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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 May 07. 2024

내가 달려야만 하는 이유

Monologue 004

벌써 꽤 지난 일이지만, 트레드밀에서만 뛰어본 내가 도로 위에서 볕과 바람을 맞으며 10km를 달린 일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마라톤 대회도 친구 따라 접수했던 거였다. 처음엔 재밌게 갔다가 (운동이라면 늘 그랬듯) 적당히 못뛰고 와도 그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이 피곤한 성질머리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하며 러닝크루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회 닷새 전에 부랴부랴 크루에 가입하고, 첫 정기런에 나가고, 6km를 7:30 페이스로 뛰고 (너무 힘들었다), 사흘 뒤 대회에 나갔다.


이제와 밝히자면, 친구 따라 쉬지 않고 10km를 완주한 원동력은 순전히 ’낙오자로 놀림 받기 싫어서‘ 였다. (페이스메이커 해줘서 고마워) 찌르는 듯한 흉통과 뻐근한 아킬레스를 견디며 피니시 라인을 넘어서니 머리가 핑 돌고 사지가 찌릿했다. 어쩌면 짜릿이려나. 고작 6:30 페이스였지만 성취감이 컸다. 이래서 뛰는구나 싶기도 했다. 쿠션이라곤 하나 없는 러닝화를 바꾸고 싶어졌다.


어쨌거나 이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몸과 삶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조금 달라졌달까. 크루 정기런의 한강, 밤, 꽃 향기가 러닝이 좋아진 계기였다면, 대회에서 마주친 2만 명의 에너지와 피니시의 ’짜릿‘은 러닝에 반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좋아하는 게 생겨도 짧게 찍먹하다 그치는 인생에서 러닝은 언제까지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러닝화를 새로 샀기 때문에 더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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