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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03. 2024

13. 당연한 사람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수아 엄마? 나야 나. 응, 그래. 잘 지냈어? 혹시.... 수아 거기 왔는가? 안 왔어? 워매. 어짜까이. 아니 그것이 아니고..... 응, 전화가 왔었어? 아.... 그래.... 알겄네. 아니여. 내가 지금 광주로 올라가고 있응께. 수아 아빠? 아이고 그 사람은 신경도 쓰지 말어. 내가 이번에는 안 참을라니까. 응, 그래. 그러면 내가 저기 터미널로 가볼게. 울지 말고, 이 사람아. 아이고, 식당 바쁜가 보구만. 내가 도착해서 다시 전화할게. 그래, 그래." 


금자 씨가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진우야, 수아랑 아직 연락 안 되냐?"

"예, 할머니. 아직 톡도 안 봐요. 우씨, 계속 안읽씹이야." 

"아닉씹? 그게 뭐야? 욕이야?"

"안. 읽. 씹. 톡을 읽지도 않고 씹는다는 말이야. 톡을 보면 여기 노란색 1이 없어지거든? 이게 없어졌는데도 답장이 없으면 읽씹, 아예 보지도 않고 답장도 없으면 안읽씹." 

"아...."

"자, 얘들아 다시 출발해 보자. 버스 터미널로 일단 가자. 진우는 수아한테 계속 연락 해봐라이."

"네, 할머니."

진우와 지아는 수아를 찾으러 가는 이 길이 마치 소풍 가는 길 같았다. 논과 밭이 있는 시골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진우의 손엔 작은 디지털카메라까지 들려있었다. 잠시 휴게소에 들른 아이들의 손엔 먹을 게 잔뜩 들려 있었다.

“나 이거 진짜 먹고 싶었어. 예전에 엄마, 아빠랑 휴게소에서 먹었었는데 너무 맛있었거든.”

지아가 버터감자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휴게소에선 역시 소떡이지. 소떡도 좀 먹어봐.” 

입가에 고추장 양념을 잔뜩 묻히고 소떡을 먹는 진우를 보며 지아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두 아이의 웃음소리가 뜨거운 여름 공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이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되어 금자 씨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주었다. 친구 문제, 학교 문제, 공부 문제, 정체성의 문제 만으로도 버거운 이 아이들이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여 공감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해 줄 어른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웃어 줄 친구일 것이다. 금자 씨는 소리 내어 웃는 지아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가자!”

“어, 할머니 잠시만요. 둘이 여기 좀 서보세요.” 

진우가 카메라를 들고 휴게소 앞을 가리켰다. 지아와 금자 씨는 진우가 가리키는 곳에 어색하게 서서 진우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다 추억이잖아요. 자 두 분 다정하게 서보세요.” 

진우의 말에 지아는 금자 씨의 허리를 감싸않았다. 자기보다 훨씬 커 보였던 할머니가 자기보다 키가 작다는 걸 안 지아는 기분이 이상했다. 

“자, 찍습니다. 웃으세요. 하나, 둘, 셋”

“진우랑 지아도 여기 서봐. 한 장 찍어줄게. 진우야 카메라 줘봐.” 

“아, 네. 할머니. 여기 누르시면 돼요.” 

지아와 진우는 어색하게 서서 금자 씨를 바라보았다. 

“에이, 아까처럼 좀 웃어봐. 좀 더 친한 척좀 해봐.” 

금자 씨의 말에 진우가 지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광주 톨게이트를 지나 터미널로 가는 길은 꽤나 복잡했다. 오랜만에 도시로 나온 금자 씨는 도로에 빽빽하게 들어찬 차와 복잡한 교통신호를 따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골에서는 운전을 곧잘 하는 할머니로 통했지만, 도시로 나오니 그저 빌빌거리며 운전하는 할머니에 불과했다. 금자 씨는 뒤차가 빵빵거릴 때마다 창문을 내리고 욕지거리를 해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뒤에서 보고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단지 운전대를 더욱 힘주어 잡을 뿐이었다. 

"어, 할머니 수아가 톡을 드디어 읽었어요. 잠깐만요. 전화해 볼게요."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진우가 흥분한 목소리로 보이스톡을 눌렀다. 

"아, 김수아~ 너 어디야?"

"뭐? 유스퀘어? 아 터미널 옆에 거기? 너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왜긴 왜야. 지금 금자 할머니랑 너 잡으러 가고 있다. 아 잠깐만 스피커폰으로 바꿀게. 니가 직접 말해."

진우는 핸드폰을 귀에서 때고 스피커폰으로 바꾼 후 말했다.

"할머니, 수아가 왜 왔냐고 난리예요."

"수아야, 지금 광주 터미널 근처냐?"

"에이씨, 할머니 왜 왔어요? 혹시 우리 아빠한테 다 말했어요?"

"늬 아빠? 니네 아빠는 걱정하지 말어. 내가 아주 엄포를 하고 왔으니까."

"할머니, 저 그러다 진짜 아빠한테 잡히면 죽어요."

"알아, 알아. 미안하다. 아빠가 너한테 얼씬도 못하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엄마가 너 걱정 많이 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날 걱정한다고요? 헐, 말도 안 돼. 내가 전화할 때 받지도 않았다고요."

"엄마 광주에 있는 거 알고 온 거 아니여?"

"광주에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디 있는지는 몰라서.... 일단 오긴 왔는데요...."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한 10분만 가면 도착해."

"에? 진짜요? 나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너 작년에는 순천 버스정류장에 있었잖어. 암튼 쫌만 기다려라. 곧 갈게. 어디 위험한데 가지 말고. 알았제?"

수아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수아야, 알았지? 기다려. 거기서 기다려야 된다."

"네....." 

수아의 작은 대답에 금자 씨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수아는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유스퀘어 광장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었다.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잔뜩 욕을 해주려고 벼르고 있었던 진우도 그런 수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금자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분식집으로 가서 떡볶이와 김밥을 사주었다. 금자 씨는 수아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쇼핑몰로 갔다. 조금 전까지도 침울해 보이던 수아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화장품 코너에서 여자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색깔의 틴트를 구경하고 있을 때 진우는 휴대폰 액세서리 코너를 얼쩡거렸다.

지아와 수아가 틴트를 골라 서로 발라보며 웃고 있을 때 먼발치에서부터 외국인 여자 한 명이 다가왔다. 여자의 얼굴을 본 수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수아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수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서 있었다. 여자는 그런 수아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손을 맞잡고 한동안 서서 울고 있었다. 6개월 만에 만난 엄마와 딸이었다. 




"할머니, 수아 안 데리고 가도 괜찮을까요?"

"응, 괜찮을 거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그래도요. 담임 쌤한테 수아 잡으러 간다고 말했는데….”

"학교에 내가 전화해 줄게. 할머니가 수아 엄마한테 이주민여성협회도 소개해 주고, 시민단체도 연결해 줬으니까 괜찮을 거시다. 수아 아빠랑 이혼하고 한국에 살지, 베트남으로 갈지 수아랑 함께 결정하것지? 어디에 살아도 수아랑 엄마가 함께 있으니까 괜찮을 거다. 엄마잖어." 

"수아 아빠는요? 괜찮을까요?"

"아따, 그 인간은 내가 경찰서에 콱 신고를 해부러야제. 요즘이 어느 세상인디 사람을 때려, 때리기를." 

"할머니도 조심하세요. 술만 마시면 무서운 사람이 되니까...."

"그래야제. 그리도 우리 동네에 진우 아빠가 있잖어. 괜찮을 거시다." 

"네. 저도 우리 아빠한테 말해놓을게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할머니."

"그래, 그래." 

지아와 금자 씨가 집에 돌아오니 저녁 10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하지만 지아도 금자 씨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지아는 수아와 수아 엄마가 만나 함께 울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밀라노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 자꾸 겹쳐졌다. 밀라노에서 살았던 나날들이 힘들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자신의 곁에서 모든 걸 견디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주던 엄마가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말들이 엄마의 애씀이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어느 장소가 아니라 바로, 엄마 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와 엄마의 손길, 엄마의 눈빛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한참 카페 일로 바쁠 시간이라 엄마에게 전화할 수도 없었다. 지아는 카톡 창을 열고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엄마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어 꾸욱 참았다. 


"엄마, 그동안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한국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나는 엄마랑 함께 살아야 할 것 같아. 엄마가 해주던 밥이 너무 먹고 싶거든. 엄마 올 때까지 잘 기다릴게. 그리고 힘들게 해서 미안해." 


한창 바빴던 점심시간이 지난 후 한숨 돌리며 의자에 앉아 딸이 보낸 메시지를 본 동주는 빙그레 웃음이 났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ㅎㅎㅎ 역시 우리 엄마야. 아~ 나도 우리 엄마 보고 싶다~' 

동주는 엄마, 금자 씨에게 영상통화를 하려다 한국 시간을 확인하고는 꾸욱 참았다. 벌써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주와 금자 씨는 모녀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시차를 확인하고, 서로를 배려하다가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나중으로 미뤄두기만 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서운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리움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금자 씨와 동주, 동주와 지아, 지아와 금자 씨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당연한 사람


당연한 사람의 건조한 말투와

당연한 사람의 투박한 손길과

당연한 사람의 무미한 눈빛에

갈증을 느끼며 애써 매달린다 

사랑을 달라고 온몸으로 운다

격렬히 반항하며 소리쳐 운다


건조한 말투는 당신의 인내

투박한 손길은 당신의 애씀

무미한 눈빛은 당신의 노력

당연하지 않은 당신의 자리

이것이 사랑임을 이제 알아 

후회와 반성으로 통곡한다


당신의 당연한 잔소리와

당신의 당연한 부지런과 

당신의 당연한 걸음걸음

당신의 모든 당연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음을

당신의 빈자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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