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대게 볶음밥을 파먹는 기분이란

암만 바빠도 여행 떠날 하루쯤은 있겠지 #9

by 문마닐



PM 12:30

속초중앙시장


기왕 시내에 들어온 김에 중앙시장에 들러 새우튀김과 홍게를 사서 해변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새우튀김 중 한 곳이 바로 속초중앙시장에서 사 온 것이었다. 튀김옷은 바삭하니 얇고, 안에 든 커다란 새우는 살이 꽉 차 있었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새우인데도 머리부터 꼬리까지 하나도 걸리는 부분 없어 꼭꼭 씹어먹었다.


중앙시장에 있는 새우튀김을 검색하며 그 집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5년 정도 지난 일이라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 포장해온 것을 나눠먹은 것이라 중앙시장에서 산 것인지 아닌지도 분명하지 않다. 새우튀김의 모양을 살폈지만 그 집의 것처럼 보이는 곳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왕새우튀김이 유명하다는 집을 찾았다.


둘씩 팀을 나눠서 둘은 새우튀김을 사러, 둘은 대게를 사러 갔다. 새우튀김 팀은 오는 길에 식혜와 호박식혜, 떡까지 야무지게 사 왔다. 대게를 다듬고 밥을 볶기를 기다리며 새우튀김을 맛봤다. 얼마나 미화됐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추억의 맛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살이 꽉 차 머리부터 꼬리까지 바삭하게 익은 것은 꼭 닮았다. 여태 분식집에서 먹은 새우튀김은 다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싶은 맛이다. 대게는 왕새우튀김 10마리가 위장으로 사라지는 속도에 맞춰 등장했다.







PM 13:30

청간리 해수욕장


대게 껍데기에 가득 채운 볶음밥이 식기 전에 서둘러 차에 올라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속초 해수욕장에 가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조금 더 멀리 가기로 했다. 차가 있는데, 거리가 무슨 문제랴. 20분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청간리 해수욕장으로, 지리상 속초가 아닌 고성에 속해 있었다. 모래사장에는 드문드문 텐트가 세워져 있었고, 인적이 드물었다.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둑방 위에 앉아 바다를 배경으로 삼각대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란히 앉아 가족사진처럼 찍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서 2000년대 디스코 컨셉으로 팔을 쭉 뻗고 손가락을 펴서 렌즈를 향하기도 했다. 여행 사진에서 두고두고 보는 것은 역시 인물사진이다. 활짝 웃는 표정을 보노라면 그때의 추억에 미소 짓게 되는 것이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이 곳에 오기까지의 고생을 보답받는 풍경이었다. 희끄무레한 하늘 아래로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오고, 모래사장은 평화로웠으며, 내 앞에는 포장해온 대게와 볶음밥이 펼쳐져 있었다. 어찌나 프로페셔널한 손길로 다듬었는지 플라스틱 숟가락 하나로 온 살을 다 발라먹을 수 있었다. 화룡점정은 역시 날치알과 김, 그리고 참기름으로 볶은 밥이었다. 위쪽이 그냥 볶음밥이었다면 아래는 진짜 대게 볶음밥이다. 대게 내장이 밥에 버무려져 숟가락이 끊임없이 입과 밥 사이를 왕복했다. 거기에 입가심으로 진한 호박식혜라니, 이보다 더 호사스러운 점심이 어디에 있을까.







PM 15:00

글라스하우스


바닷가에서 한참을 신나게 떠들고 먹고 놀고 사진 찍었더니 뇌가 카페인 부족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먹은 쓰레기를 싹 챙겨 차에 싣고 카페를 찾아 떠났다. 원래 계획에 있었으나 시간상 빼기로 한 곳이었는데, 해변을 좇아 고성까지 온 김에 들르기로 했다. 커다란 유리 문이 가운데를 축으로 시원하게 열리는 카페에는 동네 힙스터들이 모두 모인 듯 보였다. 서핑 샵도 겸하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 감성'으로 치장한 이 카페의 곳곳에는 귀여운 디테일들이 숨어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배치부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장처럼 알루미늄 골판으로 마감한 건물 세 동이 서로 간격을 두고 디귿 자로 배치되어 있다. 디귿 자의 마구리에는 형태는 박공으로 같지만 재료는 세로결 무늬유리로 마감된 건물이 서 있다. 네 동의 건물로 막힌 듯 오픈된 중정에는 뜻밖의 정원이 있다. 콘크리트 바닥을 네모나게 뚫어 마사토를 채우고 사막에서 자랄법한 삐쭉삐쭉한 식물을 심었다. 정원 주위로는 야외용 캠핑 의자와 갖가지 색깔의 락카로 치장한 버스 정류장 의자, 그리고 철판을 접어 만든 의자가 조화를 이루며 각자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어느 의자에 앉느냐에 따라 성격 유형을 구분할 수 있을 법한 재미있는 공간이다.


서퍼의 사진이 흑백으로 인쇄된 종이컵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셨다. 컵 디자인 하나마저도 어찌나 힙한지. 성격도 관심사도 세 명의 동행도 이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즐긴 모양이다. 검은 털의 친구를 쓰다듬기도 하고,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리저리 걷기도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지막 일정인 미술관을 둘러볼 시간을 딱 남겨놓은 시점에 남은 커피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가계부

붉은대게수산 : 대게 30,000원, 볶음밥 2,000원

속초아저씨튀김 : 왕새우튀김 10마리 10,000원

식혜, 단호박 식혜 5,000원

글라스하우스 : 아이스라떼 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