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향하는 곳 - 김보희 개인전 ‘Towards’

암만 바빠도 여행 떠날 하루쯤은 있겠지 #10

by 문마닐


예년보다 이른 더위가 찾아온 여름날 오전, 캔버스 속에 담긴 초록을 찾아 성북동을 찾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려던 원래의 계획은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파고드는 햇빛에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따라 천천히 운전대를 돌리며 달렸다.




9:30 성북동길 공영주차장


성북동은 주차장이 귀한 동네다. 규모가 큰 미술관이나 식당을 간다면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마저도 몇 자리 없는데, 오늘은 작은 갤러리와 작은 식당에 갈 계획이라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카메라와 핸드폰만 들고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 선글라스까지 챙겼다. 선크림을 발라도 팔도 뒷목도 노릇노릇 익을 것만 같은 날이다.







10:00 김보희 개인전 <Towards>


주차장에서 돈가스 집과 국숫집이 연달아 나오는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선잠단지 앞 골목에서 틀어 미술관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찾았다. 작은 골목으로 갈라진 길을 두어 군데 지나자 금속이 물결치는 모양의 ‘스페이스 캔’이 나타났다. 손만 대도 데일 듯한 은색의 파도 위에 걸린 현수막의 초록색 잎이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주는 듯하다. 1층에서 예약자 확인을 하고, 입장권 대신 동그란 스티커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사방으로 제주의 푸른 풍경이 감싼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좌측 면과 전면에 걸린 ‘Towards’. 전면에 걸린 작품은 여인초가 빽빽하게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Towards, 2013)이라면, 좌측면에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정원의 나무와 로즈마리를 그린 작품(Towards, 2021)이다. 김보희 작가가 2017년에 대학에서 퇴직해 제주에 정착했다고 하니, 8년 사이에 마음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달라진 느낌에 공감이 간다. 삭막한 사무실에서는 화분에 심은 화초를 들여다보고, 살펴보고를 반복하다 마음속에 가득 채웠다면, 제주도에서는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 시야에 담기고 넘치는 자연을 여유 있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2층의 전시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계단참에 천장 높이만큼 기다란 캔버스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해가 지는 틈새에 잠깐, 하늘이 온통 푸른 시간에 노랗게 뜬 달 아래 서 있는 두 그루의 야자수를 올려다보는 그림(Jungmoon Blue Night, 2017)이다. 제주도 중문의 색달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서핑을 끝내고 돌아가는 서퍼들 소리를 들으며 달바라기를 하는 상상을 하다가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을 뻔했다.








10:10 오래된 집


전시는 스페이스 캔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오래된 집’에서 이어진다. 직관적인 이름의 이곳은 건축가 승효상이 구옥을 고쳐 만든 갤러리다. 들어가자마자 유난히 옆면이 두꺼워 큐브처럼 보이는 캔버스 네 점이 걸려있다. 보통 캔버스의 옆면이 검은색이나 작품과 어울리는 단색으로 칠해져 있다면, 이 작품들은 옆면까지 풍경화가 이어져 있다. 나무틀 위에 한지를 씌워 단색으로 칠한 수묵화 작품이다. 바다의 잔잔한 물결이 명함으로 잘게 표현되어 있다. 무릎을 굽혀 캔버스 아래를 올려다보자 바다로 가득한 면이 보인다.


천천히 작품을 둘러보고 있는데 큐레이터가 컬렉터 두 명을 대동하고 들어와 작품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척 조금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훔쳐 들었다. 그림이 커서 걱정하는 컬렉터의 이야기에 큐레이터가 100호짜리 그림이 킹사이즈 침대와 가로길이가 맞아서 침실에 걸어두기 좋고, 엘리베이터에 실을 수 있어 소장가치가 괜찮다는 말이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에 대해서 알게 된 재밌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동해 카운터에 큐브 수묵화 작품의 가격을 물으니 0 하나가 더 붙은 금액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이 한층 더 솟아올랐다. 아쉽게도 지금 사는 집에 작품을 걸 자리는 없어 대신에 바다와 하늘과 수평선이 도드라지는 캔버스 포스터를 구매했다. 거실에 무심히 놓은 바르셀로나 체어 위에 진짜 작품을 걸어둘 날을 기다린다.








김보희 작가 개인전 ‘Towards’ 예매 정보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46-26 캔파운데이션(스페이스 캔)

월-목 10:00-17:00, 금-일 10:00-19:00

입장료 3,000원

예약 필수, 하단 링크 참조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520526