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된다. 내 탓이 아니다. 상대의 탓도 아니다. 그렇게 될 일이라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 너무 자책하며 힘들어하지 말자.
1. 파혼
"아버님께서는 아직 말씀 없으셔?"
"응. 오빠. 일주일만 더 기다려줄래?"
결혼식을 앞두고, H와 나는 멀어졌다. 결혼 전 아빠가 갚아주기로 약속했던 3천만 원이 감감무소식이었다. 3천만 원. 누군가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돈이다. 딸의 결혼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6개월이나 미뤄진 결혼이었는데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아빠는 약속한 3천만 원을 주지 못했다.
3천만 원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 건 아니었다. 3천만 원이라는 금액 이면에 숨겨왔던 나의 가정사를 H가 알게 되어서였다.
"그럼 내가 부잣집 딸인 줄 알았어? 내가 언제 돈 많다고 오빠한테 거짓말이라도 한 적 있어?"
이별을 고하는 H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전후 사정을 다 말해줬어야 해. 왜 네가 아버지 대신 빚을 질 수밖에 없었는지, 결혼이 미뤄지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왜 그 돈을 갚아주실 수 없는 건지, 내가 다 알았어야 해. 이건 엄밀히 말하면 속인 거야. 이제 네가 말하는 건 하나도 못 믿겠어."
3년을 만난 우리는 이렇게 헤어졌다. 어버이날이었다. 결혼식을 한 달 반 앞둔 시점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두 번을 더 만났고, 서로를 위로했다. 모두의 잘못이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렇게 될 일이라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 믿기로 했다.
2. 또, 이별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헤어지고 감사하게도 소개팅이 여러 번 들어왔다. 그중에서 H와 비슷한 조건의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나이도, 대학교도, 혈액형도 같았다. 8개월을 만났고,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B는 나의 가정사도 받아줬다. 이 사람이라면 내 아픔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B와 결혼까지 생각한 이유였다.
우리는 서로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파혼을 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H와 B를 비교했다.
"H는 참 싹싹했는데, B는 어쩐지 고집이 세 보여."
특히 엄마가 B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만남이 길어질수록 결혼에 대한 답을 내려야 했고, 나는 엄마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B에게는 본격적으로 결혼을 준비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오간 술자리에서 사고가 생겼다.
B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나는 그런 그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집으로 가기 위해 다른 택시를 잡았다.
"멀리까지 왔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가."
B가 말했다.
"오빠 너무 취했잖아. 나 오빠 취한 모습 보기 싫어."
나는 거절했다.
"고집부리지 말고 자고 가."
B는 내가 집에 가는 것을 몇 번을 만류했지만, 나는 택시에 올라탔다
'퍽!'
내가 택시를 타자마자 둔탁한 물체가 택시를 가격했다. B가 손에 쥐고 있던 오렌지 주스 병을 던진 거였다. 택시 기사는 차에서 내렸다. 술에 취한 B는 택시 기사와 다퉜고, 나는 싸움을 말리려고 차에서 내렸다.
"자고 가라니까!"
B는 나에게 소리쳤고, 택시 기사는 상황이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나를 다시 택시에 태웠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B는 실수였다고 몇 번을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헤어지고 싶어서 B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B에게 본인의 행동을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린 헤어질 인연이었기 때문에 헤어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인생은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불우한 가정환경, 떠나간 사람의 마음은 특히나 그렇다. 누구의 탓을 하기보다는 훌훌 터고 다음 장으로 나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