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집

말 줄여버린 마음 : 빈 말의 의미

by 담쟁이캘리





소리의 집

/ 담쟁이캘리




밤새 열어둔 창틈 사이로
소곤소곤 바람 불어오고
눈부신 햇살 감은 눈 위로
성가시게 아른거릴 때


슬금슬금 까치발로 걸어와
침대 맡에 둔 알람시계 숨 죽이고
둘둘 말린 이불 고이 펴 덮어주며
곤히 잠든 내 얼굴을 살필 때


눈 비비고 일어나
밤새 꾸던 꿈 깨기도 전에
고슬고슬 밥 냄새 코끝 간질이고
도마 위 썰어둔 야채들이, 송송
경쾌하게 노래 부를 때


온 집안 가득 채운 말없는 소리가
간밤 텅 빈 속 든든히 채워
잘 지은 밥만큼이나, 고슬고슬
되지도 질지도 않은 알맞은 마음이 되네


찬 속 뜨끈하게 녹여줄 온기로
보글보글 뭉근하게 끓어올라
쉬이 식지 않는 마음이 되네


그릇 위 수북하게,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 한 끼에
고요하던 마음이 갖은 울림으로
금세 소란스러운 소리의 집이 되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소리로 발화되지 않아도 함께 나눈 대화처럼 고스란히 온기가 전해지는 어떤 순간이 있다. 수 개의 단어로 갖가지 이유를 들어 전하는 말 대신, 넘치는 마음으로 채운 소란한 풍경이 울림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말 줄여버린 마음이 머문 자리를 살뜰한 챙김으로 그득히 채워, 소리 없는 마음의 언어로 나를 보살피느라 온 주변이 부산스러워질 때. 고요한 풍경에도 금세 소란스러운 소리의 집이 된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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