가~”
아무리 발길질을 해도 소용이 없자 형철은 별이를 무시하고 금자 씨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때였다. 별안간 별이가 형철의 오른발을 물고 늘어졌다.
"아니, 이 개새끼가 감히 누굴 물어? 엉?"
그런 별이를 냅다 걷어찼다. 별이가 붕 떠오르더니 바닥으로 떨어지며 깨갱 소리를 냈다.
"별아!!"
지아가 소리를 지르며 별이를 향해 뛰어갔다.
"안돼!"
그런 지아를 붙잡으러 금자 씨가 따라 뛰어갔다. 마당 한쪽에 축 처진 별이를 품에 안으며 헝철을 향해 지아가 소리를 질렀다.
"깨 꼬자 파이, 깨 깟쵸!"
그런 지아를 향해 형철이 칼을 든 손을 높이 쳐들며 다가왔다.
"이 가시나가 뭐라고 해 쌌냐. 니 지금 나한테 욕했제? 응? 욕했냐고? 이 가시나가?"
그때 금자 씨가 별이를 품에 안은 지아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그때 대문이 열리며 진우와 진우 아빠가 뛰어들어왔다.
"야, 김형배! 니 지금 뭐 하냐? 이 새끼가 지금 여기서 뭐 하냐고? 응? 새끼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남의 동네에 와서 어디 행패를 부리고 난리야? 감히 우리 금자 씨한테 손을 대? 이 새끼가 겁대가리 없이."
형배는 엉거주춤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형님 내가 그것이 아니고요, 하도 억울해서 이러는 거 아닙니까요. 수아 엄마도 집 나가고 수아도 나가고. 나가 시방 이혼당하게 생겼당게요. 내가 지를 어떻게 데리고 왔는디. 돈이 얼마나 들었는디. 형님은 알잖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님은 알 것 아니요? 예?"
"어서 그 칼부터 내려놔. 니 진짜 어쩔라고 그라냐. 인자 살인자까지 될라 그래? 어서 그 칼부터 내려 놔.”
“아니 형님 그거시 아니고요. 나가 진짜 억울해서 못 살것당께요.”
“알았네, 알았어. 그 칼 나 주고. 나랑 저기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형님은 내 맘 알지라? 내 맘 알지라?”
“그래, 그래. 내가 알지, 알아.”
진우 아빠의 말에 형철은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주저앉았다. 진우 아빠는 그런 형철에게 다가가 칼을 발로 차버렸다.
“아이고 참말로, 십 년 감수했네. 니가 가족을 잘 못 돌본 주제에 누구한테 핑계를 대는 거여? 니만 믿고 여기까지 온 사람한테 니가 뭔 짓을 했는지 몰라?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응? 오죽했으믄 집을 나갔겄냐고."
"아니, 형님까지 나한테 왜 그런다요. 흐흐흑."
남자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진우 아빠야. 어떻게 알고 왔는가?"
"진우가 요 앞에 왔다가 놀라서 전화를 했더라고요. 아이고, 어무이, 얼마나 놀라셨소 그래.
"그래, 고맙네. 그나저나 형배는 어쩌까이. 저렇게 술에 취해가지고......"
"경찰서에 전화할라니까 어무이 너무 걱정 마세요.”
“할머니, 별이가…. 별이가 이상해….”
“별이가 왜? 어짜꼬, 별이가 다쳤는갑다. 어짜꼬.”
지아의 품에 안겨있던 별이가 부르르 떨더니 입을 벌리고 얕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