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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1. 2024

14. 별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할머니, 별이가 좀 이상해요.” 

아침에 별이게 밥을 주러 나온 지아는 평소와 다른 별이의 모습에 깜짝 놀라 말했다. 지아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던 별이가 오늘따라 시무룩하게 누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제 준 사료도 다 먹지 않고 절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응? 별이가 이상하다고?”

“네. 밥도 안 먹고, 기운도 없어 보여요. 소화가 안되는지 오늘따라 배도 나온 것 같아요. 어디 아픈 거 같은데….” 

“에이그. 지난번에 데리고 온 강아지도 알지 못할 병에 걸려 죽었는데, 별이도 그런 건가….”

“네? 할머니 어떡해요?”

“일단 동물병원에 한번 데리고 가보자.”

금자 씨와 지아는 별이를 데리고 순천에 있는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금자 씨의 조카 정우가 일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모, 별이 임신했네요.” 

“뭐? 임신을 했다고? 언제 그랬지?”

“별이가 새끼 강아지가 아니었어요?” 

“별이는 몰티즈 종이라서 소형견이야. 이게 다 큰 거야.”

“아, 전혀 몰랐어요.”

“이모, 지난번에 키운 강아지 무지개다리 건널 때 다신 안 키운다시더니.”

“어 그랬는디, 우리 지아가 하도 키우고 싶다고 해서 말이여. 그래도 어디 아픈 줄 알았는디 아니라서 다행이구먼.”

“이모, 벌써 5주나 됐는데요? 한 달 후면 새끼 나오겠네.”

“뭐? 벌써 5주나 됐다고?” 

“새끼가 3마리 있으니 나중에 잘 봐주세요.”

금자 씨와 지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별이가 임신을 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금자 씨와 지아는 애견숍에 들러 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장만했다. 지아는 집안으로 별이의 집을 옮겨주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급구 반대했다. 할 수 없이 그늘지고 바람이 잘 불어 시원한 현관 앞 데크로 옮겼다. 별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지아는 더욱 별이를 챙겼다. 낮은 물론이거니와 밤에도 별이 곁에 앉아서 털을 쓰다듬거나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날도 지아가 별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금자 씨의 집 담장 너머에서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 저게 뭐지?” 

반짝이는 불빛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수십 개가 넘는 불빛이 반짝이며 무리 지어 움직였다. 

“별아, 너무 예쁘다. 우리 별이 친구들인가 봐.” 

지아는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넋을 놓고 바라보다 핸드폰을 들고 찰칵 사진을 찍었다. 너무 어두워서 잘 찍히진 않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점점이 박힌 불빛이 찍혔다. 지아는 그 사진을 진우에게 전송했다. 


[이거 봐. 우리 집에 별이 쏟아지고 있어.]

[어, 반딧불이네.]

[반딧불이라고 하는구나. 너무 예쁘다.] 

[나도 보러 가도 돼?]

[응, 당연하지. 진주도 데리고 와.]

[오케이. 내일 밤에 갈게.] 


지아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눈앞에 반짝이는 별, 그리고 자기 품 안에 있는 별이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지아의 마음속에서도 반짝이는 수많은 별이 들어선 것 같았다. 




"금자 씨 너무 아쉽네요. 이번에 시화 전시회에 금자 씨 작품을 내지 못하다니. 너무너무 아쉬워요. 지금이라도 제가 해볼까요?"

"아니에요, 선생님. 시간도 없는데요 뭐. 괜찮아요. 나중에 또 하면 되지요. 괜히 아이들 고생만 시킬 건데요."

"그래도, 우리 금자 씨가 에이스인데."

"아니, 선생님. 그리 말하믄 열심히 준비한 우리는 뭐가 됩니까? 하이고 참나. 금자 씨만 맨날 아낀다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만옥 씨가 한마디 하자 옆에 있던 구옥 씨가 만옥 씨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니 왜, 성님은 아프게 남의 옆구리를 찔러쌋소. 참말로. 아니, 할 말은 해야지. 왜 맨날 금자 씨만 감싸는지 모르겠다니까."

"아이고, 만옥이 나는 안 할라네. 자네 작품 구경이나 실컷 할라네. 홍 이장님이랑 구옥이 성님도 잘 준비하셨지요?"

"왐마, 나는 아주 그냥 그림이 영~ 맘에 안 든당께. 거 남학생들만 붙여줘 가지고 그림이고 글씨가 아주 그냥 엉망진창이여."

홍 이장님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에이, 이장님 그런 말씀 마세요. 전시회 못하는 금자 씨도 있는데요."

"아, 금자 씨 미안하요이. 내가 괜한 말을 했구만."

"아이고, 아닙니다. 홍이장님 시가 좋으니 뭔 그림을 그려도 좋겄지요."

"하, 이리 또 이쁘게 말씀을 해주시니, 역시 우리 금자 씨라니께."

시 교실 마지막 날, 각자 준비한 시화 액자를 군청 복도 한 켠에 전시했다. 구옥 씨와 만옥 씨, 홍 이장님의 작품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군청을 찾는 사람들이 그들의 작품 앞에 서서 감상평을 한 마디씩 내어 놓았다. 그들은 진짜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금자 씨의 작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금자 씨의 시는 노트에 여전히 남아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금자 씨는 조바심 내지 않았다. 시를 쓰며 지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무엇보다 귀했기 때문이었다. 금자 씨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을 시로 연결시켰다. 시는 곳 금자 씨의 삶이 되었고, 그녀의 삶은 곳 시가 되어 금자 씨의 노트에 차곡차곡 남겨졌다. 




지아와 진우는 북카페가 있는 호영리로 향했다. 지아의 가방엔 금자 씨의 노트가 들어있었다. 마을 입구를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넓은 정원 가운데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나왔다. 평범한 시골 마을 한가운데 빨간 벽돌 건물이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건물 옆으로 탁 트인 호수가 보이는 게 한 폭의 그림 속 장면처럼 보였다. 건물 입구엔 목재로 된 현판에 “보리소리 북카페”라고 쓰여있었다. 


“여기가 거기라고?”

“응, 기억 안 나? 저쪽 길로 올라가면 호리산이잖아. 그리고 이쪽 길로 가면 호수가 있고.”

“아, 기억나. 우리 별이 나무 심은 곳 맞지? 거기서 보이던 호수가 저기구나….”

“맞아. 호리산 중턱에서 같이 별똥별 봤었잖아.”

“아….”

지아는 과거, 어리숙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그런 지아의 손을 이끌며 진우가 말했다. 

“어, 뭐. 다 추억이지 추억.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서자 정원이 나왔다. 정원엔 다양한 꽃이 흐드러지게 펴 있었다. 그중에서도 하늘색 수국이 한쪽 벽을 환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담벼락 아래 고양이 두 마리가 졸린 듯한 눈을 꿈뻑이며 누워 있었다. 

“설마, 얘네 이름이 보리, 소리는 아니겠지?”

“어, 맞아요. 보리와 소리. 카페 오신 건가요?’

그때 창문 너머로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여자가 말했다. 

“네, 아~ 그래서 카페 이름이 보리소리인가요?”

진우가 카페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건 아니에요. 보리소리 카페에 저 고양이들이 무작정 들어왔어요. 호호호, 원래 자기들 구역이었나 봐요. 그래서 그냥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보리소리 카페에 사니까 보리와 소리.”

깐깐해 보이는 카페 사장님 손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한바탕 밭일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카페 이름이 왜 보리소리예요?”

“제가 청보리밭을 좋아해서요. 보리밭에서 부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고요. 봄이면 저 호수 너머로 청보리밭이 보여요.”

“아, 네….”

지아는 어렴풋이 그 바람 소리가 떠올라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지아와 진우는 입구 근처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페 내부 벽을 따라 책장이 빙 둘러 있었고,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가운데 기다란 테이블에도 사장님이 큐레이션 한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입구 바로 앞에는 4단으로 된 작은 책장이 있었다. 거기엔 다양한 제목을 가진 초록색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 위엔 color book 시리즈, 이달의 컬러, Green”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일단, 뭐 좀 마실까?”

“난 음… 카푸치노.”

“차가운 거?” 

“아니, 따뜻한 거.”

“더운데 무슨 따뜻한 걸 마셔. 난 아이스아메리카노.”

“이탈리아에선 아메리카노를 안 마셔. 아침엔 카푸치노를 마셔줘야 해.”

“넌 여전하구나. 내가 주문하고 올게. 잠깐 기다려.”


진우가 커피를 주문하러 간 사이에 지아는 카페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책장에서 종이냄새가 향기롭게 풍겼다. 하지만 선뜻 책을 집어 들진 못했다. 오른쪽 창문 아래로 길쭉한 테이블이 있었다. 그 위엔 북카페 사장님이 큐레이션 한 책과 책 소개가 적힌 작은 쪽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중에 한 그림책 표지 그림이 지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절모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한 손엔 트렁크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입가를 만지며 앞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동물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책이었다. 책표지에 붙어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에 파란색 볼펜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2007년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 수상작으로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그림책이자 낯선 장소, 낯선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그림책]


“어, 볼로냐라고?” 

밀라노에서 차로 3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볼로냐였다. 그곳에서 매년 봄, 그림책과 관련된 박람회가 열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 박람회에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궁금증이 일어 책표지를 넘기니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지아는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저 안에서부터 차올랐다. 한 남자가 가족을 떠나 배를 타고 새로운 곳으로 가는 장면,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장면, 핍박과 멸시를 피해 숨어 다니는 장면, 하지만 또 다른 이민자들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장면. 

“이 책 알아?”

진우가 가까이 온 줄도 모른 채 그림책에 빠져있던 지아는 진우의 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처음 본 책이야. 근데 그림이….”

“정말 강열하지?”

“넌 이미 아는 책이야?”

“응, 좋아하는 책이야. 그림책이긴 한데 이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거든. 숀 텐 작가가 호주 출신인데 부모님이 말레이시아에서 온 이민자였대. 숀 텐 작가는 이민자 2세인 거지.”

“아…. 그래서 이런 그림을 그린 거구나….” 

“난 이 그림책을 보면 주인공이 우리 엄마 같아서 마음이 좀 그렇더라구. 근데 결말 부분이 또 뭉클하기도 해. 새로운 곳에 도착해서 잘 정착한 듯한 그림이 꼭 우리 가족 같거든. 그림책 제목이 “도착”인 이유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네. 사실 우리 엄마, 아빠도 많이 힘들었거든. 우리 부모님도 이 그림책 주인공처럼 이탈리아어를 잘 못해서 고생 많이 하셨데. 남들은 밀라노에 산다고 하면 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민자로 사는 건 풍경화 속 그림 같은 삶은 아니잖아.”

“맞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우리 엄마 고향에선 한국에서 결혼해 아이들 낳고 잘 살고 있으니 성공했다고들 하거든.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진우는 말을 끝맺지 못하는 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자, 손님들 여기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북카페 사장님이 부르는 소리에 진우와 진주는 책을 덮고 자리로 향했다. 

지아와 진우가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이고 덥다. 아침부터 푹푹 찌네. 호수 한 바퀴 돌다가 모기한테 잔뜩 물렸어, 나 아이스 티 한잔 부탁해.” 

그녀는 긴 챙이 달린 모자를 벗으며 은발의 짧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내렸다. 

“어, 안녕하세요. 선생님.” 

진우가 아는 체를 하며 인사하자 고개를 돌려 진우를 쳐다보았다. 

“어…. 진우구나? 잘 지냈니?”

“네. 근데 선생님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내가 할 소린데? 가게는 어쩌고 웬 일로 아침부터 카페에 왔어?”

“아 저는 친구 일로 잠시….”

그녀는 진우의 말에 지아의 얼굴을 찬찬히 드려다 보았다. 

“낯이 익는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었던가?”

“글쎄요….”

지아도 낯설지 않은 얼굴에 어디서 봤는지 떠올려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예전에 시교실에서 봤을 것 같은데. 금자 할머니 손녀예요.”

“아~ 금자 씨 손녀였구나. 어쩐지 낯이 익다 했지. 어머 너무 반가워요. 진짜 오랜만이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때 북카페 사장님이 아이스티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엄마 아는 분들이야?”

진우와 지아는 깜짝 놀라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엄마라고요?”

“응, 여기 우리 딸. 여기는 예전에 엄마가 시교실 할 때 할머니 학생의 손녀. 그리고 여기 진우는 저 읍내 미용실 옆에 수리센터 사장님.”

“어머 반가워요. 나중에 우리 집 수리할 것도 있으면 거기로 가야겠네요.”

“네네. 오세요.” 

“근데 여긴 커피 마시로 온 거니?”

“아니에요. 실은…. 이거….”

지아가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앞으로 내밀려 말했다. 

“저희 할머니가 지금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세요. 언제 깨어나실지 모르겠데요.”

“뭐? 정말? 세상에나…. 이렇게 날이 더우니까 어르신들이 많이들 아프신가 보고만. 이제 다들 연세가 많으시니까. 작년에 그분도 돌아가셨잖아. 할머니랑 같이 시 쓰시던 어르신 중에 구옥 씨라고 있었는데.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네. 

“네, 기억나요. 아,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근데 이건 뭐예요?”

“이건 저희 할머니 시노트인데요. 이걸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요. 혹시나 하고 북카페 사장님께서 책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 아시나 하고 와봤어요.”

“이게 금자 씨 시 노트라고?”

“할머니의 꿈이 시인이셨거든요.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그 꿈을 이뤄드리고 싶어요….” 

선생님은 금자 씨의 노트를 펼치더니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별은 언제나


귓가에 들리는 별의 노래에 보이지 않는 별을 헤아린다

해가 뜬 한낮에도, 달이 뜬 밤중에도, 해도 달도 보이지 않는 그런 날에도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별을 보지 못하는 건 우리들이다 

눈앞에 드리워진 안개, 별을 감춰버린 구름, 욕심으로 얼룩진 우리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별은 그 자리에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내 어머니가 태어나기 전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반짝였을 별들이 

이제야 나에게 도착해 반짝인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품고 살다가 

내 아이의 아이에게 이야기를 전부 전해주고 별은 사그라든다,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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