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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태명이랄게 거의 없이 애기야 아가야 이렇게 불렀다던데, 요즘엔 다들 태명을 지어놓고 심지어 산후조리원에서도 태명으로 아가 엄마아빠를 지칭한다고 하니.. 계획을 계획하는 뼛속까지 j인 나로서는 임신을 생각할 때부터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ㄲ, ㄸ, ㅃ, ㅆ, ㅉ와 같은 된소리나 ㅍ, ㅋ, ㅊ, ㅌ와 같은 거센소리가 들어간 태명으로 불러주면 태아의 두뇌에 좋은 자극이 된다는 말이 있다. +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잘 붙어있으라는 뜻의 딱풀이, 찰떡이, 꼭꼭이, 건강하라는 뜻의 튼튼이, 쑥쑥이, 단어 그 자체에서 의미가 느껴지는 뜬금이, 깜짝이, 축복이, 복덩이, 소망이 등으로 많이들 짓는다. 금귤이, 자두, 수박이, 딸기 등 임신 초기에 임산부가 입덧을 하는 와중에도 잘 들어가는 과일로 짓는 경우도 있고, 아이가 생긴 계절이나 여행지..로도 많이 짓는다고.
캐나다에 거주 중인 출산 선배들을 보면 캐나다와 관련된 태명도 많이 짓는다. 나의 현재 유일한 임산부 친구의 경우에는 가족들과 오로라를 보며 아이를 점지해달라고 기도했던 추억으로 태명을 '오로라'라 지었다고 한다. 귀여워. 블로그 이웃인 언니의 아이는 '로키'가 태명이었고 어느덧 조만간 그 로키가 무려 세 살이 된다. 나도 처음에는 캐나다 하면 떠오르는 단풍나무 때문에 '단풍이'라는 태명도 귀엽다고 생각해 리스트에 올려놨었는데, 아쉽게도 캘거리가 있는 서부에는 빨간 단풍나무가 없네..? 아쉽지만 선정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영어권 국가 임산부들의 커뮤니티를 보면 은근히 여기서도 태아 때부터 Nickname을 지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신 된소리나 거센소리 같은 과학적인 뒷받침을 근거로 짓지는 않고, 애기들에게 붙일 법한 귀여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Jelly Bean, Baby Bean, Peanut, Bump, Spud, Boo, Donut, Nugget, Pumpkin, Junior, Marshmallow 등. 적다 보니 음식이 많네. 나도 이웃들이나 코워커들에게 말해줬을 때 다들 쉽게 불러줄 수 있게끔 영어식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왜인지 입에 딱 붙지가 않았다.
내 메모장에 남아있는 태명 리스트를 오피셜하게 옮겨놔 볼까 한다.
- 꾸꾸 (Coucou): 불어로 뻐꾸기 우는 소리. 프랑스에서는 친한 친구를 부를 때 꾸꾸~하고 부른다. 사실 내 마음속 1순위였다. 나중에 인형에라도 꼭 붙여주고 싶은 이름.
- 룰루 (Lulu): 룰루랄라 신나게 살자는 의미의 룰루도 있고, 태교 여행으로 하와이 다녀오고 싶다는 열망에서 호놀룰루의 룰루.. 슬프네.
- 호수 (Hosoo): 임신 초기에 많이 보고 다닌 알버타의 아름다운 호수들처럼 오래오래 사랑받고 아름답게 자라라는 의미.
- 폼폼 (Pompom): 치어리더 엄마처럼 밝고 명랑하게 자라라는 의미.
- 콩떡 혹은 꿀떡: 내가 떡을 좋아하니까! 듣기에도 귀여우니까!
- 무무 (Moo moo): 소띠해에 태어날 아기니까 소 울음소리 + 무탈하게 무럭무럭 자라라는 뜻.
- 단풍 (Danpoong): 단풍국에서 태어날 아기니까. 하지만 캘거리엔 빨간 단풍나무가 없다.
- 젤리 (Jelly): 캐나다 와서 젤리를 엄청 먹었다. 그런데 막상 임신하고 나니 안 먹게 되어 탈락.
- 심쿵 (Shimkoong):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심쿵하니까! 하지만 발음이 어렵고 입에 붙지 않는다.
- 꿀잼 (Cool Gem): 꿀잼 라이프 살아가자는 의미. 영어로 Cool Gem이라 하면 멋진 보석이라는 뜻도 된다.
남들이 보면 '와, 무슨 이렇게까지..'라고 하겠지만, 네.. 저는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입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 재스퍼 여행을 다녀온 다음이었을 것이다. 잠들기 전, 남편과 둘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위의 리스트를 하나하나 읊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후보가 꿀잼이와 무무였다. 무무가 더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는데, 꿀잼이가 더 귀여웠다.. 그래서 하루 정도 더 고민하다가 꿀잼이로 결정! 꿀잼이가 꿀쨈이가 되고, 쿨잼이가 되고, 귤쨈이가 되고, 애칭이 애칭을 낳는 신기한 마술을 거치며 매일매일 행복하게 불러주고 있다. 우리 둘만이 아닌 양가 부모님이나 주변 지인들이 꿀잼이라고 불러주는 걸 듣기만 해도 너무 좋다. 다들 꿀잼이의 꿀잼라이프를 빌어주는 것만 같아! 꿀잼아 건강하고 재미나게 꿀잼라이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