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경찰들이 와서 형배를 데려간 후 금자 씨와 지아, 진우는 진우 아빠의 차로 순천에 있는 동물병원을 찾았다.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별이를 이불로 감싸 지아가 꼭 안고 있었다. 별이가 품고 있는 새끼들도 염려되었지만, 별이의 숨이 거칠어지는 것이 더욱 걱정되었다. 동물병원에 도착하니 정우가 별이를 받아 들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양수가 터지고 출혈이 심해 지금 당장 제왕절개로 새끼들을 꺼내야 한다고 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별이를 기다리며 다들 앉아있었다. 지아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할머니와 자신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덤벼든 별이가 고맙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지아의 손을 진우가 꼭 잡고 있었다.
“이모, 지아야. 별이 수술 끝났어. 근데….”
정우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오며 말했다.
“근데 저기…. 별이 상태가 좀 안 좋아. 그리고 새끼 중에 두 마리는 괜찮은데 한 마리가 좀…. 오래 견디기 힘들 것 같아. 별이랑 새끼 한 머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지아는 벌떡 일어났다가 그대로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호리산 중턱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니 넓은 호수가 보였다. 그 곁으로 청보리가 바람에 흩날리며 물결을 만들었다.
“여기가 좋겄다. 앞이 탁 틔여서 호수도 잘 보이고, 밤이면 별도 잘 보일 거야. 우리 별이 외롭진 않겄어.”
금자 씨가 살구나무 묘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아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진우의 손에는 삽이 들려 있었다. 그 곁에 진주가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할머니, 그럼 여기 팔게요.”
“그래, 우리 진우가 고생 좀 해줘.”
“고생은요 무슨. 별이는 우리에게도 좋은 친구였는 걸요.”
진우가 땅을 파는 동안 지아는 별이와 별이 새끼의 재가 담긴 상자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별이를 보내줘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에 지아의 마음이 더욱 아파왔다.
“자, 지아야 이제 여기에 별이를 뿌려주자.”
지아는 말없이 상자를 금자 씨에게 내밀었다. 금자 씨는 나무 상자를 열어 진우가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재를 뿌려주었다. 그 위로 흙을 살살 뿌려준 후 살구나무 묘목을 넣었다.
“자, 얘들아 이제 심어 볼까? 이제 이 나무가 우리 별이 나무인 거여. 낮에는 저 호수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고, 밤에는 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잘 자라거라.”
나무를 심는 내내 아이들은 별 말이 없었다. 그저 흐느끼는 소리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흙을 덮는 사각사각 소리에 묻혀 들려왔다.
제목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수록-
내려오는 길에 금자 씨가 시를 읊조렸다. 나지막이 들리는 금자 씨의 읊조림 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이 속삭이듯이 스쳤다. 지아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기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우리 별이가 가는 길이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네. 그 길이 외롭진 않겄어. 우리 별이가 가는 길에 노란 민들레가 많이 폈으면 좋겄네. 까치도 날아댕기고 말이야.”
금자 씨의 말에 아이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얘들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 두 처음과 마지막이 있어. 사람도, 동물도, 이런 나무나 풀도 마찬가지지. 이 할머니도 언제 저 세상에 갈지 모르는 거여.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거시제. 우리 별이가 갑자기 떠나서 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사랑 많이 받고, 또 즐겁게 지냈으니까. 별이는 분명 좋은 길로 가고 있을 거시다.”
아직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슬픔 너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금자 씨는 달랐다. 자신이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마지막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살 날이 많은 이 아이들에게 슬픔보다는 삶에 대한 희망을 알려주고 싶었다.
“누구나 새로운 길을 갈 때 걱정을 해. 보기에 좋아 보이는 비단길도 있고, 보기에 힘들어 보이는 자갈길도 있지만 직접 가보지 않으면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아무도 모르는 거여. 지아 엄마 아빠가 처음에 이탈리아 갈 때는 아마 희망을 잔뜩 안고 갔겄지. 하지만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건 여기 한국도 마찬가지여. 진우, 진주 엄마가 희망을 품고 여기 한국으로 시집을 왔지만, 와서 엄청 고생을 했잖냐. 그래도 중요한 것은 말이여. 처음엔 낯설고,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계속 걷다 보믄 곧 익숙해진다는 거시여. 내를 건너면 숲이 나오고, 고개를 건너면 마을이 나오는 것이지.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면 익숙한 풍경이 나오는 거시제. 지아도, 진우도, 진주도, 새로운 길을 가는 걸 너무 무서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각자 할머니의 말을 곱씹으며 마음에 별을 새겼다.
별이가 남기고 간 새끼 두 마리는 예정일보다 일주일 일찍 세상에 나왔기에 병원에 조금 더 머물러야 했다. 지아는 별이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별이가 햇빛을 쬐며 누워있던 데크 가장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 빈자리를 생각하니, 자신이 밀라노로 떠난 뒤 할머니가 느낄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그런 지아의 마음을 알았는지 금자 씨가 지아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우리 지아랑 여기서 함께 살고 싶지만, 그냥 엄마, 아빠랑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어. 넌 어떻게 생각해?"
"음.... 잘 모르겠어. 여기서 할머니랑 살면 엄마, 아빠가 외로울 것 같고. 또 내가 밀라노로 떠나면….”
"할머니가 걱정돼?”
“응”
"할머니 걱정을 왜 해? 허허허 할머니는 여기서 평생을 살았잖어.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 가족이나 마찬가지여. 그러니 할머니 걱정은 말어.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응….”
“그래도 할머니는 우리 지아랑 지냈던 시간이 너무 소중했어. 지아 넌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 좋았어.”
‘할머니 나도 정말 좋았어.’
지아는 지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을 잔잔히 바라보며 들리지 않게 말했다.
다음 날, 금자 씨는 이른 아침에 형배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려 경찰서에 잡혀간 이후로 형배를 만나지 못해 걱정이 되었다. 형배 몰래 수아 엄마를 뒤에서 도와준 건 사실이었기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엔 멀쩡하게 농사일을 하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형배였다. 언제나 술이 원수였지만, 그 술을 끊지 못했다. 수아와 수아 엄마는 이주민 여성을 도와주는 단체를 만나 새로운 도시에 정착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수아 아빠와 갈등을 빚었다. 가정폭력이 입증되어 접근금지 명령처분이 내려졌는데 그 과정에서 앙심을 품은 것이었다.
금자 씨는 형배의 집에 도착해 대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되어 좌우가 뒤틀린 철제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금자 씨는 형배를 큰 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금자 씨는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형배, 형배 안에 있는가?”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벌써 나갔나? 아니믄 또 술 마시고 여즉 자고 있나?’
금자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운동화와 슬리퍼, 흙 묻은 장화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겨 났다.
“어이, 형배.”
금자 씨는 다시 한번 큰 소리로 형배를 불렀다. 그때 살짝 열려 있는 안방문 틈으로 바닥에 누워있는 형배의 형체가 보였다. 놀란 금자 씨가 안방으로 들어가 형배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곁에 갈색병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