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단계
# 장모님, 코트 대신 드론이요
결혼을 앞두고, 집 계약과 인테리어, 가전 등등 챙겨야 할 일들이 참 많다. 각자 일에 바쁜 우리는 바쁨을 핑계삼아 가장 필요한 것만 우선 구입하기로 하고 야금야금 겨울잠 준비를 하는 다람쥐들 마냥 하나 둘 시간이 날때마다 가전과 가구들을 하나하나 사들였다. 어느정도 준비가 되어갈 때 즈음, 엄마가 ‘제대로 된’ 코트를 꼭 하나씩 사주고 싶다며 뭉칫돈을 주셨다. 옷이라면 질릴 만큼 입어 본 우리 둘에게 ‘제대로 된 코트’란 큰 의미가 없었음에도, 가족이 된 두 자녀들을 위해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었던 엄마는 아직도 17번째 통화에서 코트를 샀냐고 물어보시곤 한다.
왠만하면 엄마 말을 들을 법도 한데, 우리도 참 어지간하게 말을 듣지 않았구나 싶은건 이미 가진 코트들도 처치 곤란인지라 둘다 코트를 얼마나 잘 입고다닐 지에 대한 의문이 몽글몽글 솟았기 때문인 걸로. 아무쪼록 엄마의 코트 사랑이 이런저런 바쁜 일과로 인해 잠잠해 져 갈 때 즈음, D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싶어하던 카메라 기종이 있단 게 떠올랐다. 사진촬영을 자주 하는 D를 위해 넌지시 카메라를 사줘도 괜찮겠단 생각을 할 때 즈음, 그의 오랜 지인으로부터 아프리카 여행에 필요한 카메라를 이미 빌려왔다며 수차례 카메라도 필요없다는 이야길 전해들었다. 그렇게 Plan A 무산.
”코트도 안해, 카메라도 안해, 그럼 대체 뭘 사야하는거야.“하며 곰곰히 고민을 이어가던 어느 날, 갑자기 카메라는 빌렸으니 드론을 살까 하며 넌지시 이야길 꺼내던 D였다. “드론? 어디서 날리게? 나쁘진 않은데 못날리는 곳도 많을거야. 다 알아봤어?“하며 몇가지 질문을 이어갔다. 정말 드론을 사는게 맞을까? 하는 생각과 내심 ’코트보다 더 안쓸 것 같은게 드론인데…허허‘라는 생각에 그러려니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D의 이야길 들었다.
이 즈음 되니 결혼은 양가 부모님들 사이에서의 조율이 아니라, 서로를 꽤나 배려하는 사랑하는 나의 엄마와 호적동반자 D 둘 사이의 조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코트를 사주고 싶다는 엄마와 드론을 사겠다는 사위. 이 두사람을 어찌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결국 솔직하게 전하기로 하고 “엄마, D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어쩌고저쩌고 카메라는 어쩌고저쩌고, 결론은 드론을 사주면 코트보다 나을 것 같아!”라며 전화기 너머로 전했다. 짧은 순간에도 과연 엄마의 반응은 어떨까 하고 잠시 기다리기 무섭게 왠걸 “엄마야 ㅋㅋㅋㅋㅋ 드론을 가지고 싶다고 하더나, 그래 D가 갖고싶단걸로 사주자.”라며 웃던 엄마. 이 즈음이면 내가 딸인지 그가 아들인지 모를만큼 흔쾌히 말하던 엄마를 보며 사알-짝 고개를 갸우뚱 했다. 구구절절 설명없이 그가 갖고 싶어하는게 드론이라고 말할걸 그랬나 싶었던 순간.
그렇게 엄마와의 전화통화가 끝나고 드론이 가지고 싶다던 D에게 되려 아들에게 설득을 하는 엄마처럼 이야길 한건 정작 엄마가 아닌 나였다. “D야, 드론이 몇번 사용될 것 같아? 그거 법적으로 못날리는 곳도 되게 많을거야, 사도 못날릴 수도 있는데 아프리카에서 촬영도 가능하대?”라며 드론 하나를 사겠다는데 유난히도 유난을 펼친 건 나였던 거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처남과 번갈아가며 드론과 액션캠인지 무엇인지를 서로 공유해가며 사용할거라며 이미 나도 모르게 처남과 이미 카톡으로 드론을 사겠다는 이야길 나누며 설레하는 D에게 찬물을 끼얹은 느낌이었다. 자라면서 부모님께 늘 감사했던 부분이 무얼하건 ‘no’없이 무엇이든 묻지않고 하고싶은대로 하게 해 주신 부분이었는데 반대로 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 그런 날 보며 D는 뾰루퉁하니, 급기야 사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아주 잠깐 결혼을 하면 큰 아들이 생긴 것 같다는데 지금 이런 기분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론 내가 원하는 걸 사라고 해 주는 그와는 달리 나는 왜 그랬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더불어 들었다. 그렇게 드론사건 이후, 배운 건 상대가 좋아하는 걸 존중해주는 것도 사랑의 표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나를 더 배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D의 처남이자 나의 막내동생인 J에게 전활걸어 “J야, D가 갖고싶다는 드론이 뭔지 좀 알려줄래?“라며 전화기 너머 아군에게 SOS이자 미션임무 수행을 건넸다. 고마운 나의 아군.
# 드론을 구입하겠다는 큰아들과, 구우욷-이 커피를 제손으로 볶아보겠다는 모글리의 꿈
나미비아로 신혼여행을 가면 동물들을 보겠거니 하고 상상이 될 듯 되지 않는 우리의 신혼모험이 어느덧 한두어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하반기가 되어 한층 바빠진 회사 업무 하랴, 신혼집 인테리어 하랴 챙겨야 할 일들이 한두개가 아니었던 터라, 어쩌면 신혼여행은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조금 벗어나 조금은 느슨하게 흘러가도록 두려했던게 사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만 계획이 없는거였다. D는 구글 지도에 온갖 루트와 장소를 아주 계획적으로 짜고 있었다.)
아무쪼록 신혼여행 자체를 D가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가 하자는 대로 따라 가려 마음먹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꼭 해보고 싶었던 건 있었다. 그곳의 원주민들이 사는 모습을 경험 해 보고 싶었다는 부분. 내겐 그게 전부였다.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아도 있으면 입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옷이 필요하다면 현지 시장에서 끈달린 원피스나 하나 사다가 입고 다니면 되지.’라며 평온하면서도 무언가 부족한 듯한 여행에서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얻어보고싶었다.
그러던 중,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는 스타벅스 지점을 방문한 날 새로운 위시 리스트가 떠올랐다. 커피를 그리도 좋아하는 형부의 원두 구매 부탁을 하며 원두 봉투에 붙은 ’Rwanda’를 보니 무언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 커피콩이면 아프리카가 그렇게 유명한데 왜 이걸 생각 못했지? 가서 캠핑하면서 원두나 볶아봐야겠다. 남는게 시간일텐데.”라며. 이런 날 보며 D의 반응은 안봐도 뻔했다. “아이고 H야, 다- 내려서 파는데 굳이 그걸 볶겠다니 하하하 하고싶은대로 하세요오.”라며 이야길 했을 D. 극한의 효율을 중시하는 그는 신혼집도 온통 자동화를 꿈꾸고, 가-능한 시간대비 효율이 좋은 일들을 선호하는 친구다. 그와는 정 반대로 세상이 아무리 자동화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손과 품이 많이 가고 시간 소모가 되는 아주 느린 아날로그 형태를 애써 추구하는 나.
그렇다보니 우린 서로가 맞춰가는데만 3년이 걸렸고, 잠시 떨어져 지내며 각자 온전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는데만 6개월, 그리고 다시 만나 3년의 알아감의 시간 끝에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서로 알아갈 점이 많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친구같으면서도 서로가 삶의 기둥처럼, 때론 멘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농익은 우리 사이가 꽤나 마음에 든다는 점이다. 6년전 우리는 풋풋한 풋사과였다면 지금의 우리는 가을철 수확을 앞둔 잘 익은 사과의 시기를 지내고 있다고나 할까. 잘 익은 사과는 언젠간 코끝시린 늦가을무렵 시나몬 파우더가 솔솔 뿌려진 따끈따끈 먹음직스러운 사과파이가 될 수도, 녹진한 향을 진득하게 풍기는 사과잼이 될 수도, 혹은 그 자체로 좋은 과일로 머무르겠지. 그리고 언젠간 또 세상에 씨앗을 남기고 새로운 사과 나무를 피우겠지. 우리의 삶도 그리 되기를 바라며, 드론과 커피콩의 여행. 다른 듯 같은 우리 여행 또한 따로 또 같이 온전히 즐겁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