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파업 단상] 모든 파업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환상, 세뇌
의협과 정부의 대립이 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파업이라고 하니 노무사로서 관심이 많이 가지만, 사안 중 어느 것 하나 쉽고 간단한 것이 없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그래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 낮은 수가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꺼내지 않으려 한다. 혹여나 저런 의견이 궁금해서 들어온 분들께는 미리 죄송하다. 원래 잘 모르는 분야에서는 입 다물고 있어야지 잘못했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 수가 있다.
그래서 의사 파업 관련해서는 당초부터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서론을 할애하며 키보드를 두들기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자꾸만 이번 파업과 관련해서 심기를 거스르는 말 한마디가 보여서다. 다름 아닌 "결국 이거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말 때문.
의사들의 파업에 밥그릇 이야기를 꺼내는 건 사실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 아무리 정당한 파업이어도 이를 밥그릇 싸움 논쟁으로 몰아붙이는 시도는 아주 예전부터 존재했다. 이를테면 12년도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당시에도 몇몇 언론들과 정부 여당은 정치 파업의 탈을 쓴 밥그릇 투쟁이라 공격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밥그릇 싸움이라는 저네들의 공격에 노동자들도 덩달아서 프레임에 휘말리는 모습이다. 작금의 의사 파업만 해도 그렇다. 결국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마타도어에 우리 의사 선생님들은 연신 식은땀 닦아내며 '밥그릇 싸움 아니다' '공공의료를 위한 것일 뿐 밥그릇 싸움과 무관하다'며 하얀 얼굴들을 붉힌다.
단언컨대 모든 파업은 밥그릇 싸움이다. 밥그릇 싸움이 아닌 파업은 뼈 있는 순살치킨과 비슷한 말이다. 즉 밥그릇 싸움 아닌 파업이란 원래부터 없다는 말씀이다.
"노동쟁의"라 함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간에 임금ㆍ근로시간ㆍ복지ㆍ해고 기타 대우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제5호
파업을 시작하려면 '쟁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상기 조항은 '쟁의'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이 넷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밥그릇과 무관한 것이 없다. 그런즉 모든 파업은 밥그릇 싸움이다.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말한다면 애초에 그것이야말로 파업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밥그릇 싸움'이라는 공격에 왜 이리도 우리는 취약할까. 우리는 왜 그렇게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에 혹하는 것일까.
어떤 파업이든 간에 밥그릇 싸움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려 하는 자본, 그리고 아무런 비판 없이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 이것도 -니체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종의 노예 도덕이다.
주인으로부터 사료를 받는 강아지는 목줄을 풀어줘도 집을 나가지 않는 것처럼(물론 사람이나 동물이나 간혹 집 밖을 나가버리는 '초인'들도 있다만), 목줄이 편한 우리들에게는 목줄을 풀지 않아야 할 명분, 주인을 물지 않아야 할 명분이 필요하다. '밥그릇 싸움'이니깐, 우리는 주인을 물지 않아도 되는 좋은 명분에 평안한 오늘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이해 관계자 중 병원협회도 있음을 생각해보면(의대 정원이 늘어나야 병원도 의사를 싸게 부려 먹기 때문), 그저 내 사슬 하나 끊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노동자에게 정의감까지 필요토록 만들어 그 노동자는 물론이고 그 주변인들마저 파업에 연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자 설계다. 그래서 노동자는 밥그릇 싸움이라는 논박에 있어 당당해지는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의사파업
#공공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