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맞아? 음식의 나비효과 그리고 계엄령과 파업과 다래끼 3종세트
# "이정도 즈음이야."에서 시작된 티끌모아 태산같은 장바구니
이제 정말 코 앞으로 다가온 여행. 멀게만 느껴지던 12월이 벌써 현실이 되었다. 준비를 하면서도 실감나지 않던 결혼식. 감사하게도 나보다 지인들이 더 기대하고 더 기다려 준 우리 결혼식도 4일이 채 남지 않았다. 얼떨떨 하던, 아니 어쩌면 바쁘다는 이유로 즐기기보단 하나하나 퀘스트를 달성하는 데 조금 더 초점이 맞춰졌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들지만. 아무렴, 지나간 시간들 덕분에 오늘 이 시간까지 하나하나 준비가 가능했던 터이니, 앞으로의 시간은 즐거움으로 채워봐야지 하는 생각도 드는 최근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 후배인 R을 만나 서로의 근황을 공유했다. 결혼 축하만으로도 충분한데 언제나 그랬듯 R은 생일 선물에, 지난 가을 반질반질한 밤을 손수 하나하나 까서 만든 보니밤과, 유럽 여행에서 구한 크리스마스 에디션 티까지 양손 가득 무겁게도 챙겨 나타났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내게 동생이지만 동생같지 않은, 때로는 친구같고 때론 언니같고, 종종 엄마의 역할을 하라고 보내준 귀인처럼 느껴진다. 아무쪼록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밥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연말을 맞아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 주고 싶은 마음에 서점엘 들러 예쁘게 생긴 카드를 골라 아늑한 카페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손편지를 쓰기 시작한 나와 곰곰히 무언갈 떠올리며 때때로 심각해 보이던 R. 그런 그녀에게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며 괜찮냐고 물었더니 꽤나 진지하고 걱정가득한 얼굴로 골똘히 나의 여행 준비물을 떠올리고 있었댔다. <설사약, 김가루, 우비, 물티슈, 소독티슈, 트리트먼트 등등등>. 세상에 이런 친구가 또 있을까 싶으면서 진지한 모습마저 귀여워 웃어대는 나완 달리, 마치 '나 정말 진지해요,'라는 걸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팔짱을 끼고 몸이 반즈음 기울어진 채 날 향해 있었다. 나보다 먼저 오지에 다녀온 그녀는 오지 유경험자로, 화장실과 물이 부족한 곳에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인지라 차마 떠올리지도 못했던 아이템들을 하나둘 조목조목 설명 해 주며 나의 캐리어 지참 목록에 하나하나 리스트업 해 주었다.
"에이, 다 사람사는 곳인데 괜찮아."라고 시작했던 나는 하나 둘 그녀의 설득에 귀기울여가기 시작했고, 위장이 다소 예민한 호적동반자 D를 생각해서라도 위생에 관련된 것들을 챙겨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점차 머릿속이 커져만갔다. 아무렴 9월 유럽을 다녀온 그녀에겐 이미 수많은 상비약들이 먼저 구비되어 있었고 계획적인 그녀 답게 아주 꼼꼼하게도 종류별로 약들과 준비물들이 알뜰살뜰 있었다. "언니, 안되겠어. 내가 우리집에 있는거 줄테니 그거 챙겨가요. 가면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사막 한가운데서 우리 언니 아프기라도 해봐. 몽골에서는 아파서 병원이라도 갈려고 치면 하루를 걸려 나가야 하는 수가 있었다구요. 그르니까 언니, 내 말 듣고 챙겨가."라며 정겨운 엄마모드가 되어 알뜰살뜰 생각해주던 R.
그런 그녀를 옆에 두고 있자니 고될법도 할만한 서울살이에 엄마와도 같은 존재를 누군가가 내게 선물로 놓아준건가 싶었다. 이제서야 글로나마 표현하는 이야기지만, R과 인연을 유지하면서 이 친구는 온 마음을 다해 가족처럼 귀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고, 여전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일을 하느라 집에 없어도 우리집을 지나가며 고향에서 보내준 과일들이라며 이런 저런 식재료를 늘상 문앞에 두고 가던 친구. 그런 그녀 옆에서 나는 꿈쩍도 안할 것 같았지만 꿈틀꿈틀 그녀의 조언에 따라 대형 마트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그녀의 리듬에 맞춰 물만 부으면 뚝딱이란 말에 평소엔 먹지도 않던 국종류도 사 보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려 보겠다며 카레 가루를 구매하고 라면은 자그마치 야식일거란 핑계로 세박스나 구매 해 버렸다.
샴푸린스마저 현지에 가면 다-있겠거니 하며, 없으면 없는대로 레게 머리로 지내면 되겠거니 했지만 무계획자의 계획을 라면 3박스로 채워준 그녀의 영향력에 꽤나 감동을 했더랬다. 카트 한가득 먹을거릴 사고 R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온 날, 장본 물건을 보더니 "H야, 거기도 다-사람 사는 동네다. 가면 다-있다."라며 마치 이건 불과 3시간 전 R앞에서의 내 모습을 보는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 그래도 사막 한 가운데서 차 멈추면 어떡해? 물은? 배고프면 야식으로 두개씩 먹으면 되지 않을까?"라며 호적동반자 D를 설득하기 시작했지만 한번 결정한 일에는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지는 D는 급기야 날 부르며 이리 와서 앉아보라고 안내했다. 스마트폰을 쥔 그의 손에는 나미비아 여행을 하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사막 한 가운데 슈퍼가 있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어 라고 생각한 나의 무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우리나라보다 더 큰 휴게소 대형 마트가 떠억 하니 화면속에 담겨있었다.
"아... 무지가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편견이 가득한 나였네. 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순간이었다. '아프리카'하면 막연하게 미디어 속 모습만 보고 판단하려 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달까. 이건 마치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외국인이 60년대 한국의 모습을 떠올린다거나, 혹은 전쟁으로 얼룩진 나라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고 해야하나 싶었다. 아무쪼록 라면 3박스 헤프닝은 18개를 가져갈 뻔 했던걸 10개로 줄이고,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무지로 얼룩진 나미비아에 대한 내 이야길 전해듣고 부랴부랴 몽골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각족 상비약과 준비물을 떠올려준 동생 R에 대한 고마움이 고루 섞여 차곡차곡 여행가방에 담겼다.
그렇게 한바탕 장보기와 나미비아 실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서 그제야 외부와 내부의 소리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점을 찾은 나. 계획형인 듯 무계획형인 나의 중간점이 이제야 맞춰졌다. 넘치는 듯 아주 부족하게. 딱 그 어딘가에 있는 내 모습.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나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 (ps. 메타인지력 향상 중)
# 계엄령에 철도 파업에, 다래끼는 왠말이죠?
지난 12월 3일. 생일이자 전국을 들썩인 뉴스 보도가 발표된 날이었다. 12월이 되기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이번 생일만큼은 무언갈 하기보단 가급적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런 날 보며 '과연, 네가?'라는 다수 지인들의 공통 반응은 지난 세월동안 스스로 얼마나 사부작 사부작 숱한 일들을 해 온건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무렴, 12월 3일은 지난 세월을 손꼽아 보면 최초로 하루의 80%를 조용히 보낸 날이다. 조용하게 보냈다기엔 13시간을 잠으로 채워버린 날이었달까. 허리가 뻐근할 때 즈음 게슴츠레 눈을 떠 문자함을 열어보니 생일축하 문자와 광고 문자와 온갖 메시지들이 섞여 얼른 읽어야만 할것같은 문자도 간혹 눈에 띄었다. "뭐지..."하고 열었더니 계엄령 발표라는 문자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을 들여다 봤더니 뉴스 속보가 나고 난리였던 거다. "응....? 무슨 말이지...무슨 일이지..."하고 잠결에 여전히 사태 파악을 못하다 뒤늦게서야 이해하고 나니, 역사에 기록될 법한 날로 기억된 12월 3일이었다.
어쩌다 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12월 첫 시작은 잠깐의 설렘을 느끼기도 전에 걱정이 가득한 한 주가 되어버렸다. 계엄령에 연이어 열차 파업으로 운행하던 열차의 시간이 변경되었다는 소식도 이어 뉴스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결혼 축하를 위해 먼걸음을 해 주는 친구들 뿐 아니라 서울에서 울산까지 결혼식을 위해 한달 전부터 기차표를 예매 해 두었던 지인들의 기차가 운행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환불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러 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파업을 했을까 하는 마음도 들면서 또 한편으론 울산까지 먼 걸음을 하기위해 오래전부터 12월을 함께 기다려준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게 사실이었다. 아무쪼록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다행히 발빠른 지인들의 정보력 덕에 교통과 숙박에 대한 예약건은 순간의 헤프닝으로 마무리 되었다.
생각지 못했던 연이은 일들이 일어나며 결혼식 마지막까지 컨디션 관리 잘 하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던 어른들의 말이 그제서야 들리기 시작했다. "아, 세상 일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거구나."라며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내게도 파업 소식이 들려왔다. 나의 눈 두덩이. 결혼식을 나흘 앞둔 어느 날, 출근길에 유난히 눈을 깜빡일 때 마다 눈이 따끔거리는 느낌과 이물감이 든 것이다. "어.... 느낌이 안좋은데? 다래끼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평소 병원을 잘 찾지 않음에도 이번엔 직감적으로 약국이라도 꼭 가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점심에 동료 J와 함께 밥을 먹고 약국엘 들러 다래끼 약과 안약을 사다 부지런히도 복용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직감적으로 다시 한 번 눈이 더 심각해 진 느낌이 들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바로 병원엘 갔더니 아뿔싸. 직감이 맞았다. 속다래끼가 생겨 무방비 상태로 방문했던 병원에서 따끔한 주사 바늘로 눈을 찔러 처치를 받게 된 것이다.
"와... 평생을 다래끼가 난 적이 없는데 이런 다래끼가 다 나보네. 것도 결혼식 직전에 코앞엘 두고 하하."라며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크게 상심할 시간도 여유도 에너지도 없었던게 사실.
"아이고, 나라도 혼란스러운데 열차도 파업을 하고, 내 눈두덩이도 파업을 하네."라는 생각과 함께 어이없게도 나의 두 엄지손가락은 열심히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동그란안대 #안대 를 열심히 검색 중이었다. 말이 씨가 된 순간. 다래끼가 난 첫날 일을 하다 동료 Z에게 "아.. 나 다래끼 난 채로 그냥 입장할까봐, 안대쓰고 가면 되겠지뭨ㅋㅋㅋㅋ"라고 우스갯 소리로 이야길 했는데 정말로 바로 다음 날 눈두덩이가 꿀을 훔쳐먹다 벌에 쏘인 곰돌이 마냥 둥글게 부어있었다. OMG. 그래서 결국 나랏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내 눈두덩이도 말을 들을쏘냐 싶어 빠른 해결책으로 낫지 않은 최악의 순간을 위해 <plan B. 안대 사기>를 내심 리스트에 넣은 것이다.
삶이란 살아보니 즐겁다. 어려서라면 발을 동동 구르고 어쩌면 좋을까 하고 내심 마음을 졸였을 터인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계엄령과 열차 파업으로 인한 기차표 줄줄이 취소와 매진건을 떠올려보면 다래끼 하나 정도야,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이상 감사하게 생각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래끼가 난 사실이 감사하진 않다만 그럼에도 건강한 상황에 감사하고, 감사할 수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곁에 든든하게 머물러 준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할 일이구나 싶다. 결혼을 계기로 주변에 좋은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그보다도 받는 마음만큼 나는 그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이따금씩 든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라 하던데 계속해서 배우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머물고싶다. 나 자신에게도 지금 이 글을 쓰는 내내 거실 쇼파베드에서 새하얀 극세사 이불을 덮고 꿈나라로 떠나신 호적동반자 D에게도, 가족들과 지인들에게도 모두.
이제 다음주면 <OUR DAYS in 나미비아>의 진저한 나미비아 일상이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