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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7. 2024

15. 시를 쓰는 사람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금자 씨의 시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김 선생님이 지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금자 씨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 아니? 여기 노트에 보니까, 시교실에 다니기 훨씬 전부터 시를 쓰신 것 같은데….” 

“저도 궁금해서 할머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게…. 할머니가 마을봉사를 다닌 지 1년쯤 됐을 때라고 했어요.”




옆 마을 정노인의 집에 들러 김치를 전해주고, 간단하게 주방정리를 하고 나오는 금자 씨를 향해 정노인이 말했다. 

"나도 젊었을 때가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늙었을꼬.... 금자가 참 부럽네." 

"아이고 어르신, 그런 말씀 마셔요. 저도 이제 늙었구먼요. 아주 할머니랑게요." 

"그래도 부럽고만. 하고 싶은 일도 하고 말이여. 나는 인자 아무것도 못한당께. 내 몸 하나 움직이는 것도 이렇게 힘든디 뭘 하것어."

"왜 못해요. 어르신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하실 수 있지요. 뭘 하고 싶으셔요?"

"나가 다시 젊어지믄 말이여, 운전도 해보고 잡고 또 노래도 불러보고 잡고 그러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믄서 여행도 다니고 싶고 말이여. 우리 때는 먹고 사느라 힘들어서 어디 여행이나 제대로 다녔간디? 그저 자식들 맥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그게 다였지. 뱃가죽 따시고 아그들 학교에 제 때 가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았당께. 아따 우리 금자는 아직 젊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소. 나맹키로 쭈그렁 할매가 돼블믄 암 것도 못한당께. 다리 성할 때 싸돌아 다니고, 맛난 것도 많이 묵고. 알겄제? 나는 인자 죽을 일만 남았당께."

"우리 어르신 이렇게 정정하고 말씀도 잘하시는데 뭔 걱정을 하신다요."

"나이 들면 말이 많아져서 탈이랑께. 몸에 힘이 없응께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거 좀 보소. 미안하네."

"아이고, 뭔 별말씀을 하셔요."

"나가 금자 나이만 돼도 이것저것 다 해볼 것이디, 평생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들 해볼 것인지. 나가 언제 이렇게 늙었다냐......"

금자 씨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정 노인의 손을 꽉 잡았다. 

"어르신 그럼 잘 지내고 계세요. 다음 주에 다시 올게요."

"그려, 그려. 잘 가시게."

"예. 더운데 나오지 마시고, 어여 들어가세요."

"어이 알았네. 어여 가소. 고맙네."

등이 굽어 지팡이를 집지 않으면 허리를 제대로 펼 수조차 없는 노인이 해가 뉘엿뉘엿 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금자 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러 청소도 해주고, 반찬도 가져다주고, 말동무도 해주는 금자 씨는 그녀에게 가족보다 더 고마운 존재였다. 


90이 다 되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객지에 사는 자식들도 너무나 바빠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다. 자식들의 집에서 살아봤지만, 도시 생활은 늙은 노인에게 너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숨을 시지 못하게 했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어디가 어딘지 분별하지 못해 집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집안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몸에서 나는 늙은이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가시지 않았다. 

평생 흙에서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쳤다. 제 때 학교에 가고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자식 농사 참 잘 지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자식들이 객지에서 돈을 벌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동안 정 노인은 고향을 지켰다. 자식의 자식들이 태어나 할머니가 되었을 때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정 노인의 삶은 온통 자식들에게 향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자식들에게 방해만 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더욱이 자신 때문에 손주들이 불편해하는 걸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 노인 요양원에 몇 달 있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난장판을 부려 퇴소한 게 몇 달 전이었다. 아들에게 굳이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건 노인이었다. 셋이나 되는 자식들은 그런 노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젠 정말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인을 고향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가끔 고향에 들러 노인의 생사를 확인했다. 정신은 여전히 이렇게 또렷한데 몸은 이리 늙어 마음처럼 쉬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노인은 집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점점 멀어지는 금자 씨를 바라보았다. 


정 노인이 하늘나라로 떠난 건 일주일 뒤였다. 그날도 금자 씨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며 독거노인들과 이주민 여성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금자 씨가 정 노인의 집에 들어갔을 때 노인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 바닥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정 노인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금자 씨는 바로 119를 불렀다. 그리고 곧 경찰과 함께 구급차가 도착했다. 금자 씨는 최초 목격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시골에서 종종 일어나는 고독사였지만 금자 씨는 처음 겪는 일이라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에서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난 노인. 정 노인의 마지막 모습이 마치 자신의 미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삶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더 나이 들어 늙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어.”

정노인이 금자 씨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금자 씨는 자신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은 검은색보다 흰색이 더 많았고, 다리와 허리가 아파 오래 걷지도 못했다. 그나마 운전을 할 수 있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긴 하지만, 요즘엔 시력이 많이 나빠져 밤이 되면 운전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몸이 늙어가는 속도는 정신이 늙어가는 속도보다 열 배는 빠른 것처럼 느껴졌다. 

금자 씨는 정 노인이 말했던 것처럼 더 나이가 들어 후회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70이 다 된 나이는 남들이 보기에 이미 늙은 나이였지만, 금자 씨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직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어디든 갈 수 있는 나이이고, 아직 정신이 멀쩡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금자 씨가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할머니, 아쉽지 않아?"

"뭐가?"

"시 전시 못한 거.":

"응, 아쉽긴 하지만 괜찮어. 여기 노트에 할머니 시가 남아 있으니께. 그리고 시를 계속 쓸 거니까. 괜찮아.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어?"

"글쎄...."

"시집을 내야 하나? 윤동주 시집처럼, 정금자 시집 이렇게 만들면 어때?"

"우리 지아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근디 누가 이런 걸로 시집을 만들어 주겄어?"

"난 할머니 시 좋은데. 어디 출판사 같은 데에 보내보면 안 돼?"

"생각만 해도 부끄럽네. 할머니 생각엔 말이여....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인 것 같어.”

"시를 쓰는 사람?"

"응, 너무 당연한 말이제?"

금자 씨가 지아를 바라보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시를 잊지 않고 계속 쓰는 사람이 시인이지. 나무를 봐도 시를 떠올리고, 하늘을 봐도 시를 짓고, 바람, 돌, 꽃, 사람, 개미, 거미, 강아지, 고양이, 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보면서도 시를 떠올리는 게 시인 아니것어?"

"할머니 말이 맞는 것 같아.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야. 그러니까 할머니는 이미 시인이야."




김 선생님이 금자 씨의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금자 씨는 이 시들을 노트에 그냥 남겨뒀단 말이야? 아이고 아까워라…. 그냥 이렇게 두기엔 너무 아까운데.”

“할머니 꿈이 시인이 되는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시를 쓰셨는데….”

“그러셨구나. 그때 시교실에서 수업한 뒤론 수업이 폐강이 되어서 금자 씨를 다시 못 뵀거든. 국가 보조금으로 하는 수업이라 수강생이 없으면 할 수가 없지. 나도 많이 아쉬웠었어.” 

“네…. 할머니는 그래도 꾸준히 시를 쓰셨어요. 할머니는 시를 쓰는 사람은 이미 시인이라고 하셨거든요.”

“세상에나…. 이 시만 역어도 시집 한 권 나오겠는데…. 근데 책 만드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거든. 출판사에 보낸다고 해도 바로 계약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계약이 되더라도 책 나오는 데는 몇 개월씩 걸리니까….”

“아, 그렇군요….”

“굳이 출판사에서 하지 않아도 된다면,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카페 사장님, 은희가 넌지시 말했다. 

“다른 방법이라뇨? 그게 뭐예요, 사장님?” 

진우가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책을 직접 만들면 되지.”

진우와 지아는 잔뜩 기대했다가 급 실망한 눈을 서로 마주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걸 할 줄 알면 이렇게 고민 안 하죠.” 

“내가 도와줄게요.”

“네? 사장님께서요?” 

“이래 봬도 서울에서 출판사에서 일한 사람이에요. 나.”

“우와. 사장님, 정말요? 정말 가능할까요?” 

“근데 문제가 있어요. 지금 할머니 시가 노트에 있잖아요. 이걸 워드프로세서로 모두 옮겨줘야 해요. 그래야 인디자인으로 책을 만들 수 있어요. 그 작업이 좀 많이 걸릴 것 같은데….” 

“그거라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타이핑 하나는 빠르거든요.” 

진우가 자신감에 찬 얼굴로 말했다. 

“좋아요, 그럼 진우 씨가 이 노트에 있는 시를 모두 컴퓨터 작업해서 나에게 보내주세요. 그다음에 책 디자인하고 만드는 건 내가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로 해볼게요. 아 그리고, 시집 제목이랑 할머니 프로필은 지아 씨가 준비해 주세요. ‘정금자 시집’ 이렇게 쓸 수는 없으니까요. 음…. 여기 여러 시 중에 대표적인 시제목 하나를 책 제목으로 해도 될 것 같아요.”

“네. 고민 좀 해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집 만들려면 돈이 들 것 같은데…. 작업비도요.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그리고 진우 너에게도 내가 비용 지불할게.” 

지아의 말에 진주와 은희, 김 선생님은 서로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뭐, 이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비용을 받진 않을 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책을 미리 여러 권 인쇄하면 돈이 들지만, 주문형 도서로 만들면 제작비용이 많이 들진 않아요. 주문하면 그때 인쇄를 하니까요. 나중에 책 반응이 좋으면 그때 다시 정식출판을 해도 좋구요. 지금은 일단 최대한 빨리 작업을 해서 책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아. 그리고 작업비를 받지 않는 대신 책을 저희 카페에서 팔 수 있도록 해주세요.”

“어머, 정말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책 판매 비용은 이곳에 사시는 분들을 위해 사용할게요. 여기 외롭게 사시는 분들이나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요.”

“그건 예전에 금자 할머니께서 하시던 일이에요.”

“음, 그럼 더욱 의미가 있는 일이네요. 그럼 자, 시작해 볼까요?”



사람들이 보리소리 카페로 한 명, 두 명 들어오기 시작했다. 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을 받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지아는 차갑게 식어버린 카푸치노를 절반이나 남겨두고 인사를 한 후 카페를 나섰다. 역시 카푸치노는 이탈리아가 더 맛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은 한국이 더욱 깊고 진하다고 생각했다. 

지아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진우는 일을 하러 바삐 달려갔다. 그의 손에는 금자 씨의 노트가 들려있었다. 이번에는 꼭 할머니의 손에 시집을 들려드려야겠다고 진우는 여러 번 다짐했다. 몇 날 밤을 새워서라도 작업을 끝낼 기세였다. 

집으로 돌아온 지아는 시집의 제목을 생각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시가 있었다. 바로, 가족에 대한 그림이 잔뜩 묻어난 시였다. 




[저기, 사장님. 시집 제목은 이것으로 할게요. ‘그리움을 묻고’]

[오케이.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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