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바빠도 여행 떠날 하루쯤은 있겠지 #7
생각했던 것보다 바람이 매서운 날이다. 날이 좋으면 하루종일 걸어다닐 수도 있는데, 습한데 춥고 바람까지 많이 부니 골이 울릴 지경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봐뒀던 카페에 가기로 했다. 출판도시 북쪽에는 문발동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모여 있다. 흔히 생각하는 번화가의 모습은 아니다. 멀찍멀찍 떨어진 건물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카페든 식당이든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찾은 곳은 공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더티트렁크라는 카페였다. 택시에서 내리기도 전에 망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출판도시가 한산해서 이 곳도 한산할 줄 알았는데, 웬걸 카페 앞 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공간은 어디선가 많이 본 구성이다 했더니, 강릉의 테라로사 커피공장과 꼭 닮았다. 박공지붕의 높은 천장과 커다란 나무 스탠드, 그리고 스탠드 맞은편에 스탠실로 그려낸 카페 이름까지. 벤치마킹일까? 카페에 들어가니 마스크도 쓰지 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라니, 감염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디저트도 커피도 맛있어 보였지만 고민한 끝에 다른 카페를 찾아가기로 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식빵연구소다. 마찬가지로 널찍한 공간이지만 자리도 불편해보이고 자리가 붙어 있어 돌아나왔다. 빵이라도 살까 했지만 빵 사는 줄마저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이 좁아 불안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었다면 어디든 앉아서 빵 한 조각에 커피 한 잔 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세 번째로 도전한 곳인 초코랩은 자리는 비어있었지만 디저트 메뉴가 아쉬워서 결국 또 자리잡지 못하고 나왔다.
슬슬 배는 고파오고 맘에 드는 곳은 찾지 못해 걸어서 출판단지 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찬바람이 쌩쌩 부니 디저트보다 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와중에 낙지볶음을 파는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고, 다른 식당은 영 눈에 차지 않아 계속 걸었다. 문발동과는 영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다름아닌 빨간 글씨에 한자로 상해라고 써 있는 중국집이었다.
대림동에 와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양꼬치와 훠궈, 냉면이야 많지만 짜장면을 파는 집은 없는 동네다. 한동안 한국식 중국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었더니 짜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역시 파주하면 짜장면이라고, 출판사 사무실에서 시켜먹는 느낌을 상상하면서 먹었더니 꿀맛이다. 테이블 간격이 널찍하고 손님이 많지 않아 안심되는 것은 덤이다. 한쪽에 틀어진 티비에서 끊임없이 신종코로나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속이 든든해지니 추위도 가신 것 같다. 다시 걷기 시작해 출판도시로 돌아왔다. 출판사마다 서점 겸 카페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괜히 디저트 먹겠다고 멀리간 게 아닌가 잠시 후회했지만 또 가지 않았다면 후회하지 않았을까? 결국 돌고 돌아 자리잡은 곳은 달 출판사 1층에 있는 카페였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작은 식물들과 널찍한 공간에 매료돼서 들어가게 됐다. 출판사답게 메뉴판도 책의 형태다. 카운터 위에 놓은 자그마한 책장에 꽂힌 책등마다 메뉴가 하나씩 적혀 있었다.
간단히 음료 두 잔을 주문하고 1층에 자리를 잡았다가, 위층이 더 맘에 들어 자리를 옮겼다. 이 곳에도 나무 스탠드 형태로 만들어진 자리가 있지만 몇 없는 손님들은 널찍널찍한 간격을 두고 편한 테이블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노트북을 펼치고 있다. 테이블마다 귀여운 꽃이나 식물이 하나씩 놓여 있다. 공간을 찾게 되는 데는 단순히 인테리어, 맛, 주인의 취향뿐 아니라 손님도 고려하게 된다.
천정이 높아 시원시원하다. 카운터 위로 큼직한 원형의 링 조명 두 개가 공간을 비춘다. 나무 스탠드 뒤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면 편하게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2층에는 난간을 따라 바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어 아래를 내려다보며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 한쪽에는 평일에는 회의공간으로 쓸 법한 4인용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유리 칸막이가 쳐져 있는 방이 두 개가 보인다. 누군가의 사무실인 모양이다. 상사가 없는 주말에 몰래 친구의 사무실에 놀러온 기분이다.
룸메이트는 바테이블에, 나는 4인용 테이블에 따로 떨어져 앉아 한참을 키보드를 두들기다 보니 어느새 어스름이 젖어 들어왔다. 손님들이 하나 둘 떠난다 했더니 폐장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자리를 정리하고 버스를 타러 밖으로 나왔다. 버스정류장은 파주 아울렛 근처에 있다. 십여 분 정도 걸어 운좋게 바로 온 버스에 올라탔다. 하루짜리 느린 파주 여행의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