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이 항공권에 캠핑용 자동차가 전부라고?
# 나미비아로 가는 건 좋은데
"그래서 뭘 챙겨가야할까?"하고 기웃기웃 정보들을 찾아봤다. '나미비아 여행', '나미비아 신혼여행', '아프리카 신혼여행' 등등등 수많은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해가며 아프리카 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길 며칠. 한동안 항공권이며 숙박은 어떻게 할 것인지 기웃기웃 찾아보니 어라, 생각보다 나미비아에 대한 정보는 꽤 많지 않단걸 경험했다. 물론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는 생각보단 많지 않았던 현실.
"그래서 우리 뭘 챙겨가야하지?" 어쩌면 결혼식을 앞두고, 인테리어에 이사까지 앞둔터라 아프리카는 제2의 결혼식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결혼식은 수십만 어쩌면 수천수백만 인구가 축적해온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문가분들의 진두지휘 아래 척척척 선택만 하면 되는 일을, 나미비아로 떠나는 신혼모험은 하나하나 우리만의 지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내야 하는 데이터 축적의 선두주자에 선 느낌이었달까. 이정도면 나미비아 신혼여행이라기 보단 나미비아 신혼여행을 위한 여행사 사전 투어 느낌이 들기도 했던건 사실.
아무쪼록 이걸할까 저걸할까 수도없는 고민 끝에 결론은 '나답게'로 귀결되었다.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교통 편만 있다면, 잘 곳만 있다면 무언들 그곳도 사람사는 동네일터인데 '나머지는 일단 가서 해결해보자!'라는 결론과 함께. 드넓은 자연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동반자 D는 평소에도 캠핑을 즐겨했던 시절이 있었던 터라, 그런 그와 함께 떠나는 캠핑은 그 곳이 설령 흙바닥이어도 좋을 것 같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온전한 우리만의 시간과,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뛰어노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행복해 할 D를 곁에 두는 것 만으로도 숨가쁘게 살아가던 서울 도심 속에서의 삶이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신혼모험을 2달 가량 앞둔 지금 우리 손에 쥐어 쥔 건 '평균 20시간의, (무려) 경유 항공권'과 어디로든 데려가 줄 바퀴 네개 달린 캠핑용 자동차가 전부.
# 곧 만나, Namibia
나미비아로 향하는 길은 아주 많지만, 우리가 선택한 길은 '카타르'도 아닌, '남아공'도 아닌 '에티오피아'.
커피의 산지로만 익히 듣던 에티오피아에 들렀다 나미비아로 향하기로 했다.
출국 루트 (경유 1회, 총 19시간 50분 소요)
서울(ICN) - 아디스아바바(ADD), 에티오피아 - 빈트후크(WDH), 나미비아
귀국 루트 (경유 2회, 총 21시간 20분 소요)
리빙스톤(LVI), 잠비아 - 루사카(LUN), 잠비아 - 아디스아바바(ADD), 에티오피아 - 서울(ICN)
심지어 서울에서 울산까지 내려가 결혼식을 하게 된 D와 나는 여행을 가기도 전인 결혼식 부터가 어쩌다 보니 여행루트에 포함된 아주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잘 할 수 있겠지?
# D와 나의 버킷리스트
"H야 빨리와봐!"라는 다급한 부름에 작은 방으로 달려갔더니, TV 모니터를 켜 두고 무언갈 열심히 보던 D. "이게 뭐야? 뭘 보는거야?"라는 물음에 진귀한 무언가라도 발견했다는 듯 해맑은 얼굴로 "여기 봐바! 여기 동물들좀 봐바 물먹는 것 좀 봐바."라던 그. 깜짝 놀라서 달려가서 마주한 장면이 가젤과 얼룩말이 실시간으로 물 마시는 장면이라니. 헛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D에게 물었다. "이런게 그렇게 좋아?"라고. D는 동물들이 갇혀있는게 정말 싫다고 말한다. 다 말라 보이는 식물이 자라있는 황량한 황무지 속, 오아시스 마냥 놓인 물웅덩이 주변에 모여든 동물들을 지구반대편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며 그렇게 행복하다고 했다. 코뿔소가 너무 귀엽다며 꼭 한번은 직접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의 행복이란 이런거구나. 대자연을 좋아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순수하고 생각 만큼이나 맑은 친구였다. 동물은 동물원에 많은데 라는 짧은 생각을 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그의 천진난만함. 아무쪼록, 그는 동물을 보며 허허벌판 대자연을 달리는게 우리의 신혼모험에서의 행복 포인트인 듯 했다.
반면, '무얼 챙겨가야하나' 하는 고민과 함께 황토를 닮은 주황 흙이 가득한 나미비아라는 곳에서의 상상되지 않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하며 일상을 흘려 보냈다. 준비물을 아무리 떠올려도 정리가 되지 않은 게 어언 며칠, 아니 몇달째. 환전도, 비자도, 상비약도 모두 중요하겠지만 다른 모든 걸 뒤로하고 '신라면이랑 그림 도구들, iPad'를 '필수준비 품목'으로 머릿 속에 저장 해 두었다.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각 나라에서의 그림도구를 하나씩 사모으는데, 어떨 땐 펜이 되기도, 어떨 땐 휴대용 고체물감이었기도 했고 또 한번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 엽서 꾸러미 이기도 했다.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림 그리는 과정 자체가 그리도 좋다. 그래서 결론은 나의 준비물은 종이와 필기도구, 그림도구 세트 정도.
내가 그리는 D와 나의 나미비아 여행의 모습은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축복같은 결혼식을 끝내고 '아! 우리 해냈다.'라는 성취감과 함께 빌린 한복 드레스 등등 결혼식 뒷마무리를 호다닥 해 두고 또다시 여행길에 오르겠지. 그런 다음 울산에서 서울로 돌아와 한 숨 돌리는가 싶다가 챙겨둔 캐리어와 가방을 들춰메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우리의 모습. 집 문을 나서는 순간 시작될 우리의 진짜 여행의 첫 장면. 설레면서도 언제 도착하나 출발 전 한숨 한 번 깊게 쉬고 동물들 만나러, 그리고 새로운 땅에 진정한 휴식을 찾으러 가게 되겠지!
재미있는 여행이 되기를
그리고
출발 전 최소한의 준비는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