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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27. 2024

12. 돌멩이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지아 넌 요즘 뭐 해? 대학교 졸업 했겠네?”

“응, 나 로스쿨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 준비하고 있어. 

“뭐? 변호사? 박지아가 변호사 준비를 한다고? 너무 멋지다.”

“멋있긴…. 언제 될지도 모르는데….”

“넌 할 수 있을 거야.”

“넌 예전에도 이렇게 좋은 말을 해줬었지.”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 너 그때 꿈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그때에 비하면 진짜 발전한 거지.”

“맞아. 그랬었지. ㅎㅎㅎ”

지아는 옛날 생각에 웃음이 났다. 

“거긴 아직도 별이 쏟아지려나?”

“아, 거기? 기억하는구나?”

“그럼, 기억하지. 그렇게 별이 많은 곳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외박을 해본 적도 처음이었고.” 

지아의 말에 진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지아가 진우에게 금자 씨의 노트를 건네며 말했다. 

“기억나? 우리 할머니가 쓰던 노트.”

“당연히 기억나지. 그때 시화전에 참가하려고 할머니 노트 보면서 시를 골랐잖아.”

“여기에 할머니 시가 여러 개 있는데 한 번 읽어볼래? 이 시들이 이 노트에만 있는 게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할머니 꿈이 시인이었거든.”

“그랬구나… 그냥 시를 좋아하시는 줄만 알았지, 할머니 꿈이 시인인 줄은 몰랐네.” 

진우가 금자 씨 노트를 훑어보았다. 

“할머니가 지금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엄마 말로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겠대.”

“할머니 연세가 많으셔서 걱정이네… 어쩌냐…. 아참, 호리산 있지. 그 산 입구 쪽에 북카페가 생겼어.”

“북카페라고?”

“응, 커피도 마시고 책도 사서 읽고.”

“이런 시골에 그런 게 생겼다고?”

“야, 요즘 시골에 없는 게 없어. 옛날과 달라. 그 사장님도 뭐 도시에서 직장 다니다가 귀촌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암튼 거기 가서 한 번 물어볼까?”

“뭘?”

“할머니 시를 책으로 만들 방법이 없는지 말이야.”

“방법이 있을까?”

“야, 요즘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AI가 넘치는 세상인데. 코로나 이후에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 됐다니까.” 

“넌 시간이 돼?”

“이래 봬도 나 사장이야. 그리고 시간 없어도 내야지. 네가 또 언제 휙 가버릴지 모를 일이고.” 

“아….”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야. 암튼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너 차 있어?”

“나 사장이라니까.”

“오, 좀 멋진데.”

“뭘 이까짓 거. 10년 전의 노진우는 잊어줘. 그럼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봐.”

“고마워. 진우야.”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진우가 다시 뒤를 돌아보며 지아를 향해 말했다.

“지아야, 그땐 정말 미안했어. 이번엔 꼭 성공시켜 볼게. 그리고, 할머니가 다시 깨어나길 기도할게.” 

지아는 돌아서서 걷는 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넌 10년 전에도 멋있었어.’ 

지아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할머니, 수아 아직 연락 없어요?"

"응, 아직. 학교에도 없는 거니?"

"네, 학교 안 온 것 같아요."

"수아 아빠한테 연락을 해봐야 하나...."

"할머니, 안 돼요. 제가 먼저 좀 찾아볼게요."

"아이고, 이를 어쩐다."

"죄송해요, 할머니. 전시회가 얼마 안 남았는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하다냐?  수아가 어디서 무슨 일 당할지도 모르는디. 일단 수아 갈만한 곳 좀 찾아보자. 내 버스 정류장이랑 찾아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저녁까지 못 찾으믄 그땐 경찰서에 신고를 하던지, 수아 아빠한테 말하던지 해야겄다.”

"네, 할머니. 저도 좀 더 알아볼게요.”

금자 씨는 휴대폰을 끊고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은 수아가 그린 그림을 가져오면 진우가 글씨를 쓰기로 한 날이었다. 점심시간 후에 구진군청 문화센터에서 만나 마무리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수아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진우는 수아를 기다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금자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제야 수아가 문화센터에도 학교에도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아가 집을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달 전에도 엄마를 찾겠다며 집을 나갔다가 순천역 근처에서 아빠에게 잡혀 다시 돌아왔었다. 금자 씨에게 수아 엄마가 연락을 한 건 집을 나간 지 두 달 정도 지나서였다. 광주에 있는 식당에서 베트남으로 돌아갈 비행기 값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을 책임지지도 않고 술에 취해 사는 남편과 더 이상 함께 살 수가 없다며 흐느끼며 말했다. 금자 씨에게 수아 좀 들여다봐 달라고 부탁하며 수아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수아 아빠가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종종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모든 일을 집안일이라며 나 몰라라 했다. 수아 아빠와는 한 동네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이었으니, 가정 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사람도, 참견하는 사람도 없었다.

금자 씨는 다른 동네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조금 더 수아를 챙기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금자 씨와 지아는 전시회 준비를 멈추고 수아를 찾아 나섰다.  먼저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작은 시골의 시외버스 정류장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몇 명이 에어컨 앞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오메  성님, 잘 지내셨어요?"

"아이고, 이게 누구야. 금자 아니여? 여긴 뭔 일이여?"

"성님 혹시 여기서 중학생 여자애 한 명 못 봤으까요? 굴이 좀 까무잡잡하고 이쁘게 생겼는디. 아, 머리 색깔이 노란색이에요."

"외국인이여?"

"아니, 그것이 아니라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에요."

"글씨.... 내가 장보고 여기 온 지 한 30분 되았는디, 나는 못 봤제."

"그래요."

"아, 잠깐만, 어이 김 사장."

머리카락 절반이 흰색인 짧은 커트 머리의 할머니가 정류장 한쪽에 위치한 편의점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이, 감사장 이리 쪼까 나와보소."

"예? 무슨 일이에요?"

"혹시 오늘 오전에 머리카락이 노란 여자아이 한 명 못 봤는가?"

"아, 봤어요. 오늘 오전에 왔었어요. 편의점에서 음료수랑 뭐 이것저것 사가더만요."

"그래? 어디로 가는지 못 봤는가?"

"아침 8시 30분즘이었으니까.... 그 시간이믄 광주로 가는 버스 시간이디?"

"워매, 딸내미가 광주에 갔는갑네. 근디 뭔 일이여?"

"성님, 아무것도 아니에요."

"뭔디 그래? 가출한 거야? 뭐여?"

금자 씨는 닦달하는 할머니들에게 손을 흔들더니 지아를 잡아끌었다. 

"지아야, 가자. 수아네 집으로 가야겠다. 아, 그리고 진우한테 연락 좀 해볼래? 수아가 광주에 간 것 같다고. 지 엄마 만나러 갔는가 보네." 

지아는 휴대폰을 꺼내 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 전 연락처를 저장해 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곧 진우에게서 답장이 왔다. 

[할머니 시화 전시회는 어쩌지? 다음 주엔 제출해야 하는데]

지아는 진우의 메시지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수아가 걱정되는 마음과 할머니의 실망하는 모습이 자꾸 겹쳤다. 

수아네 집은 읍내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읍내의 번화가를 벗어나 우회전한 후 좁은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예전에는 50 가구 정도가 살았지만, 지금은 고작 10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평균 나이가 70이었고, 그중에 수아네는 가장 어린 가족이었다. 

"수아 아빠야~ 수아야~, 어이, 현철이 있는가?"

수아네 집으로 들어서며 금자 씨가 큰 소리로 불렀다.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에서 한 번 더 수아 아빠를 불렀다.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금자 씨는 현관문을 두드리며 더 큰소리로 수아 아빠를 불렀다. 

"현철아~ 집에 있어? 응? 수아 아빠~~" 

그제야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아따, 현철이 뭐여. 또 술 마신 거여? 응? 이게 뭐냐, 이게."

현관문을 활짝 열고 금자 씨가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물감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리다 만 그림이 찢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따 어매, 어쩐 일이대요? 요즘엔 통 안 오시드만요."

"뭔 일은 뭔 일이여, 수아 때문에 왔제. 자네 밤새 또 술 마신거여?"

"아따, 술을 안 마시믄 뭔 재미로 살겄소, 내가. 수아 엄마도 집 나가고 없는디. 수아 그년은 맨날 방에 틀어박혀서 아빠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뭘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그년 아주 그냥 싹수가 노래졌당께요."

"으이구, 이 화상아. 술이나 좀 깨. 내가 말하지 않았어. 술도 끊고 착실하게 살아야 수아 엄마가 돌아온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응? 수아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어? 자네 하나 믿고 이 먼 나라에 왔는디? 그리고 아빠 아니여. 수아는 잘 키워야 되는 거 아니냐고. 이 양반아."

"아따, 왜 또 잔소리를 하고 난리라요."

"수아가 또 집을 나간 거 같은디."

"에? 뭔 소리다요. 아침에 학교 갔고 마는."

"학교에 안 왔으니께 그라제. 아빠 노릇 제대로 하라고 했재."

"이년을 내가 그냥, 에이씨."

수아 아빠가 금방이라도 수아를 잡으러 나갈 기세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자네, 지금 그 꼴로 운전하면 음주운전으로 딱 걸리네. 내가 수아 찾으러 갈 테니까 자네는 집 정리나 잘해놓고 있어. 내가 저번에 말했재. 아빠 노릇 제대로 안 하믄 수아 엄마한테 보낼 거라고. 내가 경찰서에 가서 다 말할 거라고 했재? 이제 나도 이판사판이여." 

금자 씨는 이렇게 쏟아붓고는 수아 네 집을 나섰다. 지아는 그렇게 화난 할머니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언제나 온화하고 따뜻한 줄만 알았는데, 할머니도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아야, 광주까지 가려면 2시간 정도 가야 하는데, 할머니랑 같이 갈래?"

"응, 네. 갈게요."

"괜히 지아한테 미안하네. 할머니랑 함께 지내면서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일만 있었으면 했는데...."

"할머니, 괜찮아. 그리고 나도 수아가 걱정돼."

"그래. 어른들이 나쁜 거야. 부모가 되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때 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아 찾았어?"

"아니, 아직. 할머니랑 지금 찾으러 가려고. 어.... 할머니 어디로 간다고 했지?"

"응, 광주"

"광주로 찾으러 지금 간대."

"광주로 간다고? 나도 같이 가~"

"너도 간다고? 잠깐만 할머니한테 물어볼게. 할머니, 진우도 함께 가고 싶대."

"그래? 음.... 그래. 같이 가자. 둘이 가는 것보다 셋이 가는 게 더 낫겠지. 진우야, 학교 앞으로 갈게." 

"네!!”

금자 씨는 차에 진우와 지아를 태우고 수아를 찾아 광주로 향했다. 금자 씨는 이 아이들이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온 돌멩이 같았다. 



돌멩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흔하디 흔한 돌멩이 하나

모래알만큼 반짝이는 것이 신기해 주머니에 넣었다

내 주머니에 담긴 작은 돌멩이는 그곳이 편안한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 모가 난 돌멩이는 

이제는 더 이상 구를 곳이 없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돌멩이가 맨들 해질 때까지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내 품에 들어온 돌멩이는

이제부터 내 가족인 게다

이제까지 아무 의미 없던 돌멩이가 

이제부터 특별한 의미가 서린 사물이 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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