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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29. 2024

11. 책임감의 무게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지아야, 별일 없지?"

"응, 엄마."

"오늘은 뭐 했어?"

"할머니 따라 여기저기 다녔어."

"친구는 좀 생겼어?"

"응, 진우랑 진주. 그리고 수아. 진주는 2살 동생이야."

"와, 친구가 벌써 3 명이나 생겼어?"

"응, 근데 진우 엄마는 필리피나, 수아 엄마는 베트나미타야."

"아~ 그렇구나."

"그 친구들이 꼭 나 같아."

"왜?"

"음...... 한국 사람인데 한국 사람 같지 않거든. 나도 밀라노에서 태어났으니 밀라네제인데 이탈리아 사람 같지 않으니까."

"지아야, 엄마는 자신의 정체성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건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

"정체성이 뭐야?"

"영어로는 아이덴티티 Identity, 이탈리아어로는 이덴티타Identita. 우리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향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안에 품고 있는 생각과 마음이 더 중요해. 마음이 외모를 지배하거든. 아무리 얼굴이 예쁘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못되면 그 사람은 그냥 나쁜 사람인 거야."

"응. 엄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정말 나쁜 거지. 인종차별주의자들도 그렇고...."

"응..."

"우리 지아 졸리겠다. 너무 늦었지? 얼른 자. 내일 또 통화해."

"응, 엄마. 부오나 조르나따(Buona giornata)"

"우리 지아, 부오나 노떼(Buona notte)"

지아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얇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평생을 침대에서 지낸 지아는 할머니 집의 이부자리가 불편했지만, 할머니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불편해할 지아를 위해 두꺼운 이불 두 개를 바닥에 깔아주었다. 지아는 엄마의 따뜻한 인사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느긋하게 잠을 청했다. 이제 한국의 시차에 완벽하게 적응한 지아였다.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별이가 컹컹 짖어댔다. 아침마다 함께 마을을 산책하는 데 재미를 붙인 별이가 지아에게 어서 일어나라며 깨우는 소리 같았다. 별이의 간절한 소리에 잠을 깬 지아는 덜덜거리는 선풍기를 끄고 몸을 일으켰다.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가니 금자 씨가 고추밭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있었다.

"할머니, 부온 조르노!"

"응, 우리 지아 잘 잤니?"

"네. 별이랑 산책 갔다 올게요."

"응, 그래. 별이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지아를 보자마자 달려오는 별이를 지아는 꼭 끌어안았다.

"부온 조르노, 아모레 Amore"



지아가 살던 밀라노에는 반려견이 정말 많았다. 아침, 저녁으로 자신의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주민을 위한 공원 옆에는 반려견을 위한 공간도 꼭 마련되어 있었다. 버스에도, 지하철에도 심지어 쇼핑몰에도 반려견을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밀라노에서 반려견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지아도 그런 강아지를 갖고 싶었다. 형제자매가 없어서 외롭기도 했거니와 다른 사람들처럼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해보고 싶었다. 지나가다 만난 귀여운 강아지를 한번 쓰다듬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완고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반려견을 무턱대고 들이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사람도 동물도 서로 사랑해야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엄마, 아빠였다.

지아는 별이를 돌보며 엄마와 아빠가 말한 책임감의 무게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동물과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사랑엔 언제나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지아와 별이가 산책하고 있을 때 진우와 진주가 뛰어왔다.

"지아 언니~ 어디 가?"

"아, 진주, 진우 안녕. 나 산책 중. 너희는?

“난 언니가 보이길래 따라 나왔지. 오빠는 왜 따라와?”

“어…. 나는…. 그냥 할 일이 없기도 하고…. 심심해서…. 별이가 보이길래….”

“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서 따라 나온 건 아니고?”

“그거야 너가 그렇겠지.”

“별이야~ 이리와봐. 언니가 더 좋지? 어, 별이 왜 이렇게 빨라? 같이 가~”

별이를 잡으러 뛰어가는 진주를 바라보며 지아와 진우는 나란히 논길 사이 길을 걸었다.

티격태격하는 진주와 진우가 귀여워 지아는 생글생글 웃었다. 

"넌 왜 웃냐?”

"응, 귀여워서. 남매 사이는 이런 거구나."

"이런 거? 원수 사이?"

"아니, 부러워서 그래. 난 혼자라서."

"야, 차라리 혼자가 좋아."

“아니야, 남매가 더 좋아. 혼자는 너무 외롭거든.” 

“둘이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그래? 그건 몰랐네.”

“뭐, 아무튼 너 웃으니까 훨 났다.”

“어? 뭐가?”

“맨날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잖아.”

“어…. 무뚝뚝하다는 게 그러니까 화난 표정이라는 거야?”

“아니, 얼굴에 표정이 없다고.”

“아….”

“근데 이렇게 웃으니까 훨 났네. 보조개도 보이고.”

진우의 말에 지아의 볼이 떨렸다. 논길 끝에 시냇가가 나왔다. 얕은 물이 흐르는 시냇가는 맑고 시원해서 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별이가 시냇가로 첨벙 들갔다. 진주는 별이를 따라 시냇가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며 곁을 서성였다.

"야, 별이가 주인이고 너가 반려인 같다야.”

“오빠, 같이 들어갈래?”

“난 싫어.”

“언니, 같이 물에 들어갈래?”

“좋아.”

“정말? 언니 옷 젓어도 괜찮아?”

“응, 나중에 집에 가서 갈아입으면 되지.” 

지아는 슬리퍼를 벗고 냇가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며칠 전 비가 서 그런지 시냇물은 허리까지 차올랐다. 

“언니, 나도 들어간다~” 

진주가 지아를 따라 성큼 성큼 물보라를 일으키며 들어왔다. 

“앗, 차가워~” 

그 곁을 별이가 헤엄치며 다가왔다. 

“야, 너네들 정신이 나간 거야? 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진우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지아의 하얀 티셔츠가 물에 젖어 속옷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지아는 진우가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여름이면 다들 비키니만 입고 공원에 누워있거나 비키니만 입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데…. 

“야, 내가 가서 수건 가져올 테니까,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달려갔다.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온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수록>


지아는 시집과 공책을 펼쳐 놓고 시를 필사했다. 그나마 쉬운 시를 골라서 한 자 한 자 공책에 옮겨 적었다. 해바라기 얼굴이라는 시를 쓰고 있으니, 아침에 본 진주와 진우가 떠올랐다. 티격태격 하지만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동생이나 언니, 오빠가 있었다면, 좀 더 잘 견딜 수 있었을까?'

지아는 지금까지 혼자인 것이 싫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혼자서 담뿍 받을 수 있었고, 좁은 밀라노 집에서 살기에는 가족이 딱 3명인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주와 진우를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얼굴과 닮은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던 금자 씨가 지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아야, 얘들 왔나 보다. 문 좀 열어줄래?"

"네, 할머니."

지아가 현관문을 열자 진주와 수아가 빠르게 들어왔다.

"야, 더워 뒤지는 줄 알았네."

"와~ 여기가 천국이다. 완전 시원하네. 역시 에어컨이 빵빵해야 한다니까. 우리 집은 에어컨을 안 틀어줘. 더워 죽겠는데."

진우와 수아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얘들아, 배고프지? 한 20분만 기다려봐라. "

"와, 할머니 뭐 만드세요? 오~ 고기다, 고기~"

"아.... 배고파~"

아이들이 아우성치며 말했다. 지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소파에 조용히 앉았다. 진우는 조용히 앉아있는 지아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야, 노진우. 너 왜 얼굴이 빨개?”

수아가 진우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어, 더워서.”

“덥긴, 완전 시원하구만. 너 어디 아프냐?”

“야, 신경 꺼. 우리 해야 할 일이냐 해.”

“괜히 지랄이야.”

"야, 일단 지난번에 다 못 고른 할머니 시를 골라보자. 할머니~ 그 노트 어딨어요?"

"어, 잠깐만. 지아야, 할머니 방 책상에 있는 노트 있지. 그거 좀 가져다줄래?"

지아는 할 일이 생긴 것이 내심 기뻐 벌떡 일어나 할머니 방으로 향했다. 지아의 뒷모습을 진우가 힐끗거리며 쳐다보았다. 

할머니 방에는 여러 책과 시집, 노트가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책상 위에 노란색 민들레 그림이 있는 노트가 한 권 있었다. 할머니가 시 수업에 갈 때마다 들고 다니는 노트였다. 지아는 그 노트를 들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진우와 수아는 할머니의 노트를 펼쳐 들었다.

"자, 나는 이거랑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수아 넌 어때?"

"몰라, 그냥 대충 해."

"대충 하긴 뭘 대충 해. 너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너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지 한 번 보라는 말이야."

"아이 진짜 귀찮게."

"야, 이것도 안 하려면 여긴 뭐 하러 왔냐? 너 솔직히 말해 봐. 할머니 밥 먹으러 왔냐?”

"야! 어떻게 알았냐? ㅎㅎㅎㅎ"

"밥값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야, 다른 애들은 이미 시도 골랐고,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 이제 얼마 안 남았단 말이야."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틀고 있는 수아를 향해 진우가 골 맨 소리를 늘어놓았다.

"얘들아, 밥 먹고 하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그리고 수아가 있는데 뭔 걱정이여. 그리고 좀 못하면 어때? 괜찮아. 할머니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니께."

금자 씨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할머니의 말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와, 할머니 진짜 맛있어요. 우리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는데 왜 아직도 한국 음식을 잘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자꾸 국물에 이상한 향신료를 넣어요."

"왜, 그래도 진우 엄마는 손맛이 좋던데. 지난번에 보니까 김치도 이제 혼자 만들던데?"

"에이, 할머니 그 음에 또 했는데 망했어요. 할머니가 김치 가져다주셔서 그거 먹고 있어요."

"우리 수아는, 아빠 잘 계시지? 며칠 전에 보긴 했는디....."

"네."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말하고. 많이 먹어. 그리고 집에 갈 때 싸줄 테니까 들고 가고. 아직 엄마한테서는 소식 없냐?"

"네, 없어요. 뭐,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요. ㅎㅎㅎㅎ"

"수아야, 슬플 땐 웃는 게 아니라 우는 거야. 감정을 숨기면 병이 되는 거야. 기쁠 땐 웃고, 슬프면 울고, 아프면 소리 지르고, 기쁘면 함성을 지르고. 그게 사람이지. 그런 걸 참잖아? 저 안에서부터 병이 드는 거야."

"네...."

"역시, 할머니는 모르는 게 없다니까요." 

"아이고, 미안하다. 할머니가 또 잔소리를 했네. 미안, 미안."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다시 금자 씨의 노트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20편이 넘는 시 중에 딱 4개만 골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렇게 할까? 내가 하나 고르고, 수아 너가 하나 고르고, 할머니가 하나 고르고 지아가 하나 고르고. 딱 4개. 어때?"

"오, 좋은 생각이네, 역시 우리 진우가 똑똑하다니까."

"그래, 좋아."

"어... 나도 골라도 돼?"

지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뭐, 어때. 너가 할머니 유일한 가족이니까. 자 그럼, 준비 시작!"


진우는 ‘파도와 나비’를, 금자 씨는 ‘어머니에게'를, 지아는 '구름이 그린 고래'라는 시를 각자 골랐다. 그리고 수아가 고른 시는 바로,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시였다.

"야, 김수아. 의외의 시를 골랐네?"

"뭐, 제목이 좋잖아. 내용도 좋고."

"너한테 제일 필요한 말 고른 거 아니고?"

"야이씨. 할머니 앞에서 험한 말 나오게 할래?"

"알았다, 알았어. 미안. 이제 어떻게 그림 그릴지 콘셉트를 정해보자고. 그림은 수아 너가 그릴 거니까 너가 말 좀 해봐. 글씨는.... 내가 쓸게."

“어, 그래. 고민좀 해 볼게.”

"그래, 수아는 잘할 거야. 진짜 멋지다.”

"아이, 할머니는 맨날 멋지다 그래요."

"이건 좀 어렵지 않겠어? 따뜻한 말 한마디. 이거는 어떤 콘셉트로 해야 할지.... 애매한데...... 말을 그릴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하는 걸 그리는 건 좀 이상한 것 같고...."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람을 살리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가장 큰 상처를 주기도,

가장 친한 친구가

나를 배신하기도 하는 세상인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따뜻한 햇살이 되어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그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인 것이다



"음.... 이건 일단 내가 알아서 그려볼게."

"너 망치는 거 아니지?"

"그럴지도 모르고."

"에이, 진짜. 수아 너 쫌 제대로 좀 해."

"아이고, 진우야. 괜찮아. 수아한테 맡겨보자. 수아가 알아서 하겠지."

"너가 빨리 그려야 내가 글을 쓰지. 그거 마무리해야 액자에 넣는다고. 우리가 제일 잘해야 한단 말이야."

"뭘, 그렇게 잘하려고 애를 써? 넌 그게 문제야."

"우리가 이렇게라도 잘해야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지. 맨날 외노자 자식이네, 어쩌네 하면서 너네 나라로 꺼지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런 거라도 잘해야지. 그래야 인정을 받지."

"그게 무슨 인정 거리나 되겠냐? 우린 출생 자체가 외노자 자식인 거야. 왜 그걸 몰라? 이 빙신아."

"야, 너 말 다했어? 이게 진짜."

진우와 수아가 다시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자자, 싸우지들 말고. 정리하자 얘들아. 다음 주 목요일에 문화센터에서 보자고. 수아야, 그때까지 가능하겄냐?"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직 2주 정도 시간 있으니까, 차분히 그려봐."

"너무 믿진 마세요. 우리 엄마, 아빠도 날 안 믿는데요, 뭐."

수아는 이 말을 하고 웃었지만, 웃음 뒤로 슬픔이 묻어난다는 걸 금자 씨는 알 수 있었다.

"자, 이거 제육볶음 남은 거 좀 쌌어. 가지고 가서 아빠랑 같이 먹어. 알았지?"

"네, 네"


더운 날씨에 짜증을 내며 걸어 나가는 수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금자 씨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손녀 지아도 이탈리아에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으며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수아를 배웅하는 지아와 금자 씨 옆에 진우가 주춤하며 서 있었다. 

“하이고 덥다. 진우는 더 있다 가려고?”

“네? 아 네. 저도 가야죠.”

“그래. 나는 먼저 들어갈란다. 다음에 보자이.”

“네, 네. 할머니.”

금자 씨를 따라 들어가려는 지아의 옷깃을 진우가 잡아당겼다. 지아가 놀라서 진우를 쳐다보니 진우가 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모양으로 ‘잠깐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금자 씨가 집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진우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이거 뭐야?” 

“아 이거, 지난번에 내가 사진 찍은 거 현상을 몇 개 했는데 좀 잘 나온 거 같아서….” 

진우가 내민 사진엔 지아와 별이가 좁은 논둑길을 걷고 있었다. 

“어머, 이걸 언제 찍었어?” 

“미안, 그냥 풍경사진 찍고 있었는데…. 거기에 너랑 별이가 있더라고.”

“진짜 잘 나왔는데? 정말 고마워.” 

지아는 자기 모습이 풍경의 한 부분이 된 사진을 보며 묘한 감동을 느꼈다. 

“너, 사진 정말 잘 찍는구나.”

“뭐, 재미로 그냥….” 

진우는 빨개진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반달눈을 하며 웃는 지아의 왼쪽 볼에 보조개가 귀엽게 들어갔다. 

“어, 나 그만 갈게.” 

“고마워, 진우야.” 

허둥대며 빠르게 걸어가는 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아는 이상한 설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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