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바빠도 여행 떠날 하루쯤은 있겠지 #8
버스 타고 열차 타고 택시 타고 여행 다닌 지 십 년, 드디어 차를 샀다. 10시간의 운전 연수로 10년간 장롱에 있던 면허증에 묵어있던 때를 벗겨내고 오매불망 출고 일만 기다렸다. 작고 반짝반짝한 까만 경차를 보자, 한 5년 타고 값 좋을 때 중고로 팔아버려야겠다는 생각은 싹 사라졌다. 첫차는 애정이 많이 들어 보낼 때도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은 순간이었다.
차를 사고 첫 열흘 간은 운전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첫날 집 앞에 주차하다가 앞 범퍼를 긁어놓고는, 새벽 세 시에 깨서 <주차의 달인> 앱을 깔아 밤새 휠을 돌렸다. 매일매일 집에 돌아올 때마다 든 생각은 바로 '오늘도 살아남았어'였다. 하지만 적응기가 끝나자 곧 운전에 재미를 붙였다. 왜 그리 막연하게 무서워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인생의 큰 언덕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차 빼주세요"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어른이 된 실감에 어깨가 으쓱으쓱 했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다가, 연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약속을 잡았다. 자차로 이동하니 사람이 바글바글한 대중교통은 면할 수 있었다. 속초에 도착해서도 사람이 많은 곳이나 시간은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 서울 끄트머리 성북구에 사는 친구가 지하철 첫차를 타고 우리 집에 도착하면 여섯 시 반이 된다고 해서, 그 시간이 출발 시간이 되었다.
초보운전이니 휴게소 두 번은 들르며 가겠다는 호기로운 외침을 한 시간 만에 철회했다. 연휴에 정신 못 차리고 어디론가 가겠다고 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바보 중 한 명이 나였다. 두 시간 반이면 속초에 도착할 줄 알았건만, 꽉 막힌 도로 탓에 휴게소도 못 들르고 장장 다섯 시간을 달리고야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코로나고 뭐고 기차나 탈걸 그랬다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열 시에 도착해 미술관을 보고 점심을 먹으러 가겠다는 계획은 전면 수정됐다. 지친 운전자는 밥이 더 급했다.
속초 하면 회도 물회도 아닌 코다리 냉면이 웬 말이냐면, 첫 회사에 다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배가 담당이던 속초 단독주택 프로젝트를 완공해 다 같이 집들이를 하러 갔고, 주택으로 가기 전에 웬 식당에 들러 냉면을 먹었다. 냉면이라 하면 식초와 겨자를 넣어 새콤하고 시원한 맛에만 함흥냉면을 먹던 때였다.
무조건 물냉면을 외치던 내 앞에 놓인 것은 웬 벌건 조각이 올라가 있는 비빔냉면이었다. 생선보다는 고기를 좋아하는지라 이게 대체 뭐냐고 속으로 생각하며 냉면을 한입 먹는 순간, 눈이 크게 뜨였다. 위에 올라가 있던 벌건 조각은 바로 코다리 무침이었다. 고소하고 감칠맛으로 가득한 맛이 놀라워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식당에서 나오는 손에는 분홍색 플라스틱 통에 담긴 코다리 무침이 들려 있었다.
명태를 말려 만든 코다리 무침이 올라간 냉면을 속초에서는 명태회 냉면이라고 부른다. 여행을 앞두고 선배에게 전화해 그때 그 식당이 어디였는지 묻고 답을 얻고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주차하고 가게로 들어가니 좁은 현관이 마스크를 쓴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옆에 별실에 자리가 있다길래 옳다구나 하고 냉면 네 그릇을 결제해놓고 걸음을 옮겼다. 냉면을 기다리는 사이에 온육수와 냉육수가 먼저 나왔다. 따끈한 온육수를 한 모금 마시니 꽤 따뜻해진 날씨에도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냉육수는 냉면에 넣어 비벼 먹을 요량으로 아껴뒀다.
네 그릇의 냉면을 얹은 쟁반이 별실로 들어오자 환호라도 하고 싶었다. 면이 어찌나 쫄깃하고 긴지 반으로 잘라서는 비벼지지도 않아 가위질을 몇 번이고 더 해야만 했다. 마침내 잘 비벼진 면을 설레는 마음으로 입가로 가져갔다. 5년간 변치 않은 맛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국물까지 싹 비워진 바닥만이 남아있었다. 비운 채로 가져간 아이스박스에 따로 산 명태회를 담고 마음마저 가득 채운 채 가게를 나왔다.
*오늘의 가계부
이조면옥 : 명태회냉면 9,000원, 명태회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