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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Jan 07. 2024

엄마, 나 이사 많이 다니는 게



  우리도 이사를 다녔다. 잼이 태어나고 서너 번 정도. 잼이 나이를 감안했을 때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잼에겐 아니었나 보다. 어째선지 친구들과 집과 이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온 잼은 조금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내 친구 OO이는 한 번도 이사해 본 적이 없대. 태어난 집에서 계속 살고 있대."

  "그래? 그래, 걔네는 자기 집이라더니 오래전부터 살았구나."

  "엄마, ㅁㅁ이는 이사 2번 해봤대. 친구들 중에서 나처럼 이사 많이 해본 애들 없어."

  "그래? 뭐 우리는 우리 집이 아니니까 그렇지. 친구들은 다들 자기 집인가 보네."



  잼은 어릴 때부터 우리가 사는 집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전세가 무엇인지 보증금이 무엇인지 보통 전세계약은 몇 년인지 수준에 맞게 설명해 왔었다. 이런 대화가 불편하지 않았다. 집을 살 돈이 부족해 전세를 사는 게 잼에게 미안하거나 부끄럽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잼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하는 우리 집 가족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이사 횟수를 비교하는 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은 이 동네 사람들은 다들 돈이 많나, 예전 동네 사람들은 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런 거였다. 엄마가 쩐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안 잼은 여전히 입이 나와있었다.





  예전부터 잼이 이사를 다니는 것에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2년 전 슬쩍 전혀 다른 먼 동네로 이사 가는 건 어떠냐고 떠본 적이 있었다. 그동안의 이사처럼 같은 구에서 뱅뱅 도는 것 말고 말이다.



  "가, 상관없어."

  예상치 못한 쿨한 즉답에 놀라 되물었다.

  "진짜? 그럼 네 친구 OO, ㅁㅁ, 다른 친구들도 다 헤어져야 하는데?"

  "상관없어."



  내가 이런 딸을 낳았다니. 친구들 사이에서 미련 떨며 끈을 붙잡으며 몇 십 년을 살았던 내게서 이런 딸이 나왔다니. 인연은 붙잡는다고 능사가 아님을 너는 이미 깨달았더냐. 혼자 감동에 젖어 동네방네 우리 딸이 이리 쿨하오, 떠벌리고 싶은 마음으로 있는데 잼이 채근했다.


  "그래서, 어디로 이사 가려고? 나 개인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어."


  나는 그냥 한 번 떠보려고 했던 건데 아뿔싸, 잼은 진지해졌다.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건 우리 셋 중 나뿐이구나 확인한 이 대화는 끝이 나지 않고 언제 어디로 어떤 형태의 집으로 이사를 가는지에 대한 추궁으로 이어졌다. 한참을 잼에게 짤짤이를 당하며 이제 잼에게 함부로 떠보는 말은 걸지 않기로 다짐했다.





  쿨했던 잼이 사라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2년 전 잼에게 없던 것들이 그사이 쌓이면서일 거다. 아는 친구들도, 아는 선생님들도, 아는 언니동생들도, 아는 핫플들도, 아는 학원들도, 이렇게 '아는'으로 묶을 수 있는 것들이 경험으로 잔뜩 쌓여버린 지금의 이곳은 잼에게 다른 의미가 되었다. 이사 시기가 도래하고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내놓으면서 잼에게 우리가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잼이 물었다.



  "어디로 이사 가는데?"

  "어, 걱정 마. 이 근처로 갈 거야."

  "어디?"

  "웬만하면 우리 아파트 안에서 갈 건데 요새 전세 나온 집이 별로 없어서. 없으면 우리 아파트 바로 앞 아파트로 가려고."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안돼! 안돼, 안돼! 거긴 안돼. 우리 아파트로 이사해."

  "응? 아니 웬만하면 그러는데 나온 집이 없으면~."

  "안된다고~~"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이사 시기가 맞는 집이 여기 있어야 가는 거니까."

  "아니, 안돼~ 내 친구들 다 여기 살고,..."



  평소엔 거의 징징거리지 않지만 한 번 징징거리기 시작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징징이가 오랜만에 등판했다. 징~징~징~. 이때부턴 잼의 말은 그대로 들리지 않는다. 이해는 간다만 이렇게까지? 그 쿨했던 너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까지 징징거릴 일인가? 바로 앞 아파트 진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바로 있는 덴데? 맨날 그 아파트 상가랑 놀이터에서 놀면서?




  징징이와의 실랑이가 우습게 집에서 걸어서 딱 50초 걸리는 동에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을 보고 바로 계약했다. 이사 가기 싫다고 입이 대빨 나와있던 잼은 자기가 살 집이니 계약 전에 자신도 봐야 하지 않겠냐며 굳이 한 번 더 나를 그 집으로 발걸음 하게 하더니 그 집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바로 태세전환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전에 어느 방을 자기 방으로 할지 아빠와 쑥덕거리더니 집으로 돌아오는 그 50초 동안 내내 발이 땅에 잘 닿지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그 집이 살던 집과 달리 깨끗하고 휑해 보여서였겠지... 우리가 이사 가면 그냥 다시 살던 집이 된다는 걸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엄마, 나 이사하는 거 좋은 거 같아."

  이사한 지 두어 달 지났을 때 잼이 말했다.

  "갑자기?"

  "응."

  "우리 이사 너무 많이 한 거 같아서 안 좋다며."

  "아니, OO이가 자긴 한 집에서만 살아봐서 지긋지긋하대. 나처럼 다른 데 살아보고 싶대."


  얼마 전 잼이 절친 OO이가 집에 놀러 왔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집은 그래, 우리 짐으로 채워 넣기는 했지만 아직은 좀 깨끗해 보이기는 한다. 이때다 싶어 말을 얹는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이사 다닌 거라니까?"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큰 뜻으로 이사를 다녔는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잼은 OO이한테 문자가 왔다며 내뺀다. 역시 이제 친구 말에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그런데 어쩌냐. 엄마랑 아빠는 이제 슬슬 이사는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굳혔는데. 그게 실현될지는 미지수지만.










잼 : 초등 중학년과 고학년 사이 어드매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사진: UnsplashJoel Fil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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