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 여전히 미니멀리스트 수준의 준비물
# D-10 끊임없이 바쁘게 흘러갔지만, 여전히 여유로운 우리의 마음
이젠 열흘남짓 남은 아프리카행. 이사에 인테리어에, 갑자기 바빠진 회사일까지. 유독 분주하게 흐르던 한 해를 돌아보며 어쩌면 1월 1일이 아닌 12월이 우리에겐 새 출발과 새해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일 땐 몰랐지만 나와 네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겨울에 태어난 우리 둘이 각자의 탄생일에 더불어 둘이 하나가 되는 결혼을 12월에 하게 되니 연말은 풍요로운 이벤트로 가득해 진 느낌마저 드는 순간이다.
출국 10일을 남겨둔 우리에겐 여전히 왕복 비행기표와, 나미비아에서부터 키를 쥐고 달리게 될 튼튼한 캠핑용 차량 한대, 그리고 때때로 여독을 풀어 줄 롯지 예약 한두건 정도가 전부이다. 결혼에 이사에 각자의 사업과 일로 바빴던 우리는 비자마저 현지에 도착해 해결하기로 했기에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큰일들은 최대한 마무리를 해 둔 상태.
이런 우릴 보며 여전히 "어쩌려고 그러느냐.", "지금이라도 비자를 받아라." 등등 많은 우려섞인 이야기들도 있지만, 되려 당사자들은 우린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여유롭기만 하다. 물론, 현지에 가서 무언가 일이 터지면 등에 땀이 주르르르륵 나며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도 있을 터. 그럼에도 의연하게, 한편으론 태연한 이유는 짧지만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언제나 일이 없는 순간은 없었을 뿐더러 해결하는 과정조차 지나고 나면 한 편의 추억이고, 한 편의 배움이라는 생각이 더 크기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싶다.
지금껏도 그랬고, 앞으로도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게될 수많은 순간들이 있겠지만, 살아보니 계획대로 되는 것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데서 일이 꼬이기도 한 경우가 있었다. 때론 주저 앉을법한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고 돌파구를 찾아내는 그 과정에서 얻는 희안한 쾌감이 또 있다. 그래서인지 모험을 주저않는 호적동반자 D와 다소 겁은 많지만 호기심이 많은 나는, 앞으로의 결혼생활 뿐 아니라 여행마저 모두 우리에겐 모험이자 배움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미리부터 우리는 아주 많이 다툴거야 라는걸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여행. 그래서인지 대단한 기대를 가지기 보다 '여행은 한 번 살아보는거야.'라는 문구처럼 우린 정말 지지고 볶고 다투기도 하며 사랑도 나누며 아프리카에서의 '여행' 아닌 '일상'을 살아보러 가는 기분이다.
# 준비 했냐고는 묻지도 말아
그러고보니 우리는 서로에게 "준비 다 했어?"라는 질문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워낙 일처리가 빠른 호적동반자 D는 하루 전날도 순식간에 여행가방을 휘리릭 챙겨 둘거란걸 믿기에. 반대로 나는 손이 많이 가는 편이긴 하다만 그럼에도 그런 날 다그치거나 무어라 한 적은 없다. 물론 지난 전적을 돌아보면 "H야, 아이고 우리 H가 또 뭘 그렇게 챙기는지 그러다 집을 가져가겠네."라며 말은 할 것 같다.
그의 그런 반응을 알면서도 열흘 남은 여행가방을 챙기며 가장 먼저 챙겨나온건, 나의 그림도구들과 무려 2008년에 꼬깃꼬깃 용돈을 모아 구입한 연식이 꽤나 오래된 나의 카메라. 심지어 배터리도 없다. 그래서 해야할 일이 하나가 늘었다면, 그건 바로 배터리를 추가하는 일. 기기는 최신식이 좋다지만, 그 부분은 기기를 사랑하고 잘 다룰 줄 아는 H에게 양보하고 난 언제나처럼 좋게말해 아날로그와, 빈티지를 선호하는걸로.
이토록 취향이 다르다보니, 서로의 여행가방을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있을 법 한데, 한번도 궁금해해본적 없는 그의 여행가방을 (만일 그가 여행 D-3까지 가방을 챙겨둔다는 전제하에) 구경을 해 봐야겠다. 아무쪼록 우리의 여행은 아주 한가로운 마음상태와 매우 바쁜 외부적 업무상태의 균형 속에서 나름 적당하게 적절하게 기본만 충실한 채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 다음주 언저리엔 공항에서 이 글을 쓰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